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첨단 뇌신경과학으로 살펴본 이기는 법칙
“무엇이 승자와 패자를 만드는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불평쟁이와 자신의 페이스대로 일하는 쿨가이의 차이는? 왜 아카데미상 수상자는 후보에만 오른 사람보다 수명이 길까? 빨간색 옷을 배정받은 선수가 경기에서 더 많이 이기는 건 우연일까? 연인이나 배우자와의 주도권 싸움은 필연적인가? 왜 피카소 아들은 평생을 술주정뱅이로 살았고 아인슈타인 아들은 저명한 과학자가 되었나?
왜 이기는 사람만 늘 이길까?
지위나 인기를 갑자기 얻은 사람에게 종종 “뜨고 나니 사람이 변했네.”라는 말을 한다. 그 말을 듣는 당사자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실제로 맞다. 사람이 승리를 경험하거나 권력을 얻으면 실제로 그의 뇌가 바뀌기 때문이다. 경쟁사회에서 시합의 승자가 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숙명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승자와 패자를 결정짓고 성공의 지표인 권력은 인간의 행동과 생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신경심리학계 세계적 권위자인 이안 로버트슨은 『승자의 뇌』(원제: Winner Effect)를 통해 ‘승리’에 대한 다섯 가지 흥미로운 미스터리를 최신 뇌신경과학, 인지발달 심리학, 정치학, 경제학 속 여러 사례를 통해 노련한 솜씨로 펼쳐낸다.
왜 어떤 사람은 권력을 얻어도 품위 있고 어떤 사람은 개처럼 타락하는가? 이는 단지 자기수련의 문제일까? 결혼 생활이나 정치 활동에서 나타나는 온갖 변덕스럽고 악의적이며 추잡한 행동을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는 어떤 개념이나 과학적 원리는 없을까?
이 책의 원제인 ‘승자 효과’는 생물학에서 종종 쓰인다. 이는 동물을 약한 상대와 싸우게 하면 쉽게 이기는 것은 물론이고, 다음 싸움에서 강한 상대를 만나도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면 자기보다 덩치가 작은 녀석과 닷새 동안 생활했던 물고기는 덩치가 큰 녀석과 생활했던 물고기보다 더 강한 공격성을 보인다. 그런데 이 이론은 인간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미국의 권투 프로모터인 돈 킹은 이러한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는 ‘승자 효과’를 3년간의 수감생활을 마친 마이크 타이슨에게 적용한다. 권투계에서는 중요한 경기에 대비해 쉽게 이길 수 있는 약한 상대를 은어로‘토마토 통조림’이라고 부르는데, 타이슨의 첫 번째 토마토 통조림은 피터 맥닐리였다. 경기는 시작된 지 89초 만에 타이슨의 승리로 싱겁게 끝났고 두 번째 복귀 무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세 번째 무대에 서는데 이번 상대는 ‘토마토 통조림’이 아닌 WBC 세계 챔피언이었다. 하지만 타이슨은 상대를 3회에 눕혔고 결국 다시 한 번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다.
경쟁에서 우리가 거두는 결과는 그 과제를 수행하기 직전의 마음상태나 호르몬 활동상태뿐만 아니라, 과거의 승리 경험 여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타이슨에게 일부러 약한 상대를 붙여주어 좀 더 강력한 상대와 싸울 때 보다 큰 힘과 용기를 발휘할 수 있도록 했던 돈 킹의 전략은 확실히 통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주변에는 돈 킹과 같은 전략적 프로모터가 곁에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승리의 확률을 높여줄까? 타고난 유전자일까, 아니면 후천적 환경이나 운일까?
태어나면서부터 이기는 핏줄과 지는 핏줄이 정해지는 것일까?
세계적으로 특출 나게 성공한 삶을 살았던 유명인의 자식들은 대체로 삶의 방향이 2가지로 나뉜다. 부모의 후광을 이어받아 어느 정도 무난한 삶을 살아가거나, 부모의 그늘에 가려 평생을 불행하게 사는 경우이다. 아인슈타인의 첫째 아들은 저명한 수역학공학자였으며 워런 버핏의 자식들은 투자와는 상관없지만 농부, 음악가 등으로 활동하며 사회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는 전자의 경우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후자가 많다. 미국의 석유재벌 폴 게티의 아들은 아버지의 유산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자식이 납치되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광경을 목격해야 했고, 세계적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아들은 평생을 술주정뱅이로 살아야 했다. 특히 피카소의 아들은 아버지의 파트타임 기사로 일하다가 가정이 풍비박산이 난 뒤 아버지 집에 거주하며 비서 겸 운전사로 일했는데 그런 아들을 피카소는 평생 못마땅해하며 경멸했다고 한다.
가난한 집에서 ‘개천에 용 나는 상황’은 있어도 특출 난 부모 밑에서 부모를 뛰어넘기란 매우 힘든 일인 듯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을 제기할 수 있다. 그렇게 뛰어난 부모의 핏줄을 이어받았으면 그 수준에 맞추어 자식도 진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책에 따르면 천재 부모를 둔 사람일수록 자신의 기대치에 못 미칠 때의 스트레스가 매우 치명적어서 잠재력을 발달시키는 데 오히려 해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똑같이 훌륭한 유전자를 물려받았는데 어떤 자식은 나름 행복한 삶을 살고 어떤 자식은 나락에 빠지나?
하버드대학교의 저명한 심리학자 데이비드 맥렐런드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본인이 추구하던 것의 대부분을 성취한 사람, 즉 승자는 대체로 골디락스(언제나 알맞은 정도를 선택하는 영국의 전래동화 속 소녀)처럼 죽이 너무 뜨겁지도 않고 너무 차갑지도 않은 걸 좋아하는 사람들임을 발견했다. 원하던 것을 대부분 이룬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 능력에 맞는 적절한 수준의 도전적 목표, 즉 쉽지는 않지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꾸준하게 설정했다. 눈높이를 지나치게 낮게 잡지도, 너무 높게 잡지도 않는다. 그런데 대단한 성공을 거둔 부모의 자식들은 대체로, 야망의 목표를 골디락스의 영역에 설정하는 것, 즉 적절한 수준의 야망을 설정하는 것을 무척 어려워한다고 한다. 특히 부모 두 사람이 모두 천재라면, 이런 부모를 둔 자식은 부모가 이룬 성취 수준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부모가 이룬 그 어마어마한 업적과 비교해서 사소하게 보이지 않을 어떤 것을 목표로 설정해야 하는데, 그 일을 자식이 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흔히 부모가 아이에게 쉽게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칭찬할 때 “똑똑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이의 잠재력을 키워주려면 어떤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 그 아이가 얼마나 끈기 있게 노력했고 또 창의성을 발휘했는지 말해줘야 더 효과적이다. 그렇지 않고 “똑똑하다”고만 할 경우, 유전자적 숙명론의 저주(이를 테면 “난 똑똑하니 남보다 더 노력하지 않아도 돼.”“난 똑똑하니까 항상 1등을 해야 해.”같은)가 무의식적으로 그 아이에게 내려질 수 있다.
운이나 우연은 승리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하루 몇백 달러의 돈이 오가는 금융시장에서 투자자의 IQ 지수는 별 영향을 못 미친다. 조직에서 ‘줄을 잘 서야 한다’는 것은 결국 어떤 쪽에 서야 내 성공을 위한 운이나 우연의 확률이 높아질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다. 특히 스포츠 경기는 이런 운이나 우연의 결정판이다. 단시간의 승패 결과로 돈과 명예를 얻는 속성 때문인지 매번 중요한 경기에서는 판정시비나 승부조작 등이 끊임없이 나온다.
앞에서 소개한 타이슨 사례를 좀 더 과학적 측면에서 살펴보자. 타이슨이 오랫동안 쉬었는데도 세계 챔피언을 상대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이전 승리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분출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테스토스테론은 공격적 성향을 담당하는데 이 테스토스테론이 증가하면 동기부여를 담당하는 남성호르몬수용체, 그리고 쾌락과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도 함께 증가한다고 한다.
영국 더람대학교의 연구진은 아테네 올림픽에서 객관적 전력이 비슷한 두 선수(세계 랭킹으로 확인)가 빨간색 셔츠와 파란색 셔츠를 각각 입고 싸우는 경기 결과를 분석해서 셔츠의 색깔과 승패의 영향을 연구했다. 분석 결과, 빨간색을 입은 선수의 승률은 62퍼센트였고 파란색을 입은 선수의 승률은 38퍼센트였다. 빨간색 셔츠를 입고 있다는 것만으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아지는 효과가 발생하며 반대로 상대방은 빨간색에 위축되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떨어진다.
우리의 신체는 본능적으로 이기기 위해 자신의 몸에 신호를 보낸다. 어떤 경기에서든 승자의 환호는 대부분 주먹을 쥐는 것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