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가장 근거리에서 영혼까지 들여다보고 담아낸 극우파와 대안우파에 대한 기록
인류학자의 집요한 인터뷰가 극우 논리의 의식적 패턴을 밝혀내다
심도 있는 분석과 르포 정신이 빛나는 책
벤저민 타이텔바움의 『영원의 전쟁: 전통주의의 복귀와 우파 포퓰리즘』은 두 명의 거물급 인물의 정신세계를 탐구해 오늘날 급부상하는 전통주의·우파 포퓰리즘의 사상지도를 그려낸 인류학적 르포르타주다. 이 책이 쓰인 과정은 비밀공작을 방불케 했다. 저자는 녹음기를 들고 럭셔리한 호텔에 드나들면서 암호를 대고 인터뷰를 진행한다. 위험하고도 비밀스러운 사상을 지닌 두 사람은 만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일단 마주 앉자 저자의 질문에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쏟아냈다. 저자를 의심할 법도 한데 특별한 방어 기제도 없이 자기 사상, 기획, 비전을 털어놓는다. 저자는 콜로라도대학 민족음악학 교수로 인류학자이자 극우 정치 전문 연구자다. 그가 콜로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뉴욕과 워싱턴 DC로 날아가 만난 사람은 스티브 배넌이다. 바로 트럼프 선거 캠페인의 수석 전략가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푸틴의 배후 사상가로 알려진 알렉산드르 두긴이다.
저자는 연구 대상을 만나 묻는다. “당신은 전통주의자인가요?” 전통주의Traditionalism는 프랑스혁명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중세의 종교적 전통을 고집하는 사상적 흐름으로 18~19세기에 태동해 100여 년간 지하에서 겨우 명맥을 이어온 철학적·영적 입장이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과 유럽 등에서 반이민주의적 내셔널리즘과 결합해 이데올로기적 급진주의로 흐르고 있다. 저자는 바로 이것을 쫓는다.
학자이지만 그는 곳곳에 연락책을 두고 있다. 여러 인맥을 통해 1년 넘게 공들인 결과 배넌과의 첫 인터뷰를 따낼 수 있었다. 두긴은 저자가 다년간 유럽 급진 극우파에 대한 민족지학적 연구를 하면서 쌓은 인맥으로 만날 수 있었다. 북유럽 음악을 연구했더니 이들이 극우파와 연이 닿는다는 것을 알게 됐고, 거기엔 전통주의 사상이 흐르고 있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때마침 세계는 극우의 흐름에 휩쓸리고 있었는데, 그 아이콘이자 핵심 권력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미국의 트럼프와 러시아의 푸틴에게서도 전통주의의 낌새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저자는 잘 듣는 귀를 가졌다. 음악을 전공하면서 얻은 가장 큰 자원이다. 잘 듣는다 함은 상대에게 공감해 이야기를 끌어낼 줄 안다는 것이다. 그는 이 능력으로 미국과 러시아를 움직이는 두 거물의 머릿속 생각을 캐내, 전 지구적 극우 포퓰리즘의 반란을 작동시키고 있는 협력관계를 밝혀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극우 포퓰리즘을 작동시키는 은밀한 협력관계
배넌은 저명인사다. 그는 트럼프를 권좌에 올린 배후의 인물이다. 트럼프의 3대 공약(해외에서 일자리 되찾아오기, 이민자 줄이기, 해외 참전 중단)은 그가 조합해낸 메시지다. 트럼프 재임 기간에 배넌은 미국과 러시아의 입장이 하나가 되도록 만들었다. 또한 전 세계의 내셔널리즘 정당들을 힘껏 지원하는 한편, 유럽연합과 중국공산당에 대해서는 견제책을 폈다. 저자는 배넌의 행동 동기와 사상을 추적하다가 그의 배경이 실로 복잡하고 은밀한 것을 깨닫고 오래전의 샌디에이고와 홍콩의 뒷골목에까지 들어서게 된다.
배넌은 원래부터 진지하고 무언가를 갈구하는 사람이었다. 해군 엘리트 출신인 그는 동료들이 밤 문화를 즐기러 쏘다닐 때 인근의 형이상학 서점을 찾았다. 그는 육체·정신·영혼의 발전소가 되고 싶다는 목마름으로 불교와 힌두교 주변을 기웃댔다. 월가의 골드만삭스에서 일할 때도 금융 분석을 하는 와중에 혼자 역사, 철학, 영성 등의 지식을 익혔다. 본인 회사를 창업하고서도 독서와 영성 추구는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가 태어난 집안은 좌파 노동계급 쪽이었지만 배넌은 점점 우익 정치에 대한 신념이 강해진다. 2012년 그는 우익 언론 매체 브라이트바스뉴스의 CEO가 된다(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의 부사장도 겸하고 있었다). 그는 자본주의를 끔찍해한다. 인간을 상품으로 대하는 이 사회는 너무 천박하다. 그러니 영성에 복종해야 한다.
알렉산드르 두긴. 그는 한 번도 직접적·공식적으로 푸틴의 조언자였던 적이 없다. 하지만 정치인들에게 화법을 제공한 사람, 일방적 외교 협정을 주선한 사람, 민병대에 자금을 지원한 사람 모두 그였다. 두긴은 1980년에 유진스키 서클이라는 지하 지식인 운동에 가담했다. 이들은 파시즘, 나치즘, 내셔널리즘, 오컬트주의, 신비주의에 관심을 가지며 영적 세계로 입문했다. 두긴은 야성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며 지적이었다. 그는 낮에는 허드렛일을 했지만, 밤이면 등불 밑에서 대출받아온 책을 탐독했다.
우리가 주목할 주요 인물은 두 명 더 있다. 바로 그농과 에볼라다. 그농은 전통주의의 창시자이고 에볼라는 거기에 우파정치적 방향성을 부여한 계승자다. 에볼라를 알게 된 두긴은 그의 저작을 번역하기 위해 이탈리아어까지 배웠다. 그 책들이 러시아에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두긴은 원래 러시아의 공산주의에 반대했다. 하지만 현대 서구를 점점 더 접할수록 소련을 향한 공감과 동경이 생겨났다. 진짜 적수는 미국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그는 국가볼셰비키당을 창설했고, 이후 붉은 군대 안에 있는 오컬트주의자를 매개로 고위층에까지 연줄이 닿았다. 두긴은 『지정학의 기초』를 집필하면서 러시아가 유라시아 영역을 지배할 운명이라고 말한다. 그는 푸틴의 집권 아래서도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에 들어가지 않고 친정부 성향의 정당을 만들어 지정학적 영적 비전을 주장하는 편이 더 유리하리라 판단했다. 그래서 다시 유라시아당을 창당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푸틴의 말이 누군가의 발언과 닮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물론 두긴이었고, 그는 언론을 통해 발언 강도를 높여갔다. ‘세계는 다극성이어야 한다. 미국의 헤게모니에 맞서기 위해 러시아가 역사의 무대에 재등장해야 한다!’
배넌과 두긴, 두 인물은 트럼프와 푸틴이 이끄는 우익 정치의 중심에 들어섰다. 얼핏 보면 미국과 러시아는 적대관계일 것 같지만, 저자의 눈에는 그렇지 않았다. 이 두 사람은 과연 어떤 관계일까? 그들은 서로를 존경하며, 뭔가로 엮여 있을까? 둘의 공통점은 많다. 소프트파워를 행사하고, 문화와 지성주의를 통해 영향력을 끼치려 한다. 둘 다 정부를 위해 일하고, 공통된 목적은 이민 축소와 유럽연합의 파괴다. 물론 차이점도 있는데 배넌은 서구 유럽의 온건한 우익 정당에 침투하려는 반면, 두긴은 더 급진적인 반페미니즘·반민주주의 우익에 손을 뻗으려 한다. 두 사람은 각자 저자 타이텔바움과 인터뷰한다. 하지만 오히려 저자를 가교 삼아 둘이서 대화를 이어가는 분위기다. 저자는 어느새 전통주의의 내부자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런 결론을 내린다. “배넌은 미국의 두긴이고, 두긴은 러시아의 배넌이다. 두 사람 모두 전근대 사회의 가치를 부활시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
정치에 침투한 영성, 하층계급 구원을 말하다
배넌은 트럼프의 대선 캠페인을 펼칠 때 다른 어떤 곳보다 구좌파의 핵심 강세 지역인 미국 중서부 위쪽을 공략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유는 그곳이 영적이며 형이상학적인 힘을 지닌다고 봤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고유한 전통주의 체계를 세운 배넌은 포퓰리즘과 내셔널리즘을 대담하게 융합했다. 그에 따르면 전통주의의 기본 개념은 “현대성, 계몽주의, 물질주의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문화는 내재성과 초월성에 근거한다”.
배넌이 자신의 영적 스승들과 입장 차이를 보이는 곳이 한 군데 있다. 그는 스승들이 귀족 계급을 상위 레벨에 둔 것과 달리, 진정성을 추구하는 데 더 적합한 유형은 노동자 계층이라고 주장했다. 바로 이들이 현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삶을 진실되게 한다면서 ‘민중의 형이상학’이라는 개념을 썼다. 배넌은 물질보다 영성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노동계급을 구하기 위해서는 경제에 중점을 둘 계획이라고 밝혔다. 즉 실용적인 경제 계획으로 이들을 악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