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린디합을

Sohn Bomi · Novel
27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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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제3회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자, 손보미의 첫 소설집. 2009년 「21세기문학」 신인상 수상,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담요' 당선, 2012년 '폭우'로 제3회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 2013년 '과학자의 사랑'으로 제4회 젊은작가상 수상… 등단 사 년차에 불과한 이 신인 소설가의 이력은 매해 수상 기록으로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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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담요 ‥‥‥‥‥‥‥‥‥‥‥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폭우 ‥‥‥‥‥‥‥‥‥‥‥『문학동네』 2011년 가을호 침묵 ‥‥‥‥‥‥‥‥‥‥‥『21세기문학』 2009년 여름호 그들에게 린디합을 ‥‥‥‥‥‥‥‥‥‥‥『현대문학』 2011년 4월호 여자들의 세상 ‥‥‥‥‥‥‥‥‥‥‥『문학들』 2011년 겨울호 육 인용 식탁 ‥‥‥‥‥‥‥‥‥‥‥ 문장 웹진 2011년 8월호 과학자의 사랑 ‥‥‥‥‥‥‥‥‥‥‥『현대문학』 2012년 6월호 달콤한 잠 ― 팽 이야기 ‥‥‥‥‥‥‥‥‥‥‥『21세기문학』 2011년 겨울호 애드벌룬 ‥‥‥‥‥‥‥‥‥‥‥『세계의문학』 2012년 가을호

Description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는데 (……) 거기에는 중력을 거스르는 지역이 있었고, (……) 중력이 없기 때문에 아무도 추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추락하고 말았다. 지은 죄가 많아서 중력의 영향을 받아야 한다고 누군가 말했다. 잠에서 깨자마자, 나는 이 꿈의 내용이 한 편의 근사한 소설이 될 수 있으리란 걸 알았고, 그날부터 ‘중력을 넘어서’란 제목의 소설을 시작했다.” - 손보미, 『2012 제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작가노트 중에서 2012 제3회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자, 손보미의 첫 소설집이 마침내 출간되다! 2009년 『21세기문학』 신인상 수상,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담요」 당선, 2012년 「폭우」로 제3회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 2013년 「과학자의 사랑」으로 제4회 젊은작가상 수상…… 등단 사 년차에 불과한 이 신인 소설가의 이력은 매해 수상 기록으로 채워져 있다. 좋은 소설이 순위를 매기는 일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나, 문단 안팎에서 한 소설가를 향해 쏟아진 관심과 찬사는 그것이 그저 한때를 소비할 이슈를 쫓으며 만들어진 소란이 아님을 입증하듯 오래도록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단편소설의 우아하고 세련된 품격을 보여주면서 취향을 달리하는 이들에게 폭넓은 지지를 받아온 소설가 손보미가 2013년 첫 소설집을 세상에 내보낸다. 소설집에는 싱싱하면서도 무르익은 아홉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이 작품들은 이제까지 그녀에게 쏟아졌던 상찬이 그저 빈말이 아님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각기 독립적인 세계를 이루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아홉 편의 이야기와 함께 오랜만에 소설집을 읽는 짜릿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의 중력에 맞서 날아오르는 소설가 그간 손보미의 작품을 꾸준히 따라 읽으며 첫 소설집이 발간되기만을 고대해온 독자라면 그녀의 소설세계에서 “중력”이 차지하는 의미와 무게가 상당하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뮤지컬 <위키드Wicked>에 삽입되었던 <중력에 맞서서Defying Gravity>라는 노래가사의 인용, 혹은 그것의 변형들(“나를 여기에 두지 말아요. 내가 중력을 이기고 날아오를 수 있게 도와주세요. 나는 그렇게 음탕한 여자가 아니랍니다.”_「폭우」, “당신은 언젠가 중력에 맞서서 날아오를 거요. 그리고 당신은 음탕한 여자가 아니오.”_「과학자의 사랑」), 또 스스로를 ‘린디합퍼’라고 밝히듯 그녀가 무척이나 사랑하는 스윙댄스의 일종인 린디합(이 춤을 본 누구라도 그것이 무중력 지대에서 행해지는 예술 혹은 중력을 거스르는 이들의 우아한 투쟁처럼 느껴질 것이다. 린디합에 관해서라면 이 동영상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체면 따위는 저리 가라고 외치는 이들만이 발산하는 희열, 그로써 역설적으로 획득하는 우아한 품격. http://www.youtube.com/watch?v=M5nds-RvK_c), 그리고 「폭우」의 작가노트에서 밝힌 중력에 관한 꿈까지…… 그러므로 이때의 “중력”이 한때 젊은 작가들의 어떤 경향성을 염두에 두고 사용되었던 “무중력 세대”라는 개념처럼 이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중력”의 의미는 그녀가 계속해서 건설해나갈 소설세계를 통해 조금씩 밝혀질 테지만, 오해를 피하며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말하자면 그녀는 어떤 경우라도 철저히 소설과 삶의 진실 편에 서 있는 작가라고 말할 수 있다. 손보미는 우리가 흔히 소설적인 것이라 이야기하는 것들, 또 바로 그런 게 삶이지, 라고 외치는 상투적인 깨달음에 저항하며 단단한 소설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다. 아직 그 “중력”의 비밀이 충분히 밝혀지기 전이지만 조심스럽게 말해보자면 그녀는 어떤 지루한 편견에 맞서 싸우는 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이러한 방식을 통해 말이다. 영리한 기미의 포착자, 알기에 입을 다무는 세련된 침묵 손보미의 소설에 우리가 사로잡히는 이유는 산뜻하면서도 여운이 남는 기미들 때문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겪는, 그러나 말로는 절대 표현될 수 없는 삶의 기미들. 기미란 무엇인가? 정확히 그러한 느낌이 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삶의 균열을 예감하게 하는 어떤 순간들이 있다. 시작도, 정체도, 진행도 알 수 없는, 삶에 끼어드는 예고장 말이다. 그러니까 남편이 친구의 아내와 다리 밑에서 키스한 사실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육 인용 식탁」) 다만 뒤늦게 사진 속에서 발견한 아내의 어긋난 시선, 유달리 남편에게 친밀해 보이던 친구의 아내 그러한 것들을 불현듯 눈치채는 순간 우리는 삶이 그 삐걱이는 소리를 높여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듣게 된다. 또는 이런 것이다. 아이가 생기지 않았으므로 아내가 본격적인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하고 남편이 한때 연인이었던 대학 동기에게 빠져드는 것이라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여자들의 세상」) 다만 몸매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아내의 니트원피스 차림이 신경 쓰이는 것, 위로의 뜻으로 자신의 손등에 손을 얹은 대학 동기의 다정함을 우정의 표현으로 규정하려는 안간힘 이런 식으로 어떤 진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노력이 한계에 부딪칠 때 우리는 그 기미가 예고하는 관계의 파탄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손보미는 구구절절한 설명 대신 오로지 기미만으로 견고하다고 믿어왔던 삶이 와지끈 부서지는 순간을 놀라운 솜씨로 포착해낸다. 관습적인 이야기에 익숙한 우리는, 또 삶의 거짓된 진실에 목마른 우리는 부정(不貞)이 실제로 이루어졌는지 또 어떤 자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는지 몹시 궁금해하지만 이 비밀스러운 소설가는 이에 대해서라면 돌연 침묵해버린다. 이 영리하고 세련된 침묵 덕분에 우리는 되레 소설과 삶의 진실에 가닿게 되는 것이다. 「담요」에서 「애드벌룬」까지, 다시쓰기가 보여주는 삶에 대한 성숙한 성찰 그러나 이 영리함, 세련됨이 그저 신인의 오만함이나 기술적인 차원의 것으로 이해될 수는 없다. 『그들에게 린디합을』은 「담요」로 시작하여 「애드벌룬」으로 끝이 난다. 「애드벌룬」은 「담요」를 다시 쓴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다시 쓰여진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는 손보미가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심스럽게 통찰하고 있음을, 또 ‘삶’을 향한 우리의 안타까운 바람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담요」에서 파출소장 ‘장’은 록밴드 ‘파셀’의 공연중 일어난 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는다. 그의 삶은 이제 아들을 그리워하는 일들로 빼곡하게 채워진다. 그런데 손보미는 「애드벌룬」에서 이 사건을 조금 변형하여 ‘장’의 아들을 다시 살게끔 만든다. 콘서트장의 사고는 그저 ‘장’의 다리를 평생 절게 만드는 규모로 축소된다. 그렇다면 아들을 잃지 않은 ‘장’과 죽지 않은 그의 아들은 「담요」의 세계에서와는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그들이 단 한 번도 살아보지 못했던 기쁘고 행복한 삶을 ‘누구도 죽지 않는’ 「애드벌룬」의 세계에서는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손보미는 이들의 미래가 마치 불행이라는 한 점을 향해 고정이라도 된 것처럼 끊임없이 그곳을 향해 걸어가도록 만든다. 아들로 하여금 그때 바로 자신이 죽었어야 했다고 자책하는 편지를 반복적으로 쓰게 하면서 말이다. 행복 대신 기원과 이유를 분명하게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이 아들의 삶을 메우고 있다. 마치 삶이란 한 번의 불행은 피할 수 있다고 해도 그 이후에 날아오는 모든 불행과 불운까지 다 피해갈 수는 없다는 것, 또 그것이 야기하는 슬픔과 우울을 제 살처럼 곁에 끼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애드벌룬」에서 아들이 보여주는 삶의 슬픈 궤적은 이 ‘다시쓰기’가 그저 재기발랄한 상상력으로 시도된 것이 아님을 짐작하게 한다. 이 진지하고 애정 어린 시도 덕분에 우리는 손보미의 소설을 언제나 기대에 찬 심정으로 기다릴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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