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시대의 폭력에 짓밟힌 여성들의 삶을 강렬하고도 아름답게 그려낸 공선옥의 신작 장편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가 출간되었다. 소외된 주변부의 삶에서 눈을 떼지 않고 함께하며 이야기로 그들을 끌어안았던 공선옥의 작가적 역량은 이번 작품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역사에서 소외되고 세상의 광기에 희생된 그녀들은 공선옥의 소설에서 비로소 꽃피웠다. 이 작품을 주목하고 작가 공선옥을 재조명해야 하는 이유는, 곯아가는 세상에서 여전히 문학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봄날, 우리를 대신해 울어주던 여자가 있었다 소설은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시골마을에서 시작된다. 투전판에서 돈을 몽땅 잃고 일자리마저 잃은 아버지는 정애에게 언어장애를 가진 엄마와 동생들을 맡기고 외지로 떠난다. 동네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가장을 잃은 정애네를 업신여기기 시작하고 정애네 가축을 하나둘 훔쳐가버린다. 정애가 기댈 곳은 가장 친한 친구인 묘자뿐이다. 사람 좋은 정샌이 우리 닭을 다 가져가버리다니. 정샌은 나를 보고 웃고 내 눈을 바라보고 말하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준 사람이다. 나는 정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쁜 사람이 나쁜 일을 한 것보다 좋은 사람이 나쁜 일을 하는 것이 나는 더 무서웠다. 무서워서 와들와들 떨렸다.(21면) 좋은 사람이었던 이웃들은 정애의 동생 순애에게 몹쓸 짓을 하고 끝내 정애 또한 그들의 희생양이 되었지만 동네의 모습은 변한 게 없다. 시름시름 앓던 순애가 죽고 쌍둥이를 출산하던 엄마도 배 속의 아이들과 함께 저세상으로 가버리자 이웃들은 정애에게 푼돈을 쥐여주고 광주로 올라가 장사를 하라고 등을 떠민다. 그리고 1980년대 광주에서의 묘자와 정애의 삶이 펼쳐진다. 나는 나한테 일어난 일은 잊기로 했지만 순애한테 일어난 일은 그럴 수가 없었다. 난 살아 있고 순애는 죽었기 때문에 그랬다. 순애에게 분명히 무슨 일이 있었을 거라는 말, 그 말을 누군가한테 하긴 해야겠는데 할 수가 없어서 명치가 저려왔다.(42면) 드디어 선보이는 작가 공선옥의 1980년, 광주 공선옥은 오랫동안 광주 이야기를 쓰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 자신이 살고 있기도 한 그곳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기에 역설적으로 이 이야기를 주조해내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취재하고 고심해온 결과가 바로 이 작품이다. 오래 앓고 써낸 작품인 만큼 작품에 대한 애정 또한 남다르다. 공선옥은 작가의 말에서 작품을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들어주는 사람 없어 혼자 울어야 했던 그대, ‘광주’에 바친다”(210면)고 했다. 1980년 5월의 광주가 이 같은 방식으로 조명된 적은 없었다. 극단의 고통은 공선옥만의 활달한 서사와 해학, 아픔을 뚫는 건강한 힘으로 극복되어 기존의 소설들과 차별화된다. 그리고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의 광주에는 ‘여성’들이 있다. 그리고 여성 개개인의 삶 그 자체가 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국가의 폭력이 얼마나 잔인무도했는지 혹은 그것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온당치 못한 일이었는지에 대한 것은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 개인이 살아가는 삶이란 사회와 연동되는 고유하고 일회적인 현상이다. 그렇기에 공선옥이 택한 작법은 개인의 삶을 고스란히 읊어냄으로 당대 사회의 혼란을 더욱 처절하고 가깝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국가의 폭력이 무력한 개인의 삶을 얼마만큼 비참하게 만드는지, 게다가 여성이라면 더 얼마나 다층적인 폭력에 시달릴 수밖에 없게 되는지 숨가쁘게 그려진다. 공선옥이 보여주는 것은 끊임없이 흘러가는 역사의 한 굽이에 있었던 개인의 삶, 그것의 소중함이다. 숙자는 시내 쪽에서 들려오는 총소리에 오금이 졸아들어 잠을 한숨도 못 잤다. 새벽녘에 오줌이 마려운 참이었는데 잠긴 문을 발로 차는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숙자는 오줌을 지려버렸다. 문 열라는 남자의 소리가 났다. 안 열면 문을 부숴버릴 기세였다. 숙자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군인이 여자를, 스무살 남짓한 계집아이를, 정애를 가게 안으로 던져넣었다. ―이년 데리고 있다가 날 새면 보내시오. 다른 군인들 만나면 이 가시내 죽어요. 정애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온몸을 달달 떨었다. 속옷이 벗겨져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114면) “미치지 않은 세상은 언제였을까.” 아픈 세상에 들려주는 들꽃 같은 노래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에서는 ‘미침’과 ‘성함’의 구도가 반복된다. 미친 사람들과 미치지 않은 사람들, ‘정상’과 ‘비정상’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진다. 그러나 작품에서 그 둘의 위상은 정확히 반대다. 비정상성을 띄고 있는 인물들은 약한 사람들, 고통받고 소외된 사람들, 미치지 않고서는 이 세상을 견뎌낼 수 없는 사람들,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미쳐야 했던 사람들이다. 말을 할 수 없어 울음이나 웃음으로만 자신을 표현했던 정애의 엄마, 삶의 바닥에 몰려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게 된 정애의 아버지, 군인들에게 끌려가 무참히 짓밟힌 후 소리와 노래로만 아픈 세상을 맴돌게 된 정애, 가공할 만한 폭력에 노출된 후 스스로를 놓아버린 묘자의 남편까지. 그들은 모두 착하고 고운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반대급부에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인물들이 있다. 쓰러진 자를 더욱 세게 밟는 사람들, 미친 세상의 구호에 맞춰 목소리를 드높이는 사람들. 공선옥은 차라리 ‘미친 세상에서 함께 미치는 것이 옳은 일이며, 아름다운 일’이라고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말한다.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는 사람들은 다 미친 거여. 미친 세상에서 미친 사람만이 미치지 않은 거여. 그래 그런 거여.(198면) 그러나 가슴 아린 이 작품의 여운이 아프게만 남지는 않는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공선옥이 창조해내는 이야기의 마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아픈 세상과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데에만 머물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삶이 스스로 부풀어올라 고통 너머로 도약하게끔 숨을 불어넣는다. 사라진 정애가 소리로, 빛으로, 냄새로 이웃의 곁에 남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렇게 정애는 다시 태어났다. 갓 태어난 정애가 세살짜리 정애를 밀어올렸다. 세살짜리 정애가 열살짜리 정애를 이끌었다. 열살짜리 정애가 열다섯 정애한테 후우, 하고 더운 숨을 불어넣었다. 정애는 이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정애를 태운 달빛이 대나무밭 위로 빠르게 솟구쳤다. 빛 속으로 들어간 정애는 이제 빛이 되었다. 빛 속에서 서른살 정애가 달려왔다. 쉰살 정애가 노래했다. 노랫소리에 맞추어 백살의 정애가 춤을 췄다. 모든 정애는 그렇게 노래 부르고 춤추며 달빛을 타고 갔다.(210면) 여자는 정애였다. 허나, 또 여자는 정애가 아니었다. 정애가 아니면서 정애인 여자는, 정애이면서 정애가 아닌 여자는 아주 먼 데서 온 것 같았다. 여자의 몸에서 비린내 같기도 하고 짠내 같기도 한 냄새가 났다.(…)먼지 냄새도 나고 마른 지푸라기 냄새도 나고 이끼 냄새도 나고 거름 냄새도 나고 햇빛 냄새도 나고 저녁 냄새 낮 냄새 새벽 냄새도 났다. 여자의 몸에서는 이 세상 모든 냄새가 나고 또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258면) 여자가 남긴 노랫소리만이 빗물에 젖고 있었다. 노래에 빗물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고 빗물은 노래와 한몸이 되어 어디론가로 흘러갔다.(260면) 의미를 잃은 언어의 자리에 들어선 분열된 소리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에서 주목해야 하는 또다른 점은 언어에 대한 깊은 고찰이다. 전작에서 증명되어온 바, 공선옥의 빼어난 언어감각은 문학 독자들이 그의 작품을 아끼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의 빛나는 언어는 유감없이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의미있는 것은 작품에서 실험적인 발화 형태가 시도되었다는 점이다. 그 기묘한 말소리들은 등장인물의 분열된 내면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