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휴먼 드라마 × 정교한 미스터리 호러
그늘진 표정을 애써 지운 채 테마파크를 찾은 사람들,
그들이 품은 심연을 들여다보는 수수께끼의 젤리장수
“이 젤리 먹으면 절대로 안 헤어져요.”
경기도 모처에 위치한 놀이공원 ‘뉴서울파크’. 무더운 여름날을 즐겁게 보내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든다. 부모와 아이는 손을 맞잡고, 연인들은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으며, 인형 탈을 쓴 직원은 신나게 춤을 춘다. 그러나 수수께끼의 젤리장수는 이 모두가 품은 마음속 심연을 꿰뚫어 본다.
"그분은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집니다. 꼭 필요한 순간에 다디단 젤리를 건넵니다."
젤리는 사람들에게 달콤한 위안을 주지만, 이내 전국의 뉴스 화면을 연분홍빛으로 뒤덮는 사건을 일으킨다. 아홉 개의 다채로운 이야기가 퍼즐처럼 맞물리는 가운데 전체 사건의 전말이 조금씩 드러난다.
| 시대의 욕망을 비추는 어둠
두려움을 일으키는 사건은 그 자체로 관심거리다. 사건을 그리는 데에만 집중해도 충분히 인상 깊은 작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작품들은 흥미로운 플롯을 이용해 우리 사회의 지금을 조망한다.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이 바로 그러한 작품이다.
작품을 구성하는 아홉 개의 이야기 속 인물들은 평범한 불행을 안고 산다. 가족이고 연인이지만 서로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며, 지방에서 상경한 비정규적 노동자로서 늘 잔고 걱정을 한다. 취업을 위해 좁은 고시원에서 청춘을 보내고, 주변 사람들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매달린다.
이들은 불행에서 벗어날 방도를 찾지 못해 화를 쌓다가 끝내 이기적인 욕망을 품는다. 차마 남들 앞에서 말할 수 없는, 그렇기에 누구라도 은밀히 끄덕일 욕망이다. 뉴서울파크의 젤리장수는 이들의 속내를 읽어낸 듯 말을 붙이고 젤리를 건넨다. 그 젤리를 씹어 삼킨 순간 소원은 이루어지고 참극이 시작된다.
안정을 찾기 어려운 세상에서 어찌할 수 없는 외로움에 지친 우리는 때때로 선(善)에서 멀어진다. 가끔은 세상이 그리 하라 부추기기도 한다.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 속 주인공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는 까닭은, 그들의 평범한 불행과 그 불행이 빚어내는 욕망이 다름 아닌 우리의 것이기 때문이다.
| 읽는 재미를 높이는 짜임새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은 군상극이다. 아홉 개의 이야기 속 각기 다른 인물과 사건이 맞물려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를 이룬다. 하나의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의 결말이고, 또 다른 이야기는 앞서 등장한 이야기의 세부 상황이다. 같은 시간에 다른 인물이 겪은 상황이 드러나기도 하고 음모와 오해 너머의 진실이 밝혀지기도 한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전체 사건을 이루는 퍼즐 조각이 맞춰지기에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손길이 분주해진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서로 다른 인물의 시점을 취하며, 때로는 구성까지도 다르다. 한 인물의 이야기가 시간 순서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사연을 풀어내는 경우가 있다. 사건 당일을 D-day로 삼아 시간 역순으로 진행되는 에피소드도 있고 대립 구도를 취하는 두 세력의 이야기가 병렬 진행되는 에피소드도 있다. 해당 에피소드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구성을 택하여 다채로운 재미를 선사하는 것이다.
다양한 이야기가 하나로 모아지려면 이음매가 매끈해야 한다.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의 에피소드들은 각자 완결성을 갖추었으면서도 다른 에피소드와 동일한 어조를 띠고 전개됨으로써 소설 전체의 긴장도를 유지한다. 첫 장과 동일한 제목을 지니고 첫 장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장을 읽을 때까지도, 좁혀진 미간을 풀기는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