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세계문학 읽기 열풍 속에서 번역/번역가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번역가를 낮춰 보는 학계, 서평가, 출판사들을 향해 어느 문학 번역가가 던지는 생생한 돌직구! 문학을 좋아하는 ‘범생이’에서 가브리엘 마르케스에게 원작보다 나은 번역이란 평가를 받기까지, 스스로 터득한 번역 노하우 공개 국내 번역서 현실을 돌아보는 탐서가 로쟈와 번역가 공진호의 인터뷰 수록 “‘번역계의 글렌 굴드’ 이디스 그로스먼은 문학 번역이라는 예술을 다룬 최고의 책을 썼다. 벤야민도 능가하는 그녀의 성찰은 ‘번역가의 과제’를 독립적인 차원에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이 책은 고전이 될 것이다.” _해럴드 블룸(문학평론가) “그로스먼을 비롯해 그녀 같은 번역가들은 우리를 지속적으로 일깨운다. 그로스먼은 번역/번역가라는 주제를 열정적으로 탐구하며, 끈기 있게 설명한다.” _《뉴욕타임스 북 리뷰》 “문학 번역의 지속적인 중요성을 열렬하면서도 도발적인 시선으로 다뤘다.” _《런던 리뷰 오브 북스》 안녕들 하십니까 서평가 그리고 출판계 여러분 ― ‘번역 비평’ 비판에서부터 번역가를 낮춰 보는 시선에 대한 저항까지 번역서 비판의 불편한 진실, “무엇과 비교해 ‘훌륭히’ 번역되었다는 걸까?” <번역 예찬>(원제: why translation matters)은 문학 번역가 이디스 그로스먼이 ‘번역은 왜 중요한가’라는 주제로 예일대에서 강연한 내용을 재구성한 책이다. 그로스먼은 ‘번역은 ~이다’처럼 은유를 써가며,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번역론’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번역 현장에 주목하면서 실제로 부딪힌 난관을 돌아보는 데 중점을 둔다. 그녀는 특히 정확성 검사에만 머문 번역 비평, 원문에 충실하겠다는 태도를 기계적인 번역문으로 환원해버리는 직역주의자, 번역가를 낮춰 보는 출판계의 시선에 저항한다. 번역 비평은 어떠해야 하는가. 그녀가 힘주어 말하는 화두다. 1장 「번역을 옹호한다」에서, 그로스먼은 유명한 문학 번역가 그레고리 라밧사가 영역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독재자의 가을』읽기 세미나에서 겪은 일화를 소개한다(57쪽 참고). 세미나 도중 한 학생이 그로스먼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선생님 저희가 읽는 것은 라밧사인가요?, 아니면 마르케스인가요?” 그로스먼은 “라밧사지”라고 한 다음, 잠시 뒤 “마르케스이기도 하고”라고 답한다. 그로스먼은 이 문답이 세미나의 가장 흥미로운 토론거리가 되었다고 말하면서, 오늘날의 번역 비평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는다. 번역가의 노고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는 그녀가 볼 때 번역 비평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번역서 서평을 읽을 때 “무엇과 비교해서 ‘훌륭히’ 번역되었다는 것이지?”라는 상식적인 질문은 자연스레 생략된 상태다. 그로스먼은 번역서를 대하는 서평가의 태도를 그들의 표현 속에서 짚어낸다. 그녀는 지면의 제약이 있을지라도 “원작과 번역을 모두 평할 수 있는 명석한 방식”을 제안한다. “‘매끈하다’는 말(그와 함께 ‘능숙하다’는 말)은 아마 대개의 비평가가 대부분의 번역서에 대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일 것입니다. (…) 그들의 미미한 찬사 속에 숨겨진 비난을 냉소적으로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능숙하다’는 말은 짧은 단어여서 지면이 제한적일 때 유용합니다. ‘매끄러운’은 사실 번역가가 적절히 낮춰지고 순화되어, 보이지 않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78쪽) 직역을 둘러싼 두 명작가의 상반된 태도 직역주의자 또한 그로스먼이 비판적으로 보는 대상이다. “직역은 어설프고 도움이 되지 않는 개념으로, 번역과 원본의 관계를 심히 왜곡하고 지나치게 단순화합니다.”(79쪽) 그녀의 주장은 단호하다. 번역에서 ‘충실성fidelity'은 “문학 번역가의 고귀한 목적”이자 “유토피아적 이상”이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충실성을 직역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79쪽) 그로스먼은 2장 「번역가의 분투」에서 어휘나 구문의 짝짓기 수준에 머무른 직역주의자로 『롤리타』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를 지목한다. 그녀가 보기에 나보코프는 “소설가로서는 탁월하나 번역가로서는 형편없는”(82쪽) 작가다. 그녀는 나보코프가 영역한 『예브게니 오네긴』의 시작 부분을 인용하며, 그처럼 정열적이고 노련하며 모험적인 작가가 언어와 언어가 문자상 서로 상응한다는 생각에 갇힌 것에 놀라움을 표한다. 직역주의자에 대한 반박으로, 그녀가 소개하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일화는 인상적이다(85쪽 참고). 보르헤스는 자기 작품의 영어 번역에 대해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별난 생각을 가진 작가였다. 그는 한 영어판 번역자에게 다음과 같이 부탁했다고 한다. “내 글을 간단하게 만드세요, 변경하세요, 강하게 만들어주세요.”(85쪽) 미국의 저명한 번역가이자 시인인 벤 빌릿은 “직역의 정당성을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들은 스페인어의 흔적을 없애려는 그의 광적인 노력에 경악할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로스먼의 진술에 따르면, 보르헤스는 “자기가 말한 것은 그대로 쓰지 말고, 말하고자 한 것을 쓰라고” 번역을 부탁한 작가였다. 그로스먼은 책에서 작가와 번역가, 원문과 번역문의 미묘한 관계를 여러 차례 되짚는다. 이를 통해 그녀는 번역어의 구조와 미묘한 차이에 대한 모든 감각, 이를 일깨울 수 있는 감성을 최대한 동원하는 일. 이것이 번역이라 말한다. 출판계 여러분, “번역가는 익숙한 풍경의 일부가 아니랍니다” 번역/번역가를 경시하는 풍조는 출판사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그로스먼은 단지 출판계 내부의 부조리를 지적하는 게 아니라, “다른 문화는 중요하지 않으며 다른 언어 또한 시시하다”는 미국 내 극렬한 애국주의적 편협함을 비판하는 차원까지 나아간다. 미국인이 번역서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내길 꺼린다는 미국 출판계의 답변은 그로스먼이 보기에 케케묵은 답변일 뿐이다. 그로스먼의 진술에 따르면, 영어를 둘러싸고 미국과 영국 출판계 간의 인식 차도 존재한다. 영국 출판계는 미국식 영어를 인정하지 않은 채, 많은 부분을 수정하려 든다. 스페인도 예외는 아니어서, 남미 작가들의 경우 남미 스페인어를 쓰는 이들은 스페인 출판사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곤 한다. 비단 외국 사례이긴 하지만, 그로스먼이 출판계 비판으로 논하려는 것은 번역가에 대한 존중이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이 담긴 소산인 번역 작품을 인정해주고, 더 활성화된 장을 마련해주기 위해 인식의 전환을 출판계, 독자, 번역가가 함께 도모하는 것. 이런 제안 가운데 그녀는 마냥 이상만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제안은 갈수록 책을 읽는 독자의 수가 줄어드는 것을 공감하는 현실적인 배경 안에서 제시되고 있다. 번역가의 서재를 훔쳐보다 ― 번역가는 어떻게 책을 읽는가, 번역을 위해 필요한 독서는 무엇인가 “어떤 책이든 번역가는 그 책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독자요, 비평가라는 것은 이제는 적어도 번역가의 세계에서는 진부한 말입니다. 번역가는 일의 특성상 그 정도로 원문에 깊숙이 관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면밀한 비평적 독서는 저처럼 후안무치한 문학 중독자에게는 즐거움 그 자체입니다.”(86쪽) 『번역 예찬』은 좋은 번역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준비물은 무엇인지 알려주는 가이드북이기도 하다. 문학 연구자이기도 한 그로스먼은 문학·문학 번역에 관한 풍부한 역사적 교양을 제시하면서, 번역서 읽기가 번역의 출발점임을 역설한다. 파블로 네루다의 『지상의 거처』는 그냥 문학이 좋던 ‘범생이’였던 저자 자신의 공부 방향과 인생 행로를 바꾸었다. 마르케스에게 카프카의 『변신』또한 인생의 방향을 결정지은 작품이었다. 번역을 논할 때 ‘오역’은 엄청난 비판 대상이 되곤 한다. 허나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