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과 외로움이라는 무익한 수난
그 수난을 겪은 사람들의 속내를 쓰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프랑스의 문제적 작가 아니 에르노가 1991년 발표한 『단순한 열정』은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의 사랑을 다루며 그 서술의 사실성과 선정성 탓에 출간 당시 평단과 독자층에 큰 충격을 안겨준 작품이다. 임상적 해부에 버금가는 철저하게 객관화된 시선으로 ‘나’라는 작가 개인의 열정이 아닌 일반적이고도 보편적인 열정을 분석한 반(反)감정소설로, “이별과 외로움이라는 무익한 수난”을 겪은 모든 사람들의 속내를 대변한다. 2001년 국내에 처음 소개되어 꾸준히 사랑받아온 작품으로, 이번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에 새롭게 속하며 이재룡 문학평론가이자 숭실대 불문과 교수의 해설이 더해져 르노도상,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상 등을 수상하고 생존 작가로는 최초로 갈리마르 총서에 편입된 아니 에르노만의 독보적인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도 더할 수 있게 되었다.
출신 성분과 고향을 버리고
딴 세계에 유배된 망명객이 쓰는 삶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규정하는 프랑스의 문제적 작가로, 사회·역사·문학과 개인 간의 관계를 예리한 감각으로 관찰하며 가공도 은유도 없는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이룩해온 아니 에르노는 2011년 선집 『삶을 쓰다』로 생존 작가로는 최초로 갈리마르 총서에 편입되는 기록을 세웠다. 선집의 제목이 암시하듯, 그녀의 작품에 대해 말하려면 그 삶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아니 에르노의 글은 노년기에 한 생애를 총체적으로 회고하는 한 편의 자서전이 아니라 삶의 전환점마다 과거가 현재의 글이 되고 그 글이 다시 미래의 씨가 되어 삶을 규정하는 현재 진행형의 자서전인 까닭이다.
아니 에르노는 1940년 9월 1일 프랑스 노르망디의 소도시에서 카페 겸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소상인의 딸로 태어났다. 가난한 농부에서 공장 노동자로, 이어 가까스로 자영업자로 신분이동에 성공한 아버지와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억척어멈으로 살아온 어머니, 그들의 하나뿐인 딸로 구성된 가정이었다. 부엌에서 몸을 씻고 취객의 저속한 농담을 감수하며 마당 구석의 변소를 사용하고 다락방에서 추위에 떨며 자야 했던 작가는 사립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동급생 부모들의 생활 방식과 자기 부모의 투박한 일상을 비교하게 되면서 부모와 심리적 단절을 결심하고 자신의 열등감을 우수한 학업성적으로 보상하려 한다. 이후 대학에 진학하고 중산층 엘리트 남편과 결혼하고 문학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하게 되면서 부모의 세계와는 멀어지게 된다.
이렇게 빈곤층 출신의 여자가 성장하고 사랑하고 결혼하는 과정에서 겪은 모멸감과 소외의식은 『빈 장롱』,『그들이 했던 말, 혹은 하지 않았던 말』, 그리고 『얼어붙은 여자』 등 초기작에서 소설 형식을 빌려 자유분방한 언어로 표현된다. 이후 1984년에 발표해 르노도상을 받은『자리』로 작가는 글쓰기 태도에 중요한 변곡점을 형성하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소설을 쓰려다 중간에 포기하고 결국 사실에 근거한 진솔한 감정을 담담하게 서술하는 쪽을 택하게 된다. 이를 기점으로 아니 에르노의 글은 평범한 독자의 눈에도 금세 파악되는 개성을 확보하게 된다. 비교적 짧은 분량의 글, 문단 사이의 여백, 그리고 단숨에 독자의 관심을 끄는 첫 대목, 담담한 문체, 그리고 오로지 사실만을 기록하고자 애쓰며 기억의 확실성을 저울질하는 자기성찰, 그리고 자신의 글의 장르적 정체성─내가 쓰는 글이 과연 문학일까─등에 관한 대목이 거의 전작에서 되풀이된다.
임상적 해부에 버금가는 칼 같은 글쓰기로
치명적인 열정을 진단하다
1991년 아니 에르노는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의 사랑을 다룬 『단순한 열정』을 발표한다. 유명 작가이자 문학교수의 불륜이라는 선정성과 그 서술의 사실성 탓에 출간 당시 평단과 독자층에 큰 충격을 안겨 그해 최고의 베스트셀러 화제작이 된다. 그리고 6년 뒤, 『단순한 열정』을 계기로 연인 사이가 된 서른세 살 연하의 필립 빌랭이 자신의 첫 작품으로 『단순한 열정』의 서술방식을 차용해 아니 에르노와의 사랑을 다룬 『포옹』을 발표하게 되면서 다시 화제가 된다. “올여름 나는 처음으로 텔레비전에서 포르노 영화를 보았다”라는 문장으로 글을 열어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라는 고백이 등장하는 이 작품에 대한 이러한 반응을 예견한 아니 에르노는 작품 속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숨김없이 털어놓는 것을 나는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글이 쓰이는 때와 그것을 나 혼자서 읽는 때,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읽는 때는 이미 시간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테고, 어쩌면 남들에게 이 글이 읽힐 기회가 절대로 오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남들이 읽게 되기 전에 내가 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전쟁이나 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런 시간상의 차이 때문에 나는 마음놓고 솔직하게 이 글을 쓸 수가 있다. (...)
(그러므로 자기가 겪은 일을 글로 쓰는 사람을 노출증 환자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노출증이란 같은 시간대에 남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는 병적인 욕망이니까.)
『단순한 열정』은 글쓰기의 소재와 방식, 기억과 기록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기존 작품과의 연장선상에 위치하며, 임상적 해부에 버금가는 철저하게 객관화된 시선으로 ‘나’라는 작가 개인의 열정이 아닌 일반적이고도 보편적인 열정을 분석한 반(反)감정소설에 속한다. 아니 에르노는 발표할 작품을 쓰는 동시에 ‘내면일기’라 명명된 검열과 변형으로부터 자유로운 내면적 글쓰기를 병행해왔는데, 『단순한 열정』의 내면일기는 10년 후 『탐닉』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하게 된다. 이러한 글쓰기 방식을 통해 작가는 ‘나’를 화자인 동시에 보편적인 개인으로, 이야기 자체로, 분석의 대상으로 철저하게 객관화하여 글쓰기가 생산한 진실을 마주보는 방편으로 삼았다.
이별과 외로움이라는 무익한 수난
그 수난을 겪은 사람들의 속내를 쓰다
어릴 적 술에 취한 노동자들 틈에서 자랐어도 입신양명해 중산층 엘리트 계급에 안착해 출신 성분과 고향을 버린 작가였다. 하지만 이 사랑에 빠진 후로는 클래식 대신 대중가요를 듣는다. 대중가요는 사랑에 빠진 작가에게‘생활의 일부’이자 ‘(내가) 사는 방식을 정당화’시켜주는 수단이 된다. 또 사랑하는 남자에게 언제나 색다른 멋진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으로 옷, 귀고리, 스타킹 등을 산다. 남자는 고작 오 분쯤 시선을 줄 테지만 그녀에게는 똑같은 옷을 입고 그 사람 앞에 나선다는 일이 마치 ‘그 사람과의 만남을 일종의 완벽한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소홀히 하는 일’처럼 생각된다. 여성잡지를 펴서 제일 먼저 운세란을 읽고 서점에 들러 베스트셀러를 읽으며 공부도 한다. 이러한 태도를 특정 개인만의 열정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순한 열정』은 2001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후 꾸준히 인기를 누려온 작품이다. 이번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에 속하게 되면서는 이재룡 문학평론가이자 숭실대 불문과 교수의 해설이 더해져 작품과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 있게 되었다. 이재룡 교수는 ‘작가’,‘ 글쓰기’라는 단순한 용어만을 고집하며, 이미 정해진 장르 구분을 무색하게 만드는 개성적 글쓰기의 가능성을 연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프랑스어에서‘passion’은 남녀 간의 절절한 애정이란 뜻에서 우리말로‘열정’이라 번역하지만 이것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겪은‘고통’을 지칭하기도 한다. 대학 시절 아니 에르노가 읽었던 사르트르의 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