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하십니까?

안녕들 하십니까 출판팀 and other
53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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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5권. 2013년 12월부터 두 달간 곳곳에 나붙었던 대자보들 가운데 200여 장을 추려 묶음으로써 ‘안녕들 사건’을 증언하는 생생한 기록이자 사건을 일단락 짓는 매듭이다. 동시에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이 ‘안녕들 대자보’ 이후 각자의 삶에서 어떠한 변화와 고민을 지속하고 있는지를 담아 ‘안녕들 사건’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갈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인터넷과 SNS의 시대에 낡은 형식이라고 여겨지던 손글씨 대자보 한 장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끌어냈을까? 무엇이 그들의 손과 마음을 움직였을까? 1980~90년대 운동권의 전유물이었던 이전의 대자보들과는 달리 이번 ‘안녕들 대자보’는 ‘나는 안녕하지 못한데 당신은 안녕한가?’라며 말을 걸고 있다. 그 말 걸기에 화답하면서 스스로의 안녕치 못함이 ‘사회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서로 확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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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프롤로그 안녕하지 못함에 안녕을 고하며 - 22 1. 안녕들 하십니까 - 37 안녕들 하십니까?/아니요, 안녕 못합니다/‘불법’이란 무엇인가요?/안녕하지 못합니다. 불안합니다/누군가 내게 안녕하냐고 묻는다면/즐거운 日記/아무것도 바뀌지 않을까봐 너무나 두렵습니다/이제 좀 ‘미련’해지렵니다/밤새 안녕들 하셨습니까?/송구스럽지만, 우리는 안녕합니다/회색인이 되지는 말아야겠습니다/안녕할 수 없고, 안녕하면 안 될 세상입니다/안녕치 못한 사람들의 외침을 바라보며 저도 한마디 거들어봅니다/안녕할 리가… 없잖습니까/저도 제가 안녕한 줄 알았습니다/모두들, 안녕하세요!/정대 후문을 지나다니던 한 평범한 대학생의 글/모두가 안녕한 세상은 있을 수 없는 걸까요?/안녕들 하십니까/안녕하냐고 물어봐주어서 고맙습니다/이제야 진짜 안녕할 것 같다/안녕들 하십니까?/12월 19일, 조건 없는 안녕을 위하여/이봐요, 우리는 안녕한가요?/연세대학교 학우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나는 부끄럽습니다/안녕, 합시다!/다들 안녕들 하십니까/안녕들 하십니까?/누군가는 마지막으로 처음처럼/우리가 편치 못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증거/동악을 거니는… 그대들은 안녕하신지요?/수상한 시절에 안녕들 하십니까?/미친 금붕어가 되고자 합니다/안녕들 하십니까? 외국인 대학생입니다/날씨 너무 덥네요/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아주대 학우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우리 전남대는 안녕한가요?/나, 안녕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니/안암에서 고요한 외침에 춘천에서 기별합니다. 저 또한 안녕치 못하다구요/여러분 정말 안녕들 하십니까?/정녕, 안녕들 하십니까?/기억하십니까?/안녕하지 못합니다!/경성 학우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인제대 학우 여러분, 안부를 묻습니다/계명대 학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여러분의 목소리를 들려주십시오/안녕들 하십니까?/여러분 정말 안녕하십니까?/개신 학우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학우 여러분, 저는 안녕하지 못합니다/공주대 학우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2. 아니요, 안녕하지 못합니다 - 135 안녕들 하시냐기에/건대 학우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버스노선이 끊겨 안녕 못합니다/수원대는 언제 안녕들 합니까?/여러분들은 안녕하세요?/아니요. 안녕하지 못합니다/성균관 학우 여러분은 안녕들 하십니까?/성균관대 학우 여러분! 저는, 우리는 안녕하고 싶습니다!!/꽁꽁 얼어붙은 학생자치, 학우 여러분들 안녕들 하십니까?/저는 저의 불편함을 말하고 싶습니다/성균관 학우 여러분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모든 사람들이 안녕하기를 바랍니다/우리도 자유롭게 말하고 싶다!/학교의 주인은 학생입니다/‘성균관대학교’는 안녕하십니까/아! 나도 말해도 되는군요. 저는 안녕하지 못합니다/“아니요, 결코 안녕할 수 없습니다.”/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안녕하고 싶습니다. 안녕해야겠습니다!/안녕하지 못한 우리들이 맞이할, 2014년/안녕들 하십니까, 에필로그/안녕하냐는 물음에 부끄러움을 내놓습니다/시험공부가 하기 싫어서 안녕하질 못합니다/나는 ‘안녕하기’를 거부한다/불편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하나도 안 괜찮아요/여러분의 학점은… 안녕들 하십니까/신방과 학생, 여기 안녕 못합니다!/어떻게 안녕할 수 있겠습니까/안녕하지 못한데, 안녕한 척 지냈습니다. 가슴이 쿵쿵대는데, 모른 척 지냈습니다/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이후를 묻는다/학우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과학은 산업역군이 아닙니다/무지랭이양의 작은 소망/더 이상 부끄러워지지 않으려 합니다/당신의, 우리의, 나의 안녕을 빌며/우리들의 ‘목소리’는 안녕한가요?/안녕들 하십니까/안녕하세요?/이 겨울, 안녕하지 못한 우리에게/어떤 이름으로 불려도 안녕하지 못합니다/정말로 진심으로 묻겠습니다/하 수상한 이 계절, 여러분은 안녕들 하십니까?/성공한 삶이란 무엇인가요/저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제 자신을 속이지 않겠습니다/‘안녕들 하십니까’가 사회 속에 끊임없이 ‘안녕하게’ 남기를 바라며/우리의 패러다임은 취업/‘안녕들 하십니까?’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답/안녕들 하십니까?/저는 안녕하지 못합니다/안녕이라는 말 대신: 이화를 떠나며 남기는 편지/저 궤변가들에 대하여/우리가 보았던 것은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너무나도 답답한 마음에 안녕하지 못합니다/‘사회’ 없는 시대의 ‘정치’ 사진으로 보는 안녕들 하십니까 - 254 3. 우리도 안녕하지 못합니다 - 289 안녕들 하십니까?/철도를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안녕들 하십니까?/기꺼이 그 길을 가겠습니다/Without international solidarity we can’t be okay!/원주의과대학 학우분들은 안녕하십니까/의대생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안녕들 하십니까, 모두, 건강들 하십니까/안녕들 하십니까? 삼성제품을 사용해주시는 소비자 여러분/출판 노동자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출판 노동자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내가 조금만 덜 안녕했다면 우리는 어디쯤 달리고 있었을까/안녕들 하십니까?/“진정 안녕들 하십니까?”/안녕하세요, 학과 사무실입니다/안녕들 하십니까?/안녕들 하십니까/여러분의 텐트는 안녕들 하십니까?/인사를 받았으니 답을 해야지요!/안녕하십니까? 이 말이 새삼 강하게 와 닿는 이유는/안녕들 하십니까?/안녕들 하십니까?/안녕들 하십니까/당신의 ‘등급’은 안녕하십니까?/부끄러운 언론인 선배여서 안녕하지 못합니다/안녕들 하셨습니까/22기 동기 노무사님들, 안녕들 하십니까?/저는 아직도 부끄러운 대학생입니다/우리는 중앙대 청소 아줌마들입니다/청소 노동자분들, 불편해도 괜찮아요!/중앙대가 책임 있습니다/안녕하세요/백만 원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해석/이것은 백만 원짜리 자보입니다/이것은 백만 원짜리 자보입니다/여기 백만 원짜리 자보가 있습니다/표현의 자유를 허하라!/고려대에서 보내는 100만 원짜리 대자보/학교를 위한 대자보/To. 청소 노동자분들/안녕들 하십니까/저는 성노동자를 지지합니다/나는 창녀, 매춘부, 윤락녀가 아니라 성노동자다/누구든 안녕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Description

“묻고 싶습니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한 장의 대자보가 불러일으킨 공명(共鳴) 대한민국에서 당신은 진정 안녕한가? 한국 사회를 뒤흔든 대자보들 평범한 인사말에서 정치사회적 열쇠말로, ‘안녕’의 의미를 재구성하다! 2013년 12월 10일,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 철도 파업과 뒤이은 노동자들의 대량 직위해제 이후 고려대학교에 안녕을 묻는 대자보가 붙었다. 다음날 그 옆 자리에 40여 장의 화답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는 곧 전국 각지의 대학으로 퍼져나갔고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다. 10일 만에 페이스북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지에 25만 명이 모여들었다. 대학교수, 외국 유학생에 이어 고등학생에서 초등학생까지, 다산 콜센터 직원과 대공장 노동자, 전업주부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대자보를 붙이기 시작했다. 성노동자와 성소수자, 그리고 이른바 ‘김치녀’ 대자보는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해가 바뀌면서 ‘안녕’ 대자보 열풍은 잦아들었지만 오히려 서로의 안녕을 묻게끔 했던 불안과 우울, 무기력과 좌절은 더 무겁게 한국 사회를 짓누르는 듯하다. 그러므로 ‘안녕하지 못한 현실에서 당신은 과연 안녕한가?’라는 물음은 여전히 유의미하다. 무엇보다 ‘안녕’이란 말은 2013년 12월을 계기로 무심코 건네는 평범한 인사말에서 왜 내가, 그리고 우리가 안녕하지 못한지, 어떻게 해야 안녕할 수 있을지, 안녕을 위해 내가,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열쇠말이 되었다.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 열쇠말을 들고 대자보를 썼던 사람들을 찾아 나섰고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 책 《안녕들 하십니까?》는 바로 2013년 12월부터 두 달간 곳곳에 나붙었던 대자보들 가운데 200여 장을 추려 묶음으로써 ‘안녕들 사건’을 증언하는 생생한 기록이자 사건을 일단락 짓는 매듭이다. 동시에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이 ‘안녕들 대자보’ 이후 각자의 삶에서 어떠한 변화와 고민을 지속하고 있는지를 담아 ‘안녕들 사건’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갈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책, 《안녕들 하십니까?》에 실려 있는 수백 장의 대자보는 단지 수백 명의 생각이 아니라 수천, 수만의 안녕치 못한 이들의 고백이며 각각의 자신들로부터 출발한 살아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사슬은 그것의 가장 약한 고리만큼만 강할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사슬의 가장 약한 고리는 우리가 느끼는 안녕치 못함이 나로부터 출발하여 사회와 공명한다는 것. 결코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과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롤로그 ‘안녕하지 못함에 안녕을 고하며’ 중에서 대자보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발신과 수신으로 접속된 ‘자기 정치’ 인터넷과 SNS의 시대에 낡은 형식이라고 여겨지던 손글씨 대자보 한 장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끌어냈을까? 무엇이 그들의 손과 마음을 움직였을까? 1980~90년대 운동권의 전유물이었던 이전의 대자보들과는 달리 이번 ‘안녕들 대자보’는 ‘나는 안녕하지 못한데 당신은 안녕한가?’라며 말을 걸고 있다. 그 말 걸기에 화답하면서 스스로의 안녕치 못함이 ‘사회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서로 확인하게 되었다. 물론 ‘안녕들 대자보’의 확산에 인터넷과 SNS가 커다란 역할을 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손글씨로 대자보를 쓰고 붙이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익명이든 실명이든) 자신의 생활공간, 일터, 배움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발신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수신하며 서로 공감했다. 그리고 공감을 넘어 고려대에서 서울역까지의 나들이, 성토대회, 대자보 백일장, 12.28 총파업 집회 등 ‘자기 정치’에서 비롯된 사회운동을 만들어갔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 주목해야 할 ‘사건’임에 틀림없다. “조금 더 나은 방향을 찾아보는 노력이야말로 ‘자기 정치’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사회에서 정치란 직업 정치인의 전유물이 될 수 없고, 누가 완전히 대신해줄 수도 없습니다. 사람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 하듯이 건강한 민주사회를 위해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프롤로그 ‘안녕하지 못함에 안녕을 고하며’ 중에서 물음에 맨 먼저 화답한 이들은 동료 대학생들이었다. 사상 최장기간의 철도 파업 속에 연일 직위해제 노동자들의 숫자는 늘어만 갔고 그에 따라 철도 노조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 목소리도 높아져갔다. 한편으로는 학점과 스팩 관리 때문에 ‘안녕하지 못한데 안녕한 척 하며’ 또는 ‘자신만은 안녕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정치적으로 무관심했다는 반성과 성찰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재벌기업 재단의 구조조정이 문제가 되었던 성균관대와 중앙대에서는 학생회 선거에서 대학본부의 개입 논란, 학내 언론의 탄압,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통폐합되는 학과 등 훼손된 대학 내 민주주의의 문제가 거론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 흐름은 대학 청소 노동자들과 시간강사들의 싸움에 대한 연대로 모아졌다. 안녕치 못한 사람들, 그리고 안녕치 못하다고 말할 수조차 없는 사람들 대자보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점점 다양해져갔다. 송전탑 반대 운동을 하는 밀양 주민, 파주출판단지로 가는 버스 정류장에 대자보를 붙인 출판 노동자, 안녕치 못한 사회에서 안녕함만을 보도하는 공영 언론의 문제를 지적하는 언론인,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직원, 노무사……. 이들의 ‘자기 정치’와 운동은 진지하고 솔직한 자기반성과 성찰뿐만이 아니라 자신들을 안녕치 못하게 하는 것들에 대한 풍자와 조롱, 해학으로 ‘대자보 놀이’ 문화를 만들어내며 더욱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12월 18일 페이스북에 “저는 성매매를 하는 여성입니다”라고 시작하는 대자보가 올라왔다. “성매매를 하러 온 구매자 남성이 자신도 자보를 썼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고 거기에 “호응하지 않았다고 주먹질을 당해야” 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대자보는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며 끝맺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말대로 ‘누구나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며 지지했지만 또한 많은 사람들이 성노동자가 ‘안녕’에 동참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심각한 혐오발언도 등장했고 심지어 ‘안녕’ 대자보를 폄훼하기 위해 조작된 대자보라는 음모론까지 나왔다.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성소수자의 대자보를 한 연예인이 SNS의 프로필 사진으로 삼자 일베 커뮤니티가 그 연예인을 표적 공격했다. 그럼에도 다양한 성정체성만큼이나 서로 다른 성적 소수자들과 그들의 지인, 부모가 쓴 대자보들이 잇달았다. 삐딱하게 다시 묻기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질문은 정말 모두를 향한 것인가 대표적인 여성비하 표현인 ‘김치녀’ 대자보도 등장했다. “당신은 학벌과 임금이 남성보다 낮거나 혹은 높거나, 연애상대로써 외국인을 선호하거나, 섹스 경험이 많거나, 연애하면서 섹스를 해주지 않았거나, 이상형이 키 큰 남자이거나, 여러 남자와 친하건, 여대에 다니거나, 내숭을 떨었거나 떨지 않았거나, 성형을 하고 예쁘거나, 성형을 안 하고 못생겼거나 등등의 이유로 인해 김장당한 김치”라는 일침에 많은 ‘김치들의 안녕을 묻는 대자보’가 화답했고 많은 이들의 대자보에 찬반 의견이 달리고 악성 댓글과 같은 혐오발언, 나아가서는 대자보를 훼손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청소년들의 대자보는 더욱 심각했다. 한 고등학교 학생이 학내에 붙이자 교장이 경찰에 신고한 사건은 상징적이다. “보름 남짓한 기간 동안 ‘청소년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지에 올라온 대자보의 수는 115장”이었으며 그 외 산발적으로 인터넷 등에 올라온 대자보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훨씬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