소녀시대, 카라보다
400여 년 먼저 한류 열풍을 일으킨 조선통신사
그 다이내믹하고 열정적인 역사의 현장 속으로
노빈손이 뛰어든다!
노빈손, 한류를 일으키고 조선과 일본의 평화를 지켜라
‘통신사’란 ‘믿음으로 통하는 외교 사절’이란 뜻으로 조선이 일본에 파견한 사신단이었다. 조선통신사가 일단 일본에 도착하면 지나는 모든 지역이 들썩들썩했는데 일본의 학자들은 물론 일반 백성들까지 조선통신사의 시와 글씨를 받으러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조선통신사의 행렬이 거리를 지나갈 때면 조선통신사를 보려는 사람들로 거리 양옆이 빽빽이 채워지기도 했다. 지금의 한류 열풍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노빈손은 조선통신사에 합류하면서 편안하게 유람만 하다 왔을까? 절대 아니다! 일본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마상재(말 위에서 펼치는 재주)를 갈고닦는가 하면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 도공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무엇보다 조선과 일본의 전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있는 엄청난 음모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데…….
한양에서 일본의 에도까지 이때껏 볼 수 없었던 장대한 스케일의 대장정! 찬란한 우리 문화를 전파하는 생생한 현장에서는 자부심을 느끼고, 조국으로 돌아올 수 없었던 조선 포로들의 아픔에서는 마음에 찡한 울림이 있을 것이다.
조선통신사의 치열한 외교전 현장 속으로
조선통신사는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외교 관계의 상징이었다. 실제로 조선통신사가 정식으로 파견된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조선과 일본 사이는 평화로웠다. 삼국시대부터 크고 작은 일본의 침략에 시달렸던 우리나라로서는 전례 없는 평화의 시기였다. 하지만 통신사를 두고 조선과 일본 사이에는 서로 다른 생각이 있었으니, 조선은 우월한 문화를 과시하는 사절로 여겼고 일본은 막부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조공 사절로 포장하기 위해 애썼다. 조선통신사를 자신에게 최대한 유리한 쪽으로 이용하기 위한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던 셈이다. 하지만 분명한 역사적 사실은 조선과 일본은 대등하게 외교 관계를 맺었으며 조선통신사는 선린 외교를 위한 사절단이었다는 것이다.
『노빈손 조선통신사의 누명을 벗겨라』에서는 조선통신사를 자신의 야욕에 이용하려는 일본 반란 세력의 음모를 통해 치열하게 전개되는 조선과 일본의 외교전을 접할 수 있다. 또 조선시대의 국제관계를 파악할 수 있도록 조선과 일본 사이에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역사와 더불어 조선통신사의 문화 전파와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를 재미있게 풀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