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마메타 도시키 and 17 others · War
4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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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동원 피해의 진상규명과 보상을 위해 싸워온 피해자.유족.한일 시민의 목소리를 한 권에 응축한 책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하고 소속 연구원, 유족이자 활동가인 이희자 대표, 일본의 시민운동가, 한국의 변호사까지 18명의 필자가 집필에 참여했다. 길게는 20년, 많게는 30차례에 걸쳐 시베리아에서 파푸아뉴기니까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남아 있는 비극의 역사 현장에 찾아가 취재하고, 피해당사자와 유족, 목격자의 구술.인터뷰를 생생하고 촘촘하게 기록했다. 노동자, 군인.군속, 군 '위안부', 전범, 포로, 원폭피해자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드러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강제동원 피해자의 목소리를 쫓는 이 여정은 참으로 전방위하다. 역사학자 이이화의 말마따나 "하나의 민족운동사"라 해도 좋을 책이다.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서는 '군함도'라 불리던 하시마와 인근의 다카시마를 직접 취재해 강제동원의 실상을 담았다. '군함도'와 강제징용 시설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일본의 역사왜곡 시도와 이를 저지하기 위해 펼쳤던 필사의 노력을 담았다. 2부에서는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 전역에 걸쳐 전쟁의 군수품 조달에 동원됐던 조선인 노무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3부에서는 시베리아에서 파푸아뉴기니까지, 아시아.태평양 각지에서 군인.군속, 군 '위안부'뿐 아니라 전범, 포로 등 미처 알지 못한 다양한 모습으로 일본의 침략전쟁에 동원됐던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4부에서는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에 맞선 피해자와 유족들의 법정투쟁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진상규명, 일본정부의 공식적 책임 인정과 배상 등 여러 가지 남겨진 과업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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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추천사 프롤로그 1부──군함도, 조선인을 기억하라 ‘군함도’라 불리는 섬에 가다 조선인들은 어떻게 끌려갔을까 ‘지옥섬’ 하시마의 하루 강제징용의 현장, 세계유산이 되다 * 강제동원 역사 전체를 밝혀라 2부──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군수품 조달에 동원되다 환영받지 못한 여자근로정신대의 귀국선 수몰된 136명, 조세이 탄광의 비극 함포사격의 타깃이 된 ‘철의 도시’ 가마이시 아사지노 비행장에 버려진 유골들 우편저금과 연금 기록으로 아버지를 찾다 오키나와 전쟁에 끌려간 조선인들 * 오사카의 강제연행 유적지 안내판 설치와 우익들의 공격 3부──시베리아에서 파푸아뉴기니까지, 전쟁의 총알받이로 동원되다 누가 조선 청년을 전범으로 만들었는가 일본군으로 죽은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서 시베리아에 억류된 조선인 포로들 하이난 섬 ‘조선촌’에 묻혀 있는 살해당한 조선인들 파푸아뉴기니의 유골들 ‘위안부’ 김학순 할머니와 나 * 아버지의 유해를 찾아달라! 4부──우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조선인 강제연행·강제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여정 야스쿠니신사와 싸우는 한국인 유족들 피해자 보상의 길이 열리기까지 일제 강제동원 사건 17년째 소송 중 피폭자는 어디에 있어도 피폭자다 재한군인군속 재판의 발자취 한일협정을 다시 생각한다 * 식민주의 청산과 평화 실현을 위한 한일시민공동선언 에필로그 주 찾아보기

Description

얼마 전 외교부가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을 이전하라는 공문을 부산의 지자체에 보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독일에서 한일 양자회담이 열리기 불과 사흘 전의 일이었다. 회담 자리에서도 일본 측에게 공문 발송에 대해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일간지는 한국정부가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 후 이듬해인 2016년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돕는 민간단체들에 대한 보조금을 일제히 중단한 사실을 보도했다. 와중에 일본 고위층의 역사 부정 망언은 연일 뉴스를 장식한다. 이 달만 해도 일본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에서, 일본 외무성 심의관이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는 발언을 해 국내외의 비판을 받았다. 일본은 왜 소녀상을 ‘위안부’상이라고 고쳐 부르려 하고 자꾸 눈앞에서 치우려고 할까. 한국정부는 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만하고 지방정부와 여론을 거스르면서까지 일본 눈치를 살피는 걸까. 한일 정부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고 공언한 12?28 ‘위안부’ 합의의 진실은 무엇일까. 일제 식민지배 30년, 해방 후 70년… 강제동원 100년의 진실을 밝히다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은 한국강제병합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청산되지 않은 한일 과거사, 일제 강제동원 피해의 진상규명과 보상을 위해 싸워온 피해자·유족·한일 시민의 목소리를 한 권에 응축한 책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하고 소속 연구원, 유족이자 활동가인 이희자 대표, 일본의 시민운동가, 한국의 변호사까지 18명의 필자가 집필에 참여했다. 길게는 20년, 많게는 30차례에 걸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남아 있는 비극의 역사 현장에 찾아가 취재하고 피해당사자와 유족, 목격자의 구술?인터뷰를 생생하고 촘촘하게 기록했다. 노동자, 군인?군속, 군 ‘위안부’, 전범, 포로, 원폭피해자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드러난 강제동원 피해자의 목소리를 쫓는 이 여정은 참으로 전방위하다. 역사학자 이이화의 말마따나 “하나의 민족운동사”라 해도 좋을 책이다. 일본군 ‘위안부’와 독도 영토 분쟁이 전부가 아니다 가려진 역사의 증인들을 만나다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서는 ‘군함도’라 불리던 하시마와 인근의 다카시마를 직접 취재해 강제동원의 실상을 담았다. ‘군함도’와 강제징용 시설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일본의 역사왜곡 시도와 이를 저지하기 위해 펼쳤던 필사의 노력을 담았다. 2부에서는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 전역에 걸쳐 전쟁의 군수품 조달에 동원됐던 조선인 노무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3부에서는 시베리아에서 파푸아뉴기니까지, 아시아·태평양 각지에서 군인·군속, 군 ‘위안부’뿐 아니라 전범, 포로 등 미처 알지 못한 다양한 모습으로 일본의 침략전쟁에 동원됐던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4부에서는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에 맞선 피해자와 유족들의 법정투쟁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진상규명, 일본정부의 공식적 책임 인정과 배상 등 여러 가지 남겨진 과업을 제시한다. 군함도, 조세이 탄광, 하이난 섬, 파푸아뉴기니… 비극의 역사 현장을 찾아가다 나가사키 항에서 약 1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하시마(군함도)는 면적 0.063제곱킬로미터(야구장 두 개 정도 크기)의 작은 섬이다. 미쓰비시는 1916년 일본 최초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인 7층 아파트를 이곳에 세웠다. 좁은 섬에 근대식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서는 모습이 마치 군함처럼 보여 그때부터 ‘군함도’라고 불렸다. 마치 신분 계급을 상징하듯 방파제 끄트머리 가장 낮은 곳에 조선인·중국인 노동자의 숙소가, 그 위에 일본이 최초의 아파트라고 자랑하는 광부들의 주택이, 그 위에 관리인 아파트, 가장 높은 곳에 관리소장의 사택, 섬 꼭대기에는 신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고故 서정우 씨는 16세에 하시마 탄광으로 끌려가 강제노동을 하다가 인근 나가사키 미쓰비시 조선소로 옮겨갔고 그곳에서 원자폭탄 피해를 입었다(책 65쪽에 일본인 하야시 에이다이가 찍은 높이 10미터의 방파제 위에 서 있는 서정우 씨의 사진이 실려 있다).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자 섬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시체 수거 작업에 동원되어 피폭되기도 했다. ‘나가사키 재일조선인 인권을 지키는 모임’은 2만 명의 조선인이 피폭을 당하고, 그중 절반이 사망에 이르렀다고 추정한다. 하시마 바로 옆에 있는 섬 다카시마에는 미쓰비시의 창업자 이와사키 야타로의 거대한 동상과 석탄자료관이 자리하지만, 강제동원에 관한 기록은 단 한 줄도 남아 있지 않다. 산속으로 들어가면, 한때 조선인 희생자들의 유골이 담긴 항아리가 족히 100개는 넘게 들어 있었다는 납골당과 공양탑이 있다. 지금은 파괴되어 더는 들여다볼 수 없게 되었다. 책에는 원폭피해자 2, 3세와 시민단체 활동가로 꾸려진 평화기행단이 하시마와 다카시마를 직접 찾아가 취재한 내용을 담았다.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일본이 ‘근대화의 상징’ ‘자랑스러운 세계유산’으로 포장하려는 군함도의 처절한 비극과 마주하게 된다. 대만에서 약 1,0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하이난 섬에는 ‘조선촌’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1939년 하이난 섬을 점령한 일본은 이곳을 남방 진출의 거점으로 삼았다. 전황이 악화되어가던 1943년 조선총독부는 형무소에 있던 조선인 죄수들까지 동원해 조선보국대라는 이름으로 섬에 보냈다. 일본은 하이난 섬의 토지와 가축, 각종 자원을 수탈하고, 군용시설을 짓기 위해 현지인과 아시아인을 강제노동시키고, 심지어 성노예로 삼고 학살했다. 1945년 당시 도로 건설에 동원되었던 푸아룽 씨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일본군은 아무 이유도 없이 조선인들을 두 사람씩 나무에 매달아 때렸다. 조선인이 조선인을 때리게 하면서 의자에 앉아 그 모습을 구경했다. 죽으면 다른 조선인에게 구덩이를 파서 묻게 했다.” 그해 8월 15일 패전한 일본군은 1,000여 명의 조선인에게 갱도를 파게하고 무기와 물자를 묻었다. 그리고 그 조선인들을 전부 살해해 한곳에 묻었다. 일본군이 모두 철수한 후 현지 주민들은 조선인이 묻힌 곳을 ‘천인갱’이라 부르고, 애도의 뜻을 담아 마을 이름을 ‘조선촌’으로 바꿔 불렀다. 하이난 섬의 이 같은 전쟁범죄는 기슈 광산을 운영했던 이시하라산업의 만행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1998년부터 2006년까지 재일조선인과 일본 시민활동가, 연구자들이 모여 30차례에 걸쳐 하이난 섬 조선촌을 찾았다. 마을 사람들의 증언과 수차례의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2001년에는 한 달간 발굴 작업을 시도했는데, 땅을 파자마자 100여 구가 넘는 유골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 정부, 그리고 2004년 설치된 강제동원위원회에 차례로, 체계적인 유골 발굴, 관련 문서 공개와 진상규명을 요청했으나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2006년 ‘기슈 광산의 진실을 밝히는 모임’은 일본인 고고학자, 발굴 전문가를 동반하고 독자적으로 발굴을 진행했다. 하이난 섬에 강제동원되었다가 가석방되어 귀향한 한국인들을 찾아 새로운 증언을 듣기도 했다. 모두가 열대기후 속 열악한 환경과 일본군의 폭력 속에서 기아, 질병, 가혹한 노동에 쓰러져간 동료들의 이야기를 생생히 전했다. 조선촌은 현재 대규모 개발과 토지 강제수용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조선인이 매장된 땅 절반이 이미 토사로 뒤덮였고 그 위에 도자기 공장이 세워졌다. 현지인은 말한다. “한국정부가 조선인이 묻힌 장소를 어떻게 해줄 수 없는지 그 방법을 찾아보라”고. 노동자, 군인·군속, 군 ‘위안부’, 전범, 원폭피해자, 재일조선인… 증인들의 마지막 목소리를 귀담아듣다 1947년 싱가포르의 창이형무소 교수대에서 죽음을 맞이한 조선 청년 조문상은 개성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식민지 조선의 엘리트였다. 그는 연합군 포로를 학대했다는 이유로 전범이 되었고 교수형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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