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역사의 진실을 마주한 불편한 시선과 극복할 용기 『맨얼굴의 독립운동사: 우리가 배우지 않은 역사, 독립운동 X파일』 역사학자 랑케는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wie es eigentlich gewesen)"를 밝히는 것이 역사가의 사명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사료란 늘 한정적이고, 해석이 여지가 있다. 사실보다 해석을 더 중시하는 요즘은 역사가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특히 식민지 경험과 분단을 겪은 우리 사회에서 역사의 기술은 해석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정반대의 논리를 양산해 내곤 한다. 정치적 프레임에 갇힌 역사 해석은 해방 전후부터 심화된 진영 논리의 각축장이라고 볼 수 있겠다. 진명행의 신간 『맨얼굴의 독립운동사』는 정서적 통념 하에 길들여진 역사 해석을 거부한다. 그는 무언가 끊임없이 반전을 시도하고, 이의를 제기한다. 듣기에 따라서는 불편한 부분들도 거침없이 드러낸다. 기존의 통설에 이론을 제기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분위기상 의외로 쉽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명예훼손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집단들 간에 향유하는 정서적 동질성이 유독 강한 편이다. 혈연이든 지연이든 특정한 인물의 대표성에 대한 모독은 자신에 대한 모독으로 여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그간의 역사 속 영웅으로 알려진 인물들에 대한 이면을 파헤치는 일은 사회적 비난에 직면할만한 일이다. 미셸 푸코에 따르면, 담론은 단순한 말이나 글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구조물’일 것이다. 해서 되는 말과 안 되는 말이 권력이 정한 질서의 하나로 편입되거나 배제된다. 그런 의미에서 저항과 투쟁, 그리고 가해자라는 극단만 강조한 역사에서는 그 안에서 적응하며 부대끼고 살아온 대다수 사람들의 삶이 무시된다. 식민지가 아닌 국민으로서 대우받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역사는 수치스러운 역사인가? 아니다. 그것 역시 우리의 일부이다. 나라를 팔아먹은 왕, 망국의 와중에 빚잔치를 벌인 왕비, 열강에 줄을 대며 서로 암투를 벌였던 관료들, 가혹한 수탈과 착취로 짐승 같은 삶을 살았던 민초들 그런 부끄러운 역사를 자학사관 내지 식민사관이라는 해괴한 변명으로 회피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제대로 배워야 함이 마땅하다. 시대의 부조리를 몇몇 매국노와 친일파에 돌리고 우리 스스로 면피하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다. 하지만 화려한 것에 열광하기 쉬운 대중들은 학문도 지식도 그렇게 소비하려는 경향이 있다. 인문적 서사가 권선징악의 형태로 전개될 때 우리의 사고는 그 안에 갇히기 쉽다. 역사는 선악으로 구분할 수 없고, 하나의 과정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맨얼굴의 독립운동사』는 우리 역사가 올바른 길을 걸어왔다는 미증유의 욕망을 산산이 조각 낸다.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된 3.1운동과 관련된 인물들의 면면은 다소 충격적이기조차 하다. 헐버트와 베델의 경우 학술 연구가 꽤 진척이 되어 있지만, 새로운 사료의 발굴보다는 기존의 성과를 재확인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 점에서 이들에 대한 심도 있는 추적은 흥미롭다. 유관순의 사망과 관련한 사료 발굴 및 재구성은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은 신선한 접근이다. 저자는 전편에 이어 이번 신작에서도 어새의 위조 문제를 언급했다. 왕이 발행한 문서에 찍힌 어새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의심해 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사료로 맹신해왔던 문서의 어지(御旨)가 위조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어쩌면 우리 역사책은 새로 써야 할지도 모른다. 수많은 학자들이 놓친 디테일한 부분을 비전공자가 발견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성과는 적지 않다고 보인다. 『맨얼굴의 독립운동사』는 단순히 기존의 역사적 서술을 부정하는 데 있지 않고, 연역적 역사해석의 부조리함을 고발하는 책이기도 하다. 생각이 다름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법으로 처벌하는 사회는 얼마나 위험한가? 피해자 집단의 고통은 신성시되며,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한 일은 도전으로 간주되는 병리적 현상은 우리 사회의 후진성을 드러내는 단면이기도 하다. 저자가 에필로그에 언급했다시피 위안부 관련 해석에 입장차를 달리했다고, 한 지식인을 8년이 넘도록 사회적 학대를 일삼았으면서, 이에 대해 누구 하나 반성이 없다는 사실은 더더욱 이를 뒷받침한다. 역사란 상상력의 산물임을 감안할 때 다양한 가설과 이론(異論)이 허용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우리 사회는 에코 챔버 속에 갇힌 채 빅 브라더의 음모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이 책이 건강한 토론과 지적 선순환을 이끄는 작은 초석이 되길 소망해 본다. 출판사 서평 진명행의 글은 언제나 직설적이다. 돌려 말하는 법이 없다. 그의 글이 온라인에서 꾸준히 인기를 끄는 이유도 독자들의 가려운 부분을 해소해주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가 주입식으로 학습해 온 스테레오 타입의 역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시도는 우리 사회에서 무례하거나 불경스러운 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고정된 프레임과 사회적 편견에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우리는 외세의 지배를 경험했고, 외세에 의해 분단되었으며, 외세가 개입한 전쟁을 치러야 했다. 이러한 역사적 비극과 후유증을 겪는 과정에서 민족주의에 입각한 정치적 프로파간다는 매우 강력하게 작용해 왔다. 정권 차원에서 ‘민족주의 교육’은 일종의 국가적 프로젝트의 하나로 추진되었다, ‘유구한 전통’, ‘우수한 문화’, ‘불굴의 독립정신’, ‘반일주의’를 반복적으로 주입하면서, 무엇이 진실인가보다는 무엇이 가치 있는 역사인가를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전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사실에서 벗어난 과장된 서사와 영웅적 담론들이 학교 현장과 매스미디어를 통해 대중들의 사고를 불가역적인 상태로 오염시켜왔다. 이 책은 국가가 주도하는 획일적 역사 해석에 정면으로 반론한다. 또한 저자는 우리가 당연시 여겼던 수많은 역사적 상식들을 여지없이 깨뜨리며, 새롭게 사유할 수 있도록 롤백 지점을 제시한다. 민족의 성지처럼 다뤄지는 3.1운동과 관련 인물들을 다루면서, 왜곡과 과장의 층위를 하나씩 벗겨낸다. 유관순, 민족대표 33인처럼 교과서 속 영웅들이 어떻게 신화화되었는지를 추적하고 오류를 잡아내는 과정은, 단순한 사실관계를 넘어서 우리 사회가 ‘기억’을 구성해온 방식이 불순한 의도에서 비롯되었음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와 함께, 구한말 우리를 도왔다고 알려진 외국인들의 ‘호의’를 무비판적으로 신뢰해온 종래의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애국자로 칭송받아온 외국인들이 실제로는 조선 왕실과의 관계 속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개인적 사익 추구, 제국주의적 침탈에 부역하는 등 현실주의자들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동안 그들의 선의(善意)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독자들에게는 상당한 충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 내부의 권력 구조, 자금 문제, 인권 유린 등에 대한 서술은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감춰졌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다. 저자는 단순한 고발에 그치지 않고, 그 어두움까지 함께 끌어안는 성찰적 시선을 통해 독립운동의 양면성과 인간적인 얼굴을 동시에 그려낸다. 저자는 전문서 못지않은 다양하고 깊이 있는 사료를 곁들여 탄탄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학술적인 틀에 갇히지 않도록 일상의 언어로 쉽게 풀어내었다. 전문 연구자가 아닌 저자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며, 유연한 사고의 결과물일 것이다. 재치 있는 전개와 풍부한 읽을거리,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구성은 단순한 팩트 전달을 넘어, ‘생각하는 독서’를 유도한다. 물론 이 책이 어떤 역사적 사실을 확정하거나, 논란을 종식시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사실관계를 보다 유연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점이다. 그것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