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국 인문 기행

서경식 · Essay/Humanities
2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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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에세이스트 서경식이 다시 찾은, 아이러니의 나라 영국! 영국을 찾아갈 때마다 이 땅은 나에게 동경과 반감, 경의와 경멸이 한데 뒤섞인 복잡한 상념을 불러일으켰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오스카 와일드, 조지 오웰 등 나에게는 우상이라고도 할 법한 수많은 문학가들을 낳은 곳. (...) 어쨌든 나는 젊은 시절부터 영국의 문화와 예술에 매혹되어 왔다. 이와 동시에 이 나라가 대제국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발휘해왔던, 두려울 정도로 냉혹하고 교활했던 측면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이렇게 모순으로 가득 찬 양면성이 이 나라 사람들의 문화에도 암울한 아이러니를 움트게 하여 그들의 작품은 복잡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당신은 영국이 좋은가?”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고 해도 답하기는 어렵다. 질문 자체가 너무 단순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한 이 양면성이 “인간이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같은 인문학적 물음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영국이 좋다.”라고 대답할 수는 없지만, ‘영국적 문제’에 마음이 끌린다는 점만은 부정할 생각이 없다. _ 저자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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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책을 펴내며 1. 케임브리지 1 2. 올드버러 3. 런던 1 4. 런던 2 5. 런던 3 6. 케임브리지 2 옮긴이의 말

Description

루벤스, 프란스 할스, 벤자민 브리튼, 피터 피어스, 윌프레드 오언, 헨리 퍼셀, 잉카 쇼니바레, 잉그리드 폴라드, 터너, 존 컨스터블, 리처드 빌링엄, 버지니아 울프, 레너드 울프…… 식민지배와 대서양 삼각무역, 청교도혁명과 종교전쟁, 제1~2차 세계대전…… 1.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가 만난 영국의 역사와 예술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에 이어 서경식이 《릿터》에 연재한 여행 에세이를 묶은 책이다. 서경식은 2015년 영국과 아일랜드 등지를 여행하며 루벤스부터 프란스 할스, 벤자민 브리튼, 헨리 퍼셀, 잉카 쇼니바레, 터너, 존 컨스터블, 버지니아 울프 등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노예제와 대서양 삼각무역, 식민지배와 가부장제, 청교도혁명과 종교전쟁, 제1~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들려준다. 서경식의 책의 애독자들을 이미 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그의 유럽 여행기는 일상을 벗어나 낯설고 자유로운 곳에서 견문을 넓히는 즐거움으로 가득 찬 여행의 기록이 아니다. 조국에서 옥살이를 하는 형들(서승, 서준식)의 옥바라지를 하는 30대의 재일조선인 청년에게 유럽의 다양한 미술관에서 만난 작품들은 지하실에 난 창문으로 겨우 들어오는 희박한 공기였다고 기록한 『나의 서양 미술 순례』부터 3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항상, 그의 여행은 그야말로 ‘순례’라는 말이 정확히 들어맞는다. 그것은 ‘자신’에 대해 묻고, ‘조선인’이라는 정체성과 연결된 식민지의 역사, 제국의 역사에 대해 묻고, 또 나아가 ‘인간’에 대해 묻는 깊고 어두운 탐색에 가깝다. 특히 거대한 제국의 그림자를 지닌 영국, 근대 과학과 정치와 경제의 역사를 이끌어온 영국, 전지구화로 인해 신음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뒤섞여 살아가는 영국을 여행하면서 이런 탐색은 더 빛을 발한다. 올드버러에서 크롬웰의 생가를 방문한 곳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떠올리고, 레이크디스트릭트에서 아프리카 여성 아티스트의 시선을 상상해보는 저자의 기록을 읽으며 독자들 역시 나름의 질문들을 만들어볼 수 있으리라. 특히 버지니아 울프의 자살을 레너드 울프의 유대인 정체성과 전쟁으로 치닫는 당대 유럽의 광기와 연결시켜 읽어내는 대목은 놀라울 정도로 참신하면서도 설득력 있다. 재일조선인이라는 정체성뿐만 아니라 1983년의 방문, 2001년의 방문, 2015년의 방문이라는 세 겹의 시간이 더더욱 입체적인 여행의 기록이 되었다. 젊은 시절의 ‘미술중독자’가 바라본 터너의 작품과 60대의 모즈쿠 전쟁 패전 용사가 바라보는 터너의 작품은 어떻게 다른지, 브레히트의 시는 30년의 거리를 두고 어떻게 다시 읽히는지, 단순한 구로코 역할로 생각되었던 피어스가 어떤 과정을 거쳐 브리튼의 음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아티스트로 이해되는지 음미해볼 수 있는 것은 서경식 책의 애독자들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 설문조사를 둘러싼 상황을 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떠올렸다. “히데요시는 영웅일까, 악한일까?”라고 묻는다면 현재 일본 국민들은 어떤 대답을 할까? 히데요시가 죽었던 해는 1598년. 그로부터 1년 후 일본에서 멀리 떨어진 잉글랜드 땅에서 크롬웰이 태어났다. 이 두 사람의 생애는 여러 면에서 서로 닮았다. 특히 히데요시가 주도한 두 번의 조선 침략인 임진왜란(1592)과 정유재란(1597), 그리고 크롬웰 군대의 아일랜드 침공에는 유사한 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반세기 남짓 시차를 두고 극동과, 영국·아일랜드라는 극서의 땅에서 이렇게 서로 비슷한 양상의 커다란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한 동기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도달 이후의 세계적 대변동과 ‘세계 시스템’의 형성 과정에서 생겨난 거대한 파도가 동아시아에까지 미쳤던 현상으로 보는 것도 가능하다.(35, 37) 많은 일본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히데요시를 영웅이라고 생각하면서 자랐던 나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그런 내 자신에게 위화감과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히데요시가 나의 영웅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으며 묵살되어온 소수자나 패배자의 존재에 눈을 떴던 셈이다. 나 자신이 그런 패자들 쪽에 속해 있다는 사실 역시. 그러한 ‘불편함’이야말로 내 인생의 귀중한 자산이다. 만약 그 자각이 없었더라면 내 정신세계는 언제까지나 일면적이고 천박했으리라. 아일랜드 사람이라면 크롬웰을 어떻게 생각할지를 상상해보는 일도 불가능했을 것이다.(39) 반전평화주의자 벤저민 브리튼이 천황제 군국주의의 중요한 의전이었던 황기 2600년 기념제를 위해 작곡했다는 에피소드는 꽤 복잡하고 흥미롭다. 당시 브리튼은 아직 젊었고(28세), 미국에서의 타향살이로 경제적으로도 곤궁했다는 사실이 하나의 설명이 될 수 있다. 젊고 가난하며 야심이 넘쳤던 작곡가에게는 이 의뢰가 큰 기회로 여겨졌으리라는 점은 이상하지 않다. 또 아무리 반전주의자라고 하더라도 유럽에서 자랐던 젊은이에게 머나먼 극동에 위치한 일본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존재였을 것이다. 그래서 절박한 위기감으로 다가오는 대상은 아니었으리라는 해석도 가능하다.(83) 나는 20년쯤 전에 코번트리를 방문한 적이 있다. 워릭 대학교에서 유학 중이던 친절한 일본인 청년이 폭격의 흔적이 남아 있는 대성당 터와 거기에 인접한 새로운 성당을 안내해주었다. 예전에 나는 연합군에 의한 전략 폭격으로 철저하게 파괴된 드레스덴에 갔다. 그때 피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성모 교회를 찾은 적이 있었기에 적대국 관계에 있던 영국과 독일 두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전략 폭격의 피해를 입은 도시에 가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 무렵에는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에 특별히 깊은 관심이 없었고 모처럼 방문했던 코번트리 여행도 지금 생각하면 겉핥기식으로 끝났다. 20년이 지나 이미 늦어버렸지만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101, 103) 오늘 하루 보고 들었던 것을 천천히 반추해본다. 머릿속에서 브리튼이 토머스 하디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 「겨울의 언어」의 마지막 곡 「생명의 앞뒤」 마지막 행이 조용히 흘렀다. “How long,how long?”이라고. 머릿속으로 테너 가수의 섬세한 목소리가 반복해서 맴돈다. 정말 앞으로 얼마나 지나야 할까? 제1차세계대전의 참화를 경험한 후 인류는 게르니카, 난징, 코번트리, 드레스덴, 아우슈비츠, 히로시마, 나가사키…… 그 밖에도 과거의 일들을 훨씬 능가하는 잔학과 무자비를 스스로 연출했다. 그 후로도 계속 이어진 한국, 베트남, 구 유고슬라비아, 팔레스타인, 이라크, 우크라이나, 시리아…… 아, 여전히 세계는 피투성이다. 대체 언제까지? 제1차 세계대전 때 죽은 젊은 시인의 말에 인류가 귀를 기울이기까지는 앞으로 얼마나 더 시간이 흘러야 할까? 브리튼의 음악에는 이 어리석은 행진을 멈추게 할 힘은 없다. 하지만 그의 음악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렇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지나야 할까?(109) “피어스는 브리튼에게 참 커다란 존재였네.” F가 입을 열었다. “응, 그런 생각은 별로 하지 못했어.”라고 나는 대답한다. 나는 아무래도 피어스가 브리튼의 그림자 뒤에 조용히 숨어 있는 구로코(가부키 무대에서 검은 옷을 입고 배우 뒤에서 연기를 돕는 사람)같은 존재라는 잘못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는 뛰어난 가수였을 뿐만 아니라 당당한 지식인이자 때로는 브리튼을 이끌어주던 사람이었다. 브리튼은 피어스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그가 노래를 부를 것을 상정하고 수많은 명곡을 썼고, 피어스도 거기에 견실히 응했다. 고흐와 동생 테오가 그랬듯 브리튼과 피어스도 한 몸인 예술가였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피어스에 대해서 더 알아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임브리지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졌다. 왔을 때와 같은 루트로 거꾸로 거슬러 돌아가게 된다. 버스에 올라 마을을 떠날 때 브리튼과 피어스가 나란히 잠든 작은 교회 옆을 다시 지나갔다.(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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