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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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국가’담론을 해체하고 변방의 관점에서 쓴 아나키즘의 역사 ‘조미아’는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미얀마에서 중국 남부의 윈난, 구이저우, 광시, 쓰촨 성, 인도 동북부에 걸쳐 있는 해발 300미터 이상의 고원 지대를 가리킨다. 세계사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동남아시아 산악지대가 ‘조미아’라는 이름을 얻어 역동적인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소수종족이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한다. 야만과 미개의 모습으로 규정된 소수민족의 탈주와 도피 문화는 주동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전략이 되었다. 이동식 경작방식인 화전농법은 국가와 지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대표적인 생계방식이 되었고, 카사바, 감자, 고구마 같은 ‘도피 작물’은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삶의 원천이 되었다. 국가 바깥을 선택한 사람들, 그들은 왜 산으로 올라갔나! 나는 단순하고 도발적이고 논쟁적인 주장을 펼치려 한다. ‘조미아’는 전 세계의 여러 지역 가운데, 아직 국민국가 안으로 편입되지 않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이제 그런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독립적으로 살아가던 이들이 인간 집단의 주류였다. 오늘날 평지의 국가들은 그들을 “살아 있는 조상”이라고 생각하고 “논농사와 불교와 문명을 발견하기 전 우리의 모습”이라고 바라본다. 이런 인식과 달리, 나는 산악민들을 지난 2천 년 동안 노예제와 징병, 과세, 부역, 질병, 전쟁 등 평지의 국가 만들기 과업의 폭정에서 도망친 탈주자, 도피자, 도망노예들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거주하고 있는 대부분의 지역을 파쇄 지대 또는 탈주 지대라고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문명 담론’은 사람들이 경계를 넘어가 자발적으로 야만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결코 좋게 여기지 않았고, 그러한 사람들에게 오명을 씌우고 ‘종족화’ 작업을 시도했다. 종족성과 ‘부족’은 정확히 세금 징수와 주권이 끝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탄생한 것이다. 중국이 그랬고, 로마가 그랬다. ― 머리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