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마을에서 벌어진 갈등과 상호 학살을 통해 살펴본 한국전쟁의 미시사 한국전쟁 기간에 마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한국전쟁 발발 60년을 맞는 올해, 마을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한국전쟁을 조명한 책이 출간됐다. 저자는 마을에서 벌어진 상호 학살 사건의 과정과 원인을 치밀하게 파헤침으로써 한국전쟁의 미시사를 제시한다. 이 책에 실린 사례는 진도의 현풍 곽씨 동족마을, 금산군 부리면의 해평 길씨 동족마을 등 전라남도와 충청남도의 다섯 마을이다. 저자가 10여 년간 해당 지역을 현장 답사하며 관련자 구술을 채록하고 희생자 씨족 가문의 족보까지 꼼꼼히 조사하여 얻은 연구 결과물이다. 기존 한국전쟁에 관한 역사학계의 연구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전쟁의 발발 배경과 진행과정을 분석한 거시사 연구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2005년 출범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조사한 한국전쟁 사망자 통계에서 알 수 있듯 실제 희생자 규모는 전선(戰線)이 아닌 후방에서 훨씬 더 컸다. 그것은 남북한군 간의 직접적인 교전과는 별개로 마을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진 주민들 간의 크고 작은 학살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시야를 한반도 전체에서 마을공동체라는 구체적 공간으로 좁힘으로써, 그동안 거시사 연구가 놓쳐왔던 마을 주민들 간의 신분·이념·종교·토지소유 등의 갈등까지 세밀하게 짚어낸다. 이들 사례 연구는 학살 사건의 마을들이 동일한 농촌 마을이었다고 하더라도 해당 지역의 씨족 구성, 마을 지도자의 계급성향과 주민 장악력 등에 따라 그 충돌 양상은 많이 달랐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책은 한국전쟁기 마을에서의 갈등 원인을 주로 이념과 계급 갈등으로 한정지어왔던 기성 학계의 통념을 재검토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는 불모지와 다름없던 한국전쟁의 미시사 분야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마을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마을로 내려간 국가권력, 전쟁 전 마을 갈등의 폭발 ‘왜 한 마을의 주민들은 서로를 죽이려고 했을까?’, 저자의 일차적인 연구 동기이기도 한 이 물음은 이 책의 다양한 사례 연구를 관통하고 있는 중심적인 문제의식이다. 저자는 마을에서 벌어진 주민들 간의 상호 학살의 일차적인 책임을 마을로 침투한 남북한 국가권력에 돌리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남쪽으로 내려온 인민군은 점령 지역의 면 단위부터 내무서를 두고 인민위원회, 농민위원회, 부녀동맹 등의 단체를 만들어 마을 단위까지 통제했다. 토지개혁을 내세워 하층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인민재판으로 마을의 주요 우익 인사를 처형함으로써 마을의 질서를 해체시켰다. 반대로 인민군이 빠져나간 뒤에는 국군과 경찰이 들어와 인민군에 협조한 부역자들을 색출하여 처단했다. 특히 우익 단체인 치안대와 청년단이 조직되어 부역자 대부분을 경찰에 넘기거나 경찰의 묵인하에 직접 처단했다. 그렇다면 남북한의 국가권력은 왜 이와 같이 마을 공동체에 깊숙이 침투하려 했을까? 저자는 국가권력이 마을 단위까지 침투하려고 애쓴 이유가 분단정부의 불안한 위치를 빠르게 극복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국가권력은 마을 주민들에게 상호 학살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강요함으로써, 자신들의 체제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려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같은 국가권력의 개입이 없었다면 마을에서 그렇게까지 대규모의 민간인 학살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1948년 남과 북에는 각각 정부가 들어섰지만, 아직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충성도가 그리 높은 상황은 아니었다. 그것은 양쪽 모두 분단정부라는 한계를 안고 있었고, 남북 모두 국민들 사이에 좌우 대립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과 북의 국가권력은 전쟁 상황을 이용하여 마을 주민들에게 어느 한쪽을 분명히 선택하도록 함으로써 충성도를 높이고자 했다. 남북의 국가권력이 마을 주민들을 동원하여 직접 학살에 나서도록 몰아간 것은 주민들로 하여금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어느 한쪽 편에 서서 다른 쪽 편을 학살하는 행위는 곧 자신의 목숨을 어느 한쪽에 맡기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본문 p.49~p.50) 그러나 저자의 또 다른 고민은 아무리 한국전쟁기 남북의 국가권력의 침투가 강력하고 치밀하게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수백 년간 견고하게 유지됐던 마을 공동체가 그렇게 쉽게 국가권력에 조종당했을까 하는 의문점에 있다. 저자는 20세기 초 일제식민지하의 국내 환경 변화에서 그 점을 이해해보려고 시도한다. 당시 신분제와 지주제, 친족관계에 기반을 두고 그 나름의 질서와 규율을 갖고 있던 농촌 마을은 신분제의 이완과 함께 마을 내의 위계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또 1910년대에 일제가 면사무소를 설치하고 부락연맹과 애국반 등 인적·물적 자원의 수탈을 위한 말단조직들을 만들면서 국가권력의 의지가 마을 단위에서까지 강력히 관철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이런 농촌 마을의 환경 변화가 국가권력의 침투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로 전쟁 이전 각 마을 공동체가 안고 있던 갈등이 현명하게 해소되지 못하고 한국전쟁 기간에서야 비로소 상호 학살의 형태 표출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예컨대 이 책에 소개된 반촌마을과 민촌마을이 충돌했던 부여군의 두 동족마을의 사례를 보면, 제도로서의 신분제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반촌 주민들은 공공연히 민촌 주민들을 하시(下視)하고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해왔던 사실을 알 수 있다. 결국 민촌 주민들의 불만은 한국전쟁기에 폭발했고, 좌우익으로 갈라선 두 마을은 거듭된 학살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또한 당진군 합덕면의 주민들 간의 대립은 지주와 머슴 간의 갈등, 마을 간의 농수와 소작지를 둘러싼 갈등, 경쟁 집안 간의 갈등 등 해묵은 갈등들이 전쟁기에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잠재되었던 마을 주민들 간의 갈등의 틈을 남북의 국가권력이 잘 파고들어 이용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실제 인민군들은 마을의 하층민과 소외됐던 신분 계층을 이용하여 자주 인민재판을 진행시키곤 했다. 기성 학계의 한국전쟁기 민간 차원의 충돌 원인 연구는 재검토 필요 계급·이념 갈등보다는 친족·마을·신분 간 갈등이 더 중요 저자는 마을 학살 사례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기존 한국전쟁 연구가들이 민간 차원에서 벌어진 학살을 주로 계급·이념 갈등으로 국한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보고 강한 의문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 저자가 연구한 마을의 사례들은 지주―소작인 간의 계급 갈등 외에도, 친족 내부의 갈등, 마을 간의 갈등, 기독교도와 사회주의자 간의 종교·이념 갈등과 같은 ‘복합적 갈등구조’를 띠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저자는 한국전쟁 연구의 고전이 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이 남부지방에서 일어난 지방 봉기의 원인을 지주―소작인 간의 계급 갈등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에 대해 재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부르스 커밍스가 주장한 갈등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관련 연구를 여전히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일제하의 지주-소작관계에 주목하고, 이러한 오래된 계급관계에 기초한 깊은 원한은 해방 이후 남한에 혁명적 정세를 조성하였다고 보았다. 특히 1946년 10월 남부 지방의 봉기에 대해 이를 ‘추수봉기’라고 이름을 붙일 정도로 지주-소작인 간의 계급관계를 중시하였다. 하지만 1946년의 10월 봉기는 지주-소작인 간의 갈등과는 별 관계가 없었다. 그것은 오히려 미군정의 공출제 실시나 친일경찰의 횡포 등에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브루스 커밍스를 비롯하여 많은 이들은 흔히 한국전쟁기에 가난한 소작농민계급이 지주층을 상대로 계급투쟁을 벌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를 증명하는 연구는 아직 찾아보기 어렵다.(본문 p.222) 이는 우리 학계가 지금까지 한국전쟁에서의 민간 차원의 내전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