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고한 ‘자아의 세계’와 개인의 존엄을 이야기하는 현대의 고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스틸 라이프>는 개인의 존엄이 소모품처럼 취급되는 현대사회의 부조리한 병페에 대해 이케자와 나쓰키라는 작가가 내놓은 또다른 해답이자 문제제기이다. 현대 일본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이케자와 나쓰키는 세계와 인생의 근본적인 요소들을 집요하게 캐묻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가벼운 단면들을 나열하는 현대 일본문학과 뚜렷한 차별화를 보여준다. 이 책의 두 단편 <스틸 라이프>와 <난 갈매기다>를 통해 작가는 ‘자아의 세계’를 집요하게 파고 들어간다.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 그 사이의 거리에서 진정한 ‘자아 찾기’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작가의 치열한 문제제기라 할 수 있다. 과학과 문학의 새로운 친화, 청징하고도 긴장감 넘치는 서정성, 부드러운 감성이 가져온 아름다운 청춘소설의 새로운 등장이라 할 만하다. 이케자와 나쓰키는 현대 일본 문단의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스틸 라이프>로 제98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스틸 라이프>, 현대적인 감각으로 채색된 ‘교양소설’
이 소설의 주인공 ‘나’는 일본 현대 젊은이들의 전형이라 할 만큼 일정한 직업도, 목표도 없는 젊은이이다. “인간관계가 지배하는 네트워크 속에서 하나의 이음매로 기능하고, 그에 알맞은 보수를 받으며 살다가 때려치운 셈이지. 이 사회에서 나는 필요할 때마다 아르바이트라는 무명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존재에 불과해.” 이러한 존재였던 주인공이 ‘외계의 별’에서 온 것 같은 사사이라는 사람을 만나면서 다시금 자신의 세계와 존엄성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스틸 라이프>의 두 주인공인 ‘나’와 ‘사사이’가 꿈꾸는 자아는 세계에 동화되지 않는 자아다. 이 세계와 동화되지 않고 스스로 한 세계가 되어 자아를 완성시키는 것이 이들 젊은이의 소망이다.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 사이에는 언제나 일정한 거리가 유지되고 있다.” 사회적 관점에서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온전한 자아를 찾기 위해 이 두 주인공은 다시금 노마드적인 자신만의 길을 떠날 것이다. “난 다른 세계를 원했으니까.”
<난 갈매기다>, 아버지와 딸, 각자 꿈꾸는 세계를 소망하고 교감하다
<난 갈매기다>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꿈꾸는 세계는 몽환적인 야생을 간직하고 있는 시베리아. 딸 칸나는 상상 속에서 거대한 초식공룡을 키우고 있다.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규범과 가치관을 찾는 인간들은 또한 스스로 만들어낸 관습과 상식과 가치관에 답답함을 느끼지만 그것이야말로 그의 생활을 지탱해주는 지렛대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체제 속에 갇혀 있지만 또한 체제의 전복을 남 몰래 꿈꾼다. 범죄자와 같은 일탈이 아닌 또 다른 일탈의 목적지는 바로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 거대한 초식공룡 디플로도쿠스를 키우는 딸 칸나는 상상 속의 자신과 결별하고 또다른 현실 세계에 발을 들여놓아야 함을 안다. 아버지처럼 딸 칸나도 무인탐사선의 운명을 헤쳐나가야 한다. 오래지 않아 칸나는 너무나도 넓은 인간의 세계와, 저 우주의 세계를 여행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