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시민이 함께 읽는 일본사 일본의 역사는 궁금하지만 어쩐지 다가서기 힘든 분야다. 길고 입에 잘 붙지 않는 인명과 용어에서부터 진입 장벽은 높겠지만, 무엇보다 불편한 과거사와 연결된 심리적 거부감이 크다. 일본 유학을 떠나기 전 집안 어른들로부터 “뭐 하러 ‘왜놈의 역사’를 배우느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강좌의 기획자이자 공저자 박훈은 이렇게 말한다. “한국 시민 중에, 일본은 괘씸한 나라이니 그런 나라의 역사는 거들떠보지 않겠다는 사람과, 비록 불편한 역사이긴 하지만 왜 그렇게 됐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일본사 시민강좌를 수강하며 공부를 하는 사람. 일본인의 입장이라면, 이 두 사람 중에서 어느 쪽을 더 경외(敬畏)할까요?”(본서 257쪽) 25여 년 간 50권이 발행된 잡지 『한국사 시민강좌』(일조각, 1987~2012)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이 책의 제목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한국사 시민강좌』가 “학계의 연구 성과와 주요 논점을 일반 시민과 공유”하려는 취지와, “역사를 합리적·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체계화된 지식으로 제시”하려는 목적을 밝혔다면, 다루는 영역은 다르지만 『일본사 시민강좌』 역시 그 계보를 잇는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나라를 알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역사를 이해하고 학습하는 것만큼 빠른 길은 없다. 한일 관계는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역사 문제를 비롯해 정치·경제적 갈등으로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사 시민강좌』는 막연한 적대감을 걷어내고 객관적인 이해와 제대로 된 비판으로 꼬인 실타래를 풀고자 하는 시민에게 함께 읽는 ‘새 일본사’를 제안한다. 통사 No! 열 가지 테마로 접근하는 일본사 대하 역사소설 『대망』에서 전국시대를 호령하던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만화 『배가본드』의 검객(무사) 미야모토 무사시, 임진왜란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일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 일본사는 이렇게 문학이나 대중문화 속 몇몇 영웅들, 또는 한반도와 관련된 문제적 인물의 피상적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기 쉽다. 간혹 학교 강의나 일본의 역사를 다룬 책으로 일본사 공부에 도전해보려 해도 쇼군, 천황, 다이묘, 사무라이 등 한국사에서는 볼 수 없던 신분과 계급, 정치 체제가 낯설게 다가온다. 황실의 혈통이 한 번도 단절되지 않았다는 ‘만세일계’를 주장하지만, 시대 구분에서부터 아스카, 나라, 헤이안, 가마쿠라, 남북조, 센고쿠(戰國), 무로마치, 모모야마, 에도 등등 뭉텅뭉텅 나누어 봐도 우리보다 많고 복잡해서 학습 의지를 꺾곤 한다. 그래서 『일본사 시민강좌』는 통사로 전 시대를 훑어나가기 보다 한국인이 특히 관심을 두고 있을만한 주제, 그러나 본격적으로 일본사를 연구할 때도 핵심적으로 다뤄야 할 토픽을 선정했다. 열 개의 강의는 내용적으로는 각각 독립되어 독서의 부담을 줄이면서도 유기적인 연결로 역사적인 흐름을 그려가는 방식을 취했다. 강의의 문을 여는 1강에서 이재석은 “가까운 역사이든 먼 역사이든 그것을 기억하는 순간은 항상 현재이자 지금”이라고 말하며 천 년도 더 지난 고대사 속 한일관계의 원풍경으로 찾아 들어간다. 그러나 한일고대사라면 우리가 늘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백제의 ‘선진 문화 전승론’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팽팽한 자존심 싸움 속에서도 필요에 따라서는 밀월 관계를 맺었던 신라와 일본의 라이벌 구도를 사료 속 흥미진진한 사건을 통해 제시한다. 2강에서는 국민정서와 결부되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일본 임금’의 호칭 문제를 파고든다. ‘천황’이냐 ‘일왕’이냐는 갑론을박은 JTBC 뉴스룸의 팩트체크에서도 등장했지만 김현경은 성급히 답을 내기보다, ‘왜왕’에서 시작된 호칭이 신화와 역사가 뒤얽히고 때로는 외부(중국)와의 관계 속에서 뒤얽히면서 ‘천황’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꼼꼼히 추적한다. 논지 전개를 위해 복잡한 일본 신화를 흥미롭고 간결하게 요약한 정리는 2강의 고마운 부록이기도 하다. 3강에서 박수철은 16세기 일본 사회가 외부로부터 받은 자극과 대응, 그 드라마틱한 변화를 다룬다. 배경은 군웅할거와 하극상의 시대로서 소설, 영화, 드라마의 소재로도 수없이 묘사된 ‘전국시대’다. 오다 노부나가와 다케다 신겐 등의 등장인물을 꼽을 수 있지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총(화승총)’과 ‘은’(의 제련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선진 문물은 서양과 조선을 통해 들어왔는데 쇄국을 고수하지 않던 개방성이 넘쳤던 시기였기에 가능하기도 했다. 지방 유력자들이 자유롭게 경쟁했던 전국시대라는 ‘열린 사회’의 특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4강에서 일본사상사 연구자 김선희는 칼을 찬 무사가 문치(文治)의 상징인 유교 경전을 공부했던 상반된 이미지를 설명하러 에도시대로 떠난다. 중국에서 탄생한 유학은 한반도(조선)을 거쳐 일본에서 자유롭고 다양한 갈래로 퍼져나가 취미나 실용으로 여겨졌으며 특히 세속을 따르는 특성을 가졌다. 저자는 유학이라는 공통분모에 서로 다른 분자가 어떻게 올라탔는지를 비교하며 살피는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도 일본과 우리 사이에 가로놓인 친근감과 이질감의 차이도 이해하는 길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 제안한다. 5강은 현대 일본의 출발점이자, 일본을 동양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를 이룩하며 강대국으로 도약케 했던 ‘메이지유신’을 다룬다. 메이지유신 연구의 권위자 박훈은 웨스턴 임팩트, 즉 서세동점의 혼란 속에서 일본이 겪었던 시행착오와 대응을 문명개화와 부국강병이라는 키워드로 제시하며 교육을 포함한 각종 제도의 정비, 식산흥업에 바탕을 둔 경제 정책, 군비 강화와 대외 팽창 전략 등의 면면을 살핀다. 메이지유신이 대표하는 엘리트 주도의 선제적 사회 변혁을 맛본 일본, 민중의 직접적인 참여와 행동을 통해 사회적 변곡점을 만들어간 한국은 서로의 모습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이해의 폭을 넓혀 갈 수 있을 것이다. 6강에서 박은영은 애니미즘, 불교, 신도를 포함한 일본(인)의 종교관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일본과 그리스도교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데, 유입과 전파가 활발했던 전국시대, 쇄국 시대에 철저한 박해를 받고 숨어들어갔던 에도시대, 강화되는 국가주의와 천황제 속에서 활로를 모색한 메이지시대 등을 넘나들며 시대별로 고찰한다. 한국보다 먼저 서양의 사상과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근대화를 이룬 일본에서 유독 그리스도교의 영향이 미약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번쯤 가졌을 이 의문의 답을 일본인의 종교관을 맥락적으로 검토하며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7강은 이 책의 문제적 키워드 ‘천황’과 핵심적 키워드 ‘메이지유신’이 다른 각도에서 재등장하는 심화편이다. 2강에서 고대사 속 명칭을 통해 살펴본 천황은 과연 어떤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박삼헌은 메이지유신 전후 격변기를 거치며 각고의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 천황이 정치의 주체로 재등장하는 과정을 사진과 초상화 등의 시각 이미지를 곁들여 흥미롭게 서술한다. 또한 메이지시대 이후 천황이 ‘국민의 천황’으로 기억되고 해석되는 양상을 메이지신궁과 성덕기념회화관 등 지금 우리가 찾아가 확인할 수 있는 공간과 장치를 통해 현재적으로 자리매김하며 상징천황제의 앞날까지 가늠해본다. 일본을 묘사하거나 일본사를 서술할 때는 무사, 막부 등 유독 ‘남성적’ 요소가 선행, 강조되곤 한다. 8강에서 이은경은 남성만으로 구성된 근대 일본 정부가 여성에게 기대했던 역할과 모습에 실제 여성들은 어떻게 반응했는지 그들의 입장과 목소리에 귀 기울여 읽는 시도를 권한다. 주된 고찰 대상은 교육과 정치, 두 영역에서 일어난 여성 문제와 그들의 활동이다. 즉 양처현모 육성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사회진출을 위한 진정한 고등 교육에 힘써 쓰다주쿠대학을 설립한 쓰다 우메코와, 모성보호논쟁을 벌이고 여성참정권 획득 운동을 펼친 요사노 아키코, 히라쓰카 라이초, 이치가와 후사에 등 여성활동가가 분투했던 현장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고액권 지폐 도안에는 여성 인물(신사임당, 쓰다 우메코)을 배치했지만, OECD 국가 중 젠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