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어떻게 영웅이 되는가?
무력한 어머니와 우상화된 아버지를 떠나
자신의 길을 찾는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들의 심리적 모험!
《여성 영웅의 탄생》은 융 심리학자이자 심리 상담가인 저자가 인류의 집단 무의식이 발현된 신화·민담·동화와, 상담실을 찾은 여성들의 꿈을 분석해 ‘여성 영웅의 원형’을 찾아내고 여성 영웅이 탄생하는 과정을 규명한 책이다. 여성의 정신 발달에 관한 이해의 폭을 획기적으로 넓힌 책으로 평가받는 이 책은 사회적 성취를 위해 분투하던 ‘여성 영웅’들이 갑자기 삶의 의미를 잃고 우울과 상실감에 빠지게 되는 현상의 원인을 밝히고 심리적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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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신화학자로 불리는 조지프 캠벨은 동서양의 모든 신화를 연구한 끝에 ‘영웅의 원형적 여정’을 찾아냈다. 영웅이란 “보통 사람의 성취와 경험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을 발견하거나 이루어낸 사람” “자기 삶을 자기보다 큰 것에 바친 사람”이다.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 수메르 신화의 길가메시는 물론이고, 예수와 붓다도 영웅이다. 미궁과 지하 세계로 들어가 괴물과 용을 물리치고, 목표를 이룬 뒤 귀환하는 영웅의 여정은 모험으로 가득 찬 인간 삶에 대한 훌륭한 비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위대한 영웅들의 판테온에서 왜 여성 영웅은 찾아보기 어려울까? 여성의 영웅적 여정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융 심리학자이자 심리 상담가인 모린 머독은 1981년 9월 어느 날, 이러한 의문을 품고 직접 캠벨을 찾아갔다. 캠벨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여성은 여정을 떠날 필요가 없습니다. 여성은 그 자체로 완성된 존재입니다.” 정말 그럴까? 《여성 영웅의 탄생》은 바로 그날 시작되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여성들은 집에서 얌전히 영웅을 기다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스스로 영웅의 길에 나선 여성들에게는 그들만의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열등한 여성’을 버리고 빛나는 갑옷을 입은 ‘아버지의 딸들’,
성공을 향해 내달리던 그 여성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대체 이 모든 게 다 무엇을 위한 걸까?” 당당하게 삶을 사는 듯 보였던 여자의 입에서 어느 날 갑자기 절망적인 탄식이 터져 나온다. 아무리 노력해도 충분하지 않다는 불안, 성공에 대한 끝없는 강박, 헤어날 수 없는 우울증까지, 모린 머독은 심리 상담가로 일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성취를 이룬 많은 여성들이 공허감과 상실감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저자는 그러한 고통의 이유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남성 영웅의 길을 따른 데 있음을 밝혀낸다. 또한 낡은 질서를 깨부수고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며 진정한 자기를 실현하는 영웅의 과업을 이루기 위해 여성 영웅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내적 성장의 길을 찾아낸다.
《여성 영웅의 탄생》은 상처 입고 버림받은 내면의 여성성이 치유되는 과정을 그린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여성이 왜 ‘어머니’로 상징되는 여성성을 거부하고 ‘아버지’를 동일시하며 남성의 길을 좇게 되는지, 남성 영웅의 길에서 여성은 어떠한 고통을 받는지, 또 어떻게 여성성을 회복할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들려준다.
저자는 인간 무의식과 삶의 원형이 담긴 다양한 신화와 동화, 민담 속에서 ‘여성 영웅’의 원형을 찾아낸다. 에로스와 프시케 신화에서 ‘낭만적 사랑의 신화’에서 벗어나는 여성을 발견하고, 데메테르 여신과 딸 페르세포네 이야기에서 어머니-딸 관계의 원형을 들여다본다. 호피족 창조 신화의 ‘거미 할머니’와 아프리카의 관능의 여신 ‘오순’에게서 창조하고 보호하는 여성성을 보고, 파르시팔과 어부 왕의 ‘성배 전설’에서는 여성 내면에 존재하는 상처 입은 남성성을 본다.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난 ‘아테나’처럼 차가운 이성으로 무장한 ‘아버지의 딸’들은 이제 내면 깊숙이 감춰 둔 슬픔과 분노를 대면하는 모험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의 여성 영웅은 갑옷을 입고, 칼을 집어 들고, 자신의 가장 날랜 준마를 골라 타고 전장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학위, 직함, 돈, 권위라는 보물을 발견한다. 남자들은 그녀에게 미소 짓고, 그녀와 악수하고, 자신들의 영역에 온 것을 환영한다. 여성 영웅은 일과 육아를 포함한 모든 것을 완벽히 처리해내면서 처음 자신이 바라던 대로 이루어진 데 만족할 것이다. ……
그러나 성취에 점점 중독되어 자신이 새로 얻은 권력에서 오는 마약 같은 도취감에 빠지게 된다. 내면에서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느낌이 일기 시작하거나, 육체적으로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기도 하는 단계가 대개 이쯤이다. “도대체 이 모든 게 뭘 위해서지? 내가 얻고자 했던 것들은 다 이루었는데 마음이 너무 허전해. 왜 이렇게 외롭고 황폐하고 갉아 먹히는 느낌이 드는 걸까? 도대체 이 배신감은 뭐야? 대체 내가 뭘 잃어버린 거지?” - ‘머리말’에서
여자이기를 거부하는 소녀들,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남성의 시각이 보편으로 통하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흔히 여성은 산만하고, 변덕스럽고, 지나치게 감정적이어서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고 평가되었다. 남성들이 규정한 문화의 잣대로 여성이 스스로 자신을 평가한다면, 자신에게 결함이 있거나 남성과 비교해 어딘가 부족하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실제로 많은 여성이, 자기도 여성이면서 여성은 나약하다거나 열등하다거나 의존적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의 여성성을 훼손하고 ‘남자처럼 훌륭해지려고’ 애쓴다. 이 여성들이 가장 먼저 평가 절하하는 대상은 대개 어머니이다.
어린 여자아이는 어머니를 보고서 여성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우기 시작한다. 만일 어머니가 무력하다면 딸은 여성이 되는 것을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느낀다. 어머니같이 되고 싶지 않아 다른 필요한 것을 희생하고서라도 힘을 얻으려 애쓴다. 많은 딸들은 자신들의 어머니가 ‘무슨 일이 일어나건’ 너무 쉽게, 너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분노하며 산다. ― 1장 영웅의 길에 선 여자들·47~48쪽에서
우리 사회는 어머니라는 자리에 엄청난 책임을 지우지만, 어머니는 결코 그에 합당한 보상이나 갈채를 받지 못한다. “어머니의 공로는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면서 곧잘 온갖 사회 병폐의 책임을 돌리고 비난하기에 바쁘다.”(37쪽) 이를 알 리 없는 딸의 눈에 비친 어머니는 ‘낡은 질서’를 그대로 보여주는 존재일 뿐이다. 머독의 상담실을 찾은 한 여성은 이렇게 고백한다.
“어머니랑 잘 지내본 적이 없어요. 나는 어머니가 나를 질투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나는 학교 공부를 곧잘 했고 어머니 자신은 받아본 적이 없었던 고등 교육의 기회까지 누렸으니까요. 난 내 인생을 어머니처럼 끝내고 싶지 않았어요. 아빠처럼 되고 싶었죠. 내가 보기에 아빠는 생각이 유연하고 인생에서 성공했고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해하는 것 같았어요. 엄만 행복한 적이 없었어요. 그 당시에 나는 엄마의 희생 덕분에 아빠가 성공할 수 있었다는 걸 몰랐어요. 엄마의 자기 혐오와 엄마가 딸에게 보낸 모순된 메시지가 모두 우리 사회가 여성을 대하는 방식에서 발생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죠.” ― 1장 영웅의 길에 선 여자들·41~42쪽에서
딸은 자신의 재능과 앞으로 누리게 될 자유로운 삶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 때문에 어머니가 자신을 구속하려 한다고 여긴다. 그러다 결국은 자신을 지지하지도 않으면서 시시콜콜히 잔소리나 해대고 완고하기까지 한 어머니에게서 달아나, 강력하고 전지전능해 보이는 남성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시작한다.
제우스 머리에서 태어난 아테나 여신
- ‘아버지의 딸’의 탄생
어머니에게서 도망쳐 ‘구원자’ 아버지 곁으로 온 딸은 ‘아버지의 딸’이 된다. ‘아버지의 딸’은 “어머니를 거부하면서 자신을 주로 아버지와 동일시하고, 아버지와 남성적 가치로부터 관심받고 인정받기를 갈구해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