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박훈 · History
2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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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인문 강의' 6권.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박훈 교수의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일본 역사에서 메이지 유신은 실로 극적인 변혁이었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적극적인 서양 문물 수용과 과감한 체제 개혁을 단행한 일본은 동양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를 이룩하며 강대국으로의 도약을 준비할 수 있었다. 왜 유독 일본은 이를 신속히 받아들였고, 큰 파탄 없이 사회변혁을 이루었던 것일까? 대체 그 시기 일본 열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일본사 연구의 권위자 서울대 동양사학과 박훈 교수는 막부 말기에서 메이지 유신에 이르는 정치 변혁의 다층적인 역사를 탐색하며, 19세기 일본의 극적인 도약이 가능할 수 있었던 조건들을 추적한다. 당대 일본인들의 대외 인식, 구체제인 막부 세력과의 영향 관계, 서구화에 앞선 유학(儒學)의 영향까지 살피며 메이지 유신의 전모를 파헤치는 이 책은,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 대한 단선적인 시각과 편견을 깨는 날카로운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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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머리말 1장 도쿠가와 체제의 구조와 특징 1. 정치체제의 성격: 막부, 번 조정 2. 사무라이 신분과 쇄국 체제 | 더 살펴보기 | 많은 인구, 더 많은 도시인구 2장 일본은 어떻게 서양 문물을 신속히 수용할 수 있었나 1. 서양의 외압과 ‘과장된 위기의식’ 2. 위기에 대한 대응, 해외웅비론(海外雄飛論) 3. 신속한 개항 결정의 비밀 | 더 살펴보기 | 해외 유학생과 사절단 파견 3장 도쿠가와 막부는 왜 패했는가 1. 자기 혁신 하는 ‘앙시앵 레짐’, 도쿠가와 막부 2. 막말기 도쿠가와 막부의 정치적 약점 | 더 살펴보기 | 막부보다는 일본! 가쓰 가이슈의 결단 4장 유학의 확산과 ‘사대부적 정치 문화’의 형성 1. 도쿠가와 시대 유학의 위치와 19세기의 확산 2. ‘사대부적 정치 문화’란 무엇인가 | 더 살펴보기 | 사무라이들의 독서 모임, 회독(會讀) 5장 ‘사화(士化)’하는 사무라이와 메이지 유신 1. 사무라이의 ‘사화(士化)’ 2. ‘학적(學的) 네트워크’와 학당(學黨)의 출현 3. 상서(上書)의 활성화와 그 정치적 역할 4. 군주 친정(親政)의 요구와 실현 | 더 살펴보기 | 당파 혐오와 근대 동아시아의 정당정치 맺음말 주(註) 더 읽을 거리 참고 문헌

Description

19세기 동양에서 유일하게 근대화를 이룬 나라, 일본의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 제6권,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박훈 교수의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일본 역사에서 메이지 유신은 실로 극적인 변혁이었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적극적인 서양 문물 수용과 과감한 체제 개혁을 단행한 일본은 동양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를 이룩하며 강대국으로의 도약을 준비할 수 있었다. 왜 유독 일본은 이를 신속히 받아들였고, 큰 파탄 없이 사회변혁을 이루었던 것일까? 대체 그 시기 일본 열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일본사 연구의 권위자 서울대 동양사학과 박훈 교수는 막부 말기에서 메이지 유신에 이르는 정치 변혁의 다층적인 역사를 탐색하며, 19세기 일본의 극적인 도약이 가능할 수 있었던 조건들을 추적한다. 당대 일본인들의 대외 인식, 구체제인 막부 세력과의 영향 관계, 서구화에 앞선 유학(儒學)의 영향까지 살피며 메이지 유신의 전모를 파헤치는 이 책은,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 대한 단선적인 시각과 편견을 깨는 날카로운 역작이다. ■ 일본의 도약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19세기 동양에서 유일하게 근대화를 이루었던 나라, 일본. 그 계기가 되었던 메이지 유신은 실로 극적인 변혁이었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적극적인 서양 문물 수용과 체제 개혁을 단행한 일본은 동양에서 가장 먼저 근대 국민국가를 수립하며 강대국으로의 도약을 준비할 수 있었다. 19세기 말까지 미국과 서유럽의 몇 개국 정도를 제외하고, 산업혁명과 헌정(憲政)을 함께 이룬 나라는 유라시아 대륙 맨 끝의 일본이 유일했다. 조선 땅의 근대국가 수립을 꿈꾸던 김옥균은 그것을 목도했던 당대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었다. “1884년 33세의 김옥균이 구체제와 격투하고 있을 때(갑신정변), 일본은 성공적으로 근대 국가를 건설하고 있었다. 일본에 건너간 김옥균의 눈에 일본의 성공은 휘황찬란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가? 김옥균은 이 물음에 답을 얻기도 전에 암살당하고 말았고, 김옥균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물음을 계속 던졌다.” (6쪽) 일본 역사를 바라보는 한국인이라면 두 나라의 역사를 비교하며 한번쯤은 던져 보게 되는 질문일 것이다. 메이지 유신을 대하는 한국인의 심정은 그 어느 국민보다 복잡하다. 한편에서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의 역사에 분노하며 그 원인을 메이지 유신에서 찾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와 별로 다를 바 없던 일본이 어떻게 그런 변혁에 이를 수 있었는가 놀라워하며 궁금증을 던지기도 한다. 왜 유독 일본은 이를 신속히 받아들였고, 큰 파탄 없이 사회변혁에 성공했던 것일까? 대체 그 시기 일본열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일본사 연구의 권위자 서울대 동양사학과 박훈 교수는 그 동안의 연구와 고민을 바탕으로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탐색하며, 일본의 막부 말기에서 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조망한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메이지 유신은 당대 일본 지배층의 일부 세력이 전근대의 잔재인 도쿠가와 막부 세력을 무너뜨리고, 천황을 옹립한 새 정부를 수립하여 적극적인 근대화 정책을 편 사건이라는 점까지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하루아침의 쿠데타로만 이루어진 변혁은 아니었다. 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지는 막부 말기의 시기는 일본의 정치 주체들이 서로 다양한 영향을 주고받은 다채롭고 역동적인 공간이었다. 이 책은 ‘메이지 유신’이라는 변혁의 뇌관이 폭발하기까지, 과거로부터 이어진 당대 일본 정치사의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단면들을 분석한다. ■ “세계는 지금 바야흐로 전국시대(戰國時代)”: 19세기 일본 지식인들의 ‘과장된 위기의식’ “지금 세계는 모두 7웅(雄)으로 나누어져 주나라 말기의 이른바 7웅이라는 것과 약간 차이가 있지만 그 형세는 매우 비슷하다. 러시아와 튀르크는 토지가 넓고 군대가 강하며 땅을 접하고 자웅을 다투는 것이 진(秦)과 초(楚)의 형세이다. 만청(滿淸: 청나라)은 부강하고 동방에 있으니 제(齊)와 같다. 무굴 제국과 페르시아는 그 중간에 있으니 한(韓)과 위(魏)이다. 신성 로마 제국은 명위(名位)가 있어 여러 나라(諸蕃)가 존숭하기는 하지만 사실은 프랑스, 에스파냐, 영국 등 여러 나라와 백중지세이다. 큰 나라는 한(韓), 위(魏), 작은 것은 송(宋), 위(衛), 중산(中山)일 뿐이다. 또한 신주(神州: 일본)가 만청의 동쪽에 있는 것은 마치 연(燕)이 제(齊)와 조(趙)에 가려져 있는 것과 같다.” (57쪽) 당시 일본인들은 어떻게 서양 문물을 일찍부터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일까? 일본의 지식인들이 세계정세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해외로의 팽창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은 메이지 유신이 발발하기 한참 전의 일이었다. 그들은 당시 열강들이 배를 타고 각국으로 진출하는 세계정세를 군웅이 할거하던 중국 고대의 ‘전국시대’에 비유하며, 일본이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이러한 흐름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위기를 부르짖는 이들의 목소리는 비록 다수는 아니었지만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북방에는 러시아라는 교활한 나라가 있어, 신주(神州: 일본)를 빼앗으려고 노리며 항상 남하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아아, 한탄스럽게도 사람들은 작은 지혜에 우쭐대고 있어 러시아인의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합니다. 작은 새의 좁은 식견으로 대붕(大鵬)이 하는 일을 비웃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장작의 비유 그대로이니, 쌓아 놓은 장작 위에 불을 붙이고 그 위에서 자면서 아직 불길이 올라오지 않았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일본의 모습이 바로 이러합니다.” (55쪽) 재미있는 것은 당시 이들의 이러한 위기의식이 상당히 과장된 것이었다는 점이다. 시간이 흐른 후 이 위기감이 정말로 현실화된 시점에서 이 주장들을 보면 역사의 오묘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아직 이 시기에 서양 열강은 일본을 침략할 의사도 능력도 없는 상태였으므로, 실제로 당시 외세의 압력은 이들이 생각했던 것만큼 위협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과장된 위기의식’은 일본 사회가 일찍부터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개혁을 촉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 책은 당시 이런 주장을 펼친 지식인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인용하고 그들의 세계 인식을 분석함으로써, 19세기 일본 사회의 담론과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해 준다. ■ 전근대 일본의 ‘앙시앵 레짐’, 도쿠가와 막부의 혁신과 몰락 1867년 10월 14일, 에도 막부의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메이지 천황에게 정권을 돌려준다는 대정봉환(大政奉還)을 선언했다. 일본 역사에서 수백 년 동안 막부에게 주어졌던 권력이 다시 천황에게로 넘어가고, 새 시대로 가는 길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의 이러한 선택으로 구체제인 막부 세력은 변혁 세력과의 전면적인 충돌은 피하게 되어,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가는 길목에 막대한 부담을 남기지 않았다. 우리는 역사를 생각할 때 흔히 변혁 세력의 활동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저자는 구체제의 각 행위자들이 구질서 내에서 어떤 행동과 조치를 취하는가 하는 것은 역사의 고비에서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하며, 이처럼 메이지 유신은 전근대 일본의 ‘앙시앵 레짐’이었던 도쿠가와 막부의 여러 역사적 선택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밝힌다. 결과적으로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한 공로의 반은 도쿠가와 막부에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19세기 일본의 과장된 위기의식은 막부의 서양 문물 수용과 자기 개혁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19세기 중반은 막부 타도의 역사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막부 개혁의 역사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또한 막부는 여전히 막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결정적인 순간에 스스로의 해체를 용인하여, 일본의 근대화를 앞당기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일반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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