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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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고대철학의 준거,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을 학문으로서 정립한 최초의 철학자였다. 그는 오늘날에는 철학의 한 분과를 차지하고 있는 ‘형이상학’과 같은 이름의 저술 《형이상학》에서 이론 철학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들을 다루며 정점에 이른 자신의 사상을 보여 준다. 그의 저작들이, 특히 우리말로는 이번에 처음으로 완역돼 나온 《형이상학》이 철학사에서 끊임없이 인용되며 그 중요성이 강조돼 온 이유들 중 하나는, 이 책이 서양 고대 철학의 준거가 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기 이전과 동시대의 철학자들의 주장을 집대성하고 체계적으로 비판하는 방대한 저술들을 남겼으며, 또 그 비판 과정에서 고대 철학자들의 이론을 소개하는 중요한 역할도 담당했던 것이다. 문헌이 소실되면서 그대로 묻혀버릴 뻔 했던 많은 철학자들의 이론들은, 비록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왜곡하는 측면도 있지만, 그의 저작을 통해 오늘날의 독자들에게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의 글이 오늘날 인문학 논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형식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이 지닌 가치들 중 하나다. 앞으로 다룰 문제를 규정하고 그에 대한 기존의 이론들을 소개하고 비판하며 그 한계점들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자신의 이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형이상학》이 지닌 가장 큰 가치는 이 책이 서양철학사에서 크게는 ‘형이상학’의 초석을, 좁게는 ‘존재론’의 초석을 다졌다는 점이다. 《형이상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으뜸 철학”을 규정하고 이에 쓰이는 기본 개념들을 도입해 근본적인 물음들을 추상의 단계에서 다룸으로써, ‘형이상학’을 하나의 독자적인 철학의 영역으로 자리 매김시켰다. 다시 말해, 오늘날 서양철학에서는 누구나 사용할 수밖에 없는 개념들, 예를 들어 꼴과 밑감(재료)(형상과 질료), 잠재/가능태와 발휘/실현태(가능태와 현실태), 네 가지의 원인들(4원인설), 부동의 원동자 같은 개념들은 모두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형이상학》에 대하여 《형이상학》, 즉 ‘ΤΑ ΜΕΤΑ ΤΑ ΦΥΣΙΚΑ》(타 메타 타 피시카)’라는 이 책의 제목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스스로 붙인 이름이 아니라, 기원전 1세기 후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을 최초로 편집한 안드로니코스(Andronikos)가 붙인 것이다. 논리학적인 저술 군인 오르가논에도, 자연학적인 저술들에도, 윤리학이나 창작 예술에 관련된 저술들에도 포함시킬 수 없는 책으로, 저술 목록에서 ‘자연학적인 저술들(타 피시카)’ ‘뒤에(메타)’ 위치시켰다는 뜻이다. 그러나 ‘형이상학’이라는 이름을 얻기 전,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은 이러한 철학 분과를 자신의 다른 저술들에서는 “으뜸 철학”(pr?t? philosophia)으로, 《형이상학》에서는 “(으뜸) 지혜”(sophia), “(으뜸) 철학”(pr?t? philosophia) 또는 “신학”(theologik?)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안드로니코스가 붙인 ‘형이상학’이라는 이름 역시 단순히 편집 순서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세계의 구조를 이해한 뒤에야, 즉 자연학적인 탐구를 한 다음(ΜΕΤΑ)에야 비로소 형이상학을 탐구할 수 있다는 뜻이 ‘타 메타 타 피시카’라는 이름에 함축돼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자연학적인 문제들에 대한 탐구가 형이상학적인 문제들에 대한 탐구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이는 변하지 않는 꼴(형상)의 개수와 본성에 관한 문제를 으뜸 철학, 즉 형이상학의 과제로 보고 이 문제에 대한 탐구를 적절한 때까지 미뤄두자는 《자연학》에서의 언급을 토대로 하고 있다(190a 34-192b 1 참조). 《형이상학》은 내용이 난해할 뿐만 아니라 그 구조도 당혹스러워서, 만들어지게 된 과정과 관련해서도 많은 의문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형이상학》의 복잡한 구조는 이미 고대에서부터 잘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여러 시기에 걸쳐 개작한 저술이라든가 여러 층위로 구성된 저술이라는 해석이 끊임없이 제기돼 오기도 했다. 즉, 《형이상학》은 미완의 저술이라는 사실이 끊임없이 강조돼 온 것이다. 2권(α), 5권(Δ), 11권(Κ)은 나중에 추가된 부분들이며, 다른 권들 역시 단일 저술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만큼 밀접한 관계를 보여 주지 않는다. 또 저술의 일부는 아카데미아 시절에, 일부는 리케이온 시절에 작성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며, 어떤 부분이 먼저 작성되고 어떤 부분이 나중에 작성된 것인지에 대한 의견 역시 학자들마다 분분하다. 어떤 학자는 플라톤에 적대적인 초기 단계와 플라톤에 가까운 입장을 보이는 후기 단계를 나누기도 하고, 거꾸로 어떤 학자는 초기에는 플라톤에 호의적이었으나 나중에는 적대적으로 변한다는 상반된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한편, 《형이상학》의 각 부분들이 각기 다른 시기에 작성되었다 하더라도 마지막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각 부분들을 다시 손실해 통일성을 갖추었다고 보고, 각 부분들의 내적 연관에 따라 《형이상학》이 갖추고 있는 통일성을 연구해 보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형태는 불완전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단일한 저술로 봐야 할 만큼 내용상 통일된 일정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짓다만 건물’처럼 보일 수 있는 《형이상학》이 실제로는 훌륭한 골격을 갖추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에서 질문하는 근본 물음은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이 있음의 의미를 파헤치면서 그는 ‘있는 것’들의 으뜸가는 원인(또는 원리)들을 찾아 나선다. 있는 것들에는 오늘날의 표현으로는 물체들, 마음들(혼들), 사람들, 보편자들, 수들, 사실들 따위가 속하며, 이런 탐구 과정에서 그는 이런 것들이 모두 다 똑같은 의미에서 있는지 아니면 서로 다른 어떤 의미에서 또는 다른 정도로 있는지를, 그리고 있는 것과 관련된 개념들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묻는다. 그 결과 있는 것들 중에서도 실체가 양, 질, 관계 등의 다른 모든 범주들의 원인으로, 실체들 중에서도 으뜸 실체인 꼴(형상)이 다른 모든 실체들의 원인으로, 으뜸 실체 중에서도 영원불변의 신이, 천구들을 움직이는 이성(nous)들과 더불어 있는 것들 모두의 궁극적인 원인으로 드러난다. 신은 모든 존재와 변화의 끝에 ‘자신은 움직이지(변하지) 않으면서 다른 모든 것들을 움직이는 으뜸가는 것’(부동의 원동자)으로서 서 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있는 것”에 관한 가장 근원적인 질문들을 최고 높은 단계에서 다루고 있다. 자세히 말하자면, 형이상학은 첫째, 세계에 있는 특정한 있는 것들을 다루지 않고 이런 특정한 있는 것들에 공통된 특성들을 다룬다. 따라서 형이상학에서 가장 중요한 물음은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실체란 무엇인가?”, “실재란 무엇인가?”이다. 둘째, 형이상학은 어떤 것이 “있다”는 주장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다룬다. 변화 속에서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들에 딸린 것(의 속성)들을 탐구한다. 셋째, 모든 있는 것들이 따르는 으뜸가는 원리들을 탐구한다. 넷째, 영원한 변하지 않는 것들의 영역을 탐구한다. 이런 의미에서 형이상학은 신학에 대한 전통적인 규정과 일치한다. 다섯째, 감각되는 실체들을 다루는 자연 과학들과는 달리 감각되지 않는 실체를 다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넷째와 다섯째 특성을 특히 “으뜸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여섯째, (자연) 과학들이 다루는 있는 것들의 일반적인 단계들 또는 영역들을 분류하고, 이런 단계들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 있으며 또한 그것들이 어떻게 움직임이 일어나고 제한 받는지를 설명하는 틀을 제공하는지를 다룬다. 일곱째, 앎(지식)의 모든 유형들의 상호관계를 탐구하며, 앎의 이런 유형들이 어떻게 있는 것들에 적용되고 또한 실재에 관한 참을 제공하는지를 탐구한다. 여섯째와 일곱째 특성으로 이해되는 형이상학은 보편자들, 보편자들과 개별자들의 관계, 그리고 단위, 꼴(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