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시에는 한 편 한 편마다 무언가 극단적인 것이 있다.” 이 시대의 낭만가객, 평론가 황현산이 겨울을 여는 시화詩話집을 선보였다. 『우물에서 하늘 보기』. 한국일보에서 2014년 초부터 연재했던 27편의 이야기들을 한데 모았다. 가히 ‘시 마을에서 세상 보기’라 할 만하다. 우물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이 필경 좁고 편협하다면 그가 시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넓고 여유로우며 다양하되 처연하다. 시가 꿈꾸는, 응당 꿈꾸어야 하는 세상에 대한 저자의 간절함이 편마다 읽는 이의 가슴을 건드린다. 이육사를 필두로 한용운, 윤극영, 서정주, 백석, 유치환, 김종삼, 김수영, 보들레르, 진이정, 최승자 등의 시편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시뿐만이 아니다. <베티블루>와 <동사서독> 같은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과 <클레멘타인>과 <엄마 엄마> 같은 노래들, 구전민요들, 이중섭의 그림 <길 떠나는 가족> 등이 가리지 않고 초대되어 시화의 한 풍경을 자연스럽게 이루어낸다. 저자는 이 다양한 예술작품을 때로는 정면으로 바라보며 예술가의 진지한 예술론을 펼치기도 한다. 때로는 이야기와 경험담과 일화의 축과 축을 매개하는 고리 역할로, 때로는 세상을 바라보고 진단하는 커다란 창으로서 작품을 대하거나 응용하기도 한다. 어찌 예술작품뿐이겠는가. 우리가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세월호의 비극이, 참혹하고 참담한 윤 일병 사건이 시화집의 몇 편에 걸쳐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했다. 그 중에는 자신의 대학 동창이기도 한 어느 소설가와 함께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검은 차를 몰고 온 사나이들에게 끌려가 이제는 문학인들의 집이 된 남산의 어느 시설에서 내리 사흘 동안 “청동상”처럼 온몸에 퍼렇게 멍이 들도록 두들겨 맞고 저 ‘88올림픽’이 끝나던 날 숨을 거둔, 박정만이라는 무명시인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 있다. 시로써 생의 한계와 가능성을 읽고 이해할 줄 아는 저자에게 위의 사건들은 차마 감당할 수 없는 세상 밖의 일이었다. 작품을 분석하는 예술론은 진지하지만 작품보다 유려하며, 작품의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그 시각은 보편적인 인간미가 넘친다. 바쁜 일상에 치여서, 그러나 언제나 ‘진실’의 편에 가까이 살아가는-그러려고 노력하는 소시민들이라면 평론가가 시화집마다에서 살짝살짝 펼쳐 보이는 명제와 의문과 이견들로부터 충분한 공감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인용된 시편들만도 그 숫자가 적지 않은 데다 그를 통해 전해주는 이야기의 폭과 방향성과 밀도에 차이가 있어 한데 묶고 보면 자칫 어수선하지 않을까 싶지만 그렇지는 않다. 본문에서 뽑은 문장에서처럼 ‘시란 무엇인가-무엇이어야 하는가’ ‘시인과 예술가의 삶은 어떠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저자의 물음이 한결같게 진지하게 읽는 이의 동의를 얻어내는 데 성공하는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