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종종 낙서가 예술이 될 수 있는지 묻습니다.
음, 틀림없이 예술이죠.
그 얼어 죽을 테이트에도 걸려 있잖아요?”
뱅크시의 삶과 예술을 폭넓게 추적한 최초의 책!
저널리스트의 눈으로 바라본 뱅크시의 어제와 오늘
‘뱅크시’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도 아마 이 사건은 들어봤음 직하다.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 프레임에 파쇄기를 설치한 뒤, 소더비 경매에서 작품이 86만 파운드(한화로 14억 원 이상)에 낙찰된 그 순간 파쇄기를 작동시켜 그림을 잘게 찢어버린 사건 말이다. 도중에 파쇄기가 멈춘 탓에 그림의 절반만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찢긴 그림은 뱅크시의 <풍선과 소녀>(2006)였다. 이 충격적인 사건 이후의 전개는 더욱 놀랍다. 구매자가 낙찰을 취소하지 않고 이 반파된 그림을 그대로 사간 것이다. 사건 이후 뱅크시는 이 찢긴 그림에 <사랑은 쓰레기통에>란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진품 인증서도 발행했다. 이로써 구매자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작품을 소장하게 되었고, 작품 가격은 경매 낙찰가를 훌쩍 뛰어넘었다. 이 그림을 대여해갔던 미술관에서는 뱅크시 그림을 전시한 기간동안 평소보다 두 배의 관람객을 맞이했다.
이 사건에는 『뱅크시: 벽 뒤의 남자』에서 다루는 의문과 이슈들이 모두 함축되어 있다. ‘자본주의를 비웃던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되레 자본주의를 배불리 먹이고 있는 것 아닌가?’, ‘왜 예술계는 이토록 뱅크시에 열광하는가?’, ‘뱅크시 팀의 정체는 무엇이며, 그들은 어떻게 이런 대담한 일을 벌일 수 있는가?’ 뱅크시에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듣는 건 기대할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저자는 뱅크시의 초기 작품부터 가장 최근 작품까지를 빠짐없이 추적하고 그 사이사이에 벌어졌던 사건과 논란을 이 책에 생생하게 담아내, 독자가 이 질문들에 스스로 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뱅크시의 말마따나, 그가 진정 원하는 것은 “그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예술이니 말이다.
예술을 비웃는 거리의 아웃사이더
혹은 백만장자의 트로피가 된 변절자
뱅크시, 그는 과연 누구인가?
‘거리의 무법자’, ‘아트 테러리스트’, ‘얼굴 없는 화가’, ‘익명의 혁명가’, ‘미술계의 반항아’…. 뱅크시를 수식하는 표현은 다양하다. 얼굴도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 치고 꽤 화려한 명성을 누리고 있다. 경매에 나오면 수백만 달러에 팔리고, 안젤리나 졸리나 브래드 피트 같은 헐리우드 스타들도 뱅크시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다. 2010년에 뱅크시는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들었으며(이때 그는 종이 봉지를 뒤집어 쓴 사진을 공개했다), 2019년에는 미켈란젤로를 제치고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과거에는 뱅크시의 ‘불법적인’ 거리 미술을 지우기 바빴던 시 당국이, 이제는 오히려 뱅크시가 자신의 관할 도시에 와서 그림을 남겨주길 기다리며 그의 그림을 열심히 보호한다. 뱅크시는 사법 당국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익명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뒤바뀐 셈이다. 이렇듯 정체를 숨길 이유가 사라졌다 해도 이 책의 목적은 뱅크시의 ‘가면’을 벗기는 것이 아니다. 나아가 뱅크시의 팬과 추종자, 심지어 그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고 있는 과거의 동료들조차도 그의 정체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가난한 이들을 도우려고 부자에게서 재물을 빼앗(지는 않지만 아무튼 상류층을 조롱하)는 ‘로빈 후드’처럼 묘사된 이 남자의 미스터리”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대신 이 책은 1990년대 브리스틀 구석에 스프레이를 칠했던 한 무법자가 영국과 미국 경매장의 캐시카우가 된 복잡한 역사를 좇는다. 확실히 뱅크시는 “마지못해, 하지만 가차 없이 예술계에 바짝 끌려온 범법자”이다. 유수 언론에서 수석 기자 및 선임 편집직을 맡았던 저자 윌 엘즈워스-존스는 예리하고 냉철한 시각으로 뱅크시의 삶과 예술을 추적한다. 저자는 2013년에 『뱅크시: 벽 뒤의 남자』를 처음 출간하고 그 이후 조사를 거듭하여 2021년까지의 논쟁점을 추가해 전면개정판으로 이 책을 내놓았다. 그는 뱅크시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창구를 샅샅이 뒤졌다. 첫째로는 브리스틀, 런던, 뉴욕, 베들레헴 등 뱅크시가 지나온 예술적 흔적을 광범위하고도 심도 있게 조사했다. 뱅크시의 모든 커리어가 이 책에 집약적으로 담겨 있다. 둘째로는 뱅크시의 ‘불법’ 전시회를 개최했던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관계자들, 뱅크시의 진품 목록과 그 판매가를 정리한 아카이브, 뱅크시라면 어디든 따라다니는 열성 추종자 등을 직접 만나서 인터뷰하거나 조사했다. 그중에는 뱅크시의 인생에서 재정적으로 가장 수익이 좋았던 6년 동안 그의 에이전트이자 매니저였으며 4년 넘게 가까운 동료로 지냈던 스티브 라자리데스도 있고, 뱅크시가 이제 막 그래피티를 시작할 무렵 그를 지켜봤던 ‘원로’ 존 네이션도 있다. ‘뱅크시가 따라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을 만큼 작품 스타일이 비슷한 블레크 르 라의 일화도 무척이나 흥미롭다. 셋째로는 저자가 ‘디즈멀랜드(뱅크시가 만들어낸 우울한 디즈니랜드)’나 ‘산타 게토(성탄절에 열리는 신성모독적 팝업 스토어)’ 등을 직접 방문하여 현장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낀 뒤 적은 객관적인 체험 수기를 더했다. 넷째로는 뱅크시가 지금까지 각종 신문·잡지·라디오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비롯해 뱅크시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과 페스트 컨트롤 웹사이트에 올라오는 공식 성명을 체계적으로 수집·정리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뱅크시의 유명한 그림 <풍선과 소녀>, <몸수색>, <쇼 미 더 모네>, <훌라후프 소녀>, <에취!!>는 물론, 재치 넘치고 신랄한 뱅크시의 여러 작품과 애니매트로닉스(움직이는 모형)를 생동감 넘치는 도판 약 65점으로 소개한다. 그리고 이 방대한 이야기를 총 14개 장으로 나눴다.
1부 “침투의 기술” ― 뱅크시가 브리스틀에 남긴 초창기 흔적을 파헤치고, 이후 그가 전 세계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벌인 ‘기행’을 살펴본다. 뱅크시는 테이트 갤러리, 런던 자연사 박물관, 브루클린 미술관, 파리 루브르 박물관 등에 잠입해서 자신의 그림을 몰래 걸어두고 도망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2부 “옛날 옛적엔” ― 인정받는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되기까지 뱅크시가 지나온 성장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또한 그가 정체를 숨기기 전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만나 인터뷰한다. 사실 뱅크시의 정체는 2008년에 한 매거진에서 폭로된 바 있다. 이때 그의 실명과 아내의 이름, 학창 시절 사진, 심지어는 가정사까지 수면 위로 드러났다. 2부에서 저자는 뱅크시의 정체가 숨겨지고 폭로되는 과정을 좇았다.
3부 “그래피티의 의미” ― 뱅크시는 어떤 방식으로 이토록 큰 그래피티를 도시의 벽에 몰래 그릴 수 있는 걸까? 3부에서는 그래피티의 기술적인 면을 조사하고, 그중에서 뱅크시의 작업 방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 변천사를 살펴본다.
4부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서” ― 흔히 ‘뱅크시스러운 그래피티’에는 다른 그래피티에선 볼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한 서명과 스타일이 있다. 뱅크시의 작품들을 하나씩 뜯어보며 이 특징들을 살펴본다.
5부 “익명의 행복” ― 뱅크시의 ‘익명성’을 집중 탐구한다. 유명 예술가가 익명으로 남을 때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인지, 또 뱅크시가 오래도록 익명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살핀다. 아마 가장 궁금한 것은 그가 익명을 유지하는 비법일 것이다. 그가 정체를 숨기는 교묘하고도 영리한 방법을 들여다본다.
6부 “예술가와 기획자” ― 뱅크시는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거리 예술가들을 위해 ‘판’을 짜는 기획자이기도 하다. 6부에서는 뱅크시가 동료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을 위해 기획했던 이벤트와 쇼 비즈니스를 살펴보고, 여기서 그의 스타성이 어떤 효과를 발휘했는지 알아본다.
7부 “집으로 돌아온 무법자” ― 세계적 스타가 된 뱅크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