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Description
현대시의 선구자 로트레아몽의 기념비적 산문시집 불문학자 황현산의 번역과 해설로 만나는 『말도로르의 노래』 완역판 “로트레아몽은 자기 시대의 ‘위대한 물렁머리들’을 탄핵하고, 새로운 사상의 지도에 자리를 잡는다. 『말도로르의 노래』 자체는 문학에 절대적으로 새로운 어조를 가져왔다.”_황현산 한 노장의 빛나고 고된 손끝에서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상상력에 불을 지핀 세기의 시집이 한국어판으로 새롭게 단장되어 나왔다. 한국번역비평학회를 창립한 불문학자 황현산은 오랫동안 프랑스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며, 그동안 현대시의 고전이 된 작품들을 수려한 번역으로 한국 독자에게 소개해왔다. 19세기의 주요 시인들―보들레르, 랭보, 말라르메, 로트레아몽, 아폴리네르 등―의 기념비적 시집들은 물론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까지, 그가 옮긴 책들은 불문학자로서 평생의 연구작업이 정련된 번역과 체화된 해설로 고스란히 옮아간 산물임을 보여준다. 로트레아몽(Lautréamont, 1846~1870)은 보들레르와 마찬가지로 악을 예찬하고 오늘날 랭보와 함께 저주받은 시인의 계보를 잇는 작가다. 일차대전이 끝나갈 무렵 1917년 아라공, 수포, 브르통 등 초현실주의자들에게 재발견되어 유명해졌으며, 이들의 기수 브르통은 로트레아몽을 가리켜 ‘무결점의 선배’로 추앙하며 그의 작품들에서 초현실주의 미학의 모체를 끌어냈다. 『말도로르의 노래』(1869)는 총 6편의 노래로 구성된 장편 산문시집이다. 창조주와 인간을 향한 반영웅 말도로르의 잔혹한 복수와 반항이 무시무시하고 기괴한 상상력을 통해 그려진다. 황현산은 제대로 된 번역본을 내고자 심혈을 기울여 원문을 면밀히 대조하고 수차례 재독을 거치며 어휘와 문장을 다듬는 과정을 거쳤다. 출간배경 및 작품의 신화적 영향력 로트레아몽의 본명은 이지도르 뤼시앵 뒤카스(Isidore Lucien Ducasse, 1846~1970).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나서 파리의 한 호텔에서 스물넷에 요절하기까지, 생전에 낸 『말도로르의 노래Les Chants de Maldoror』(1869), 미래의 책에 대한 서문격 글인 『시법Poésies』(1870), 몇몇 출판인과 작가에게 보낸 서신 말고는 작가에 관한 뚜렷한 정보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뒤카스는 1868년에 「첫번째 노래」만 먼저 이름 대신 ★★★로 표시해 발표했다. 1869년 『말도로르의 노래』 첫번째와 두번째 노래 간행을 벨기에 인쇄업자에게 맡기지만, 이 책이 뿜어내는 ‘독기’를 의식하고 검열을 두려워한 탓인지 출판업자는 정작 제본도 배본도 안 하다, 몇 개월 뒤 ‘로트레아몽 백작’이라는 이름으로 서명된 전문 인쇄본을 같은 해에 세상에 내보낸다. 사실 로트레아몽이란 이름은 뒤카스가 당시 영향받았던 로망 누아르 소설가 중 외젠 쉬의 소설 『라트레아몽Latr?amont』에서 빌린 것이다. 뒤카스가 출판사에 보내는 편지에서 “나는 악을 노래했습니다, 미츠키에비츠, 바이런, 밀턴, 사우디, 뮈세, 보들레르가 그랬듯이”라고 고백했듯, 로트레아몽이란 이름은 이제 현대 시문학사에서 파우스트, 맨프레드, 카인과 더불어 낭만적 반항아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또하나의 전설적 이름이 되었다. 『말도로르의 노래』를 비롯해 그의 글은 오늘날까지 여전히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영화, 인문학, 패션 등 다방면의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를 경악과 충격에 빠뜨리며 그들의 상상력에 불을 지폈다. 브르통, 발레리, 엘뤼아르, 아라공, 그라크, 자리, 아르토, 마테를링크, 브레송, 바슐라르, 블랑쇼, 카유아, 크리스테바, 솔레르스, 세제르, 라네겜, 아감벤 등 내로라하는 명망 있는 사람들의 상상과 사유를 자극해 펜대를 들게 했다. 일례로 바슐라르는 연구서 『로트레아몽』을, 블랑쇼는 사드 후작과 비교한 『로트레아몽과 사드』를 펴내기도 했고, 1962년 롤랑 프티가 안무한 <말도로르의 노래> 발레 공연에서 이브 생 로랑이 의상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조니 홀리데이, 세르주 갱스부르와 제인 버킨 등 여러 음악가들도 영향받아 이 시집의 구절을 가사로 썼다. 물론 그를 컴컴한 먼지 더미에서 발굴해 본격적으로 문학사에 이름을 올린 건 초현실주의자들이다. 초현실주의 미학의 모체가 담긴 현대시의 바이블 누구나 한번쯤 초현실주의 관련해 책을 펼치다보면, 유명한 문장 하나를 만나게 된다. “그는 아름답다... 해부대 위에서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만남처럼 아름답다!” 1920년 사진가 만 레이가 『말로도르의 노래』에서 한 소년을 묘사한 저 구절을 가져다 <이지도르 뒤카스의 수수께끼>라는 작품을 만들어 찍은 사진을 1924년 『초현실주의 혁명』지 창간호에 브르통의 서문과 함께 실으면서 유명세를 탄 문장이다. 그리고 단번에 이 문장은 수많은 예술가와 문인에게 데페이즈망이라고 하는, 초현실주의 미학의 모토가 담긴 문장으로 곧잘 인용되어 왔다. 일례로 김춘수 시인은 「산문시 열전」이란 시에서 "재봉틀과 박쥐우산이 해부대가 아니라, 눈 내리는 덕운의 그 우물가에서 만났다면?"이라고 이 구절을 변용해 시를 썼다. 그밖에 피카소로부터 의뢰받아 만든 달리의 에칭 판화 42점이 삽화로 들어간 1934년판, 마그리트의 삽화 13점이 들어간 1945년은, 『말도로르의 노래』의 기념비적 판본으로, 두 미술가에 의해 구현된 로트레아몽의 문체와 기괴한 상상력의 세계를 가늠해볼 수 있다. 브르통으로 하여금 스물두 살에 『시법』을 베껴쓰게 하고 “순수 상태의 심리적 자동운동”인 초현실주의의 근간이 되는 글쓰기의 상상력을 다지게 한 로트레아몽. 그의 이 산문시집 『말도로르의 노래』에서는 반영웅 말도로르가 살인, 신성모독, 사도마조히즘, 부패, 패륜을 일삼으며 혁신적인 문체로 첫번째 노래부터 여섯번째 노래까지를 끌고 간다. 이 책을 통한 로트레아몽의 목적은 오직 인간을, 창조주를, 절대진리를 공격하는 것, 이미 밝힌바 “악의 예찬을 노래하는 것”이다. 책의 구성을 보면, 여섯 편의 노래들은 그 노래 안에서 다시 여러 개의 절 또는 산문시의 형태로 나뉘어 있다. 첫번째부터 세번째 노래까지는 각 절마다 반복적인 테마 속에서 독립적인 서사를 보여주지만, 네번째와 다섯번째 노래는 중간에서 이야기가 잘리는가 하면 의사 과학적인 여담이나 시에 대한 견해 등 횡설수설하는 대목들이 많고, 여섯번째 노래는 앞의 다섯 노래들과 단절을 선언하며 “삼십 쪽짜리 짧은 소설”이 이어질 것이라고 해놓고는 중간중간 이야기가 다시 끊기고 여담들이 끼어들며 사춘기 소년을 유혹하고 뒤쫓는 이야기가 진행된다. 누군가 이 작품을 두고 초현실주의 픽션으로 이야기한바, 한마디로 줄거리를 요약하기는 불가능하나 반복되는 테마는, 화자와 동일시되는 말도로르라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신 혹은 신의 사자들과 유혈 낭자한 시합과 전투를 벌인다는 것이다. 무의식에서 터져나오는 격렬하고 환상적인 이미지는 매우 과격하며 거칠다. 마치 초현실주의자들이 말하는 자동기술법처럼 서술된 듯 전통적인 문체 미학을 완전히 거부하며 충격과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길게 자란 손톱을 아직 악을 모르는 어린아이의 가슴에 박아넣고 상처를 핥으며 피를 빨아마시는가 하면, 신을 강간범이자 폭력적인 강도로 묘사하고, 여자의 음부를 부리로 쪼는 닭이 나온다든가, 바다 괴물과의 짝짓기, 양성동체인간과 양서인간의 등장, 소년과의 섹스 등 상상을 불허한다. 또 인간의 악을 고발하고 신의 타락에 맞서 자신에게 내린 저주보다 더 큰 제 의지의 힘으로, 사슬을 끊고 뛰쳐나온 개처럼 자신도 무한에의 욕구가 있음을 피력한다. 다른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끌어내려고 글을 쓰는 자들을 따돌리고 “나로서는, 잔혹함의 더없는 열락을 그리기 위해 내 천재를 봉사케 한다!”라고 절규하면서. 『시법』에서 낭만주의 명사들에게 신랄한 직언을 던진바, 로트레아몽은 이 독기 어린 글을 읽으며 “대담해지고 별안간 사나워진” 독자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