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라오서와 함께 중국 3대 문호로 꼽히는
현대 문학사의 영원한 아나키스트 바진!
격동하는 중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바진 최후의 역작
작품 소개
나는 소설을 입신을 위한 방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소설을 내 생활의 한 부분으로 여길 뿐이다.
나의 창작 여정은 삶과 일치한다. 내 작품은 직접 독자에게 호소하는 것으로, 널리 읽혀서 광명에 대한 사랑과
암흑에 대한 증오를 일으키기를 바란다. 그리고 사명을 다한 후 시간이 흐르면 잊히길 바란다. - 바진
2005년 10월 17일 바진은 향년 101세로 상하이에서 영면했다. 1904년에 태어나 25세부터 집필을 시작한 바진은 노년에 파킨슨병으로 붓을 들지 못할 때까지 창작과 번역 작업에 몰두했다. 이처럼 투철한 작가적 태도를 지닌 바진의 죽음에 중국문학계와 문화계는 물론 전 세계의 작가들도 슬픔을 금하지 못했다.
봉건 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바진은 일찍이 허례허식으로 똘똘 뭉친 상류층과 억압과 착취 속에 신음하는 노동계급의 극명한 대비를 몸소 체험했으며, 이때의 경험은 바진 평생의 신념을 정립하는 데 토대가 되었다.
바진은 20세기 초 중국 사회에 내재된 후진성과 사회적 불평등의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막스주의와 아나키즘을 꼽았다. 1919년 5·4운동을 계기로 혁명운동에 눈떴으며, 2년간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중국에 돌아와 신문화운동을 주도했다. 1936년 루쉰이 이끄는 혁신적인 문청집단에서 활동한 그의 작품은 뛰어난 문학성을 잃지 않으면서 착취계급을 명징하게 고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애국심도 남달랐던 바진은 숱한 전쟁을 치르는 동안 아나키즘을 포기하지만, 문화혁명기에는 ‘아나키즘에 경도된 작가’로 몰려 심한 고초를 겪었다. 자신의 신념을 거짓으로 가려야 했으며 살기 위해 거짓을 말해야 했다.
문화혁명이 끝난 뒤에 대부분의 학자나 작가는 악몽 같던 과거를 덮어두려 했지만, 바진은 “나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던 지식인”이라고 소리 내어 고백했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양심을 복원하기 위해 부단히 반성하고 부단히 노력하며 한 줄 한 줄 써내려갔다. 문화혁명이라는 괴물은 그에게 불치의 병을 남겼지만, 그의 고결한 정신까지는 앗아가지 못했다.
《차가운 밤》은 태평양 전쟁의 여파로 아시아 전역이 포화 속에 잠긴 1940년대의 중국. 대외적으로는 전쟁, 대내적으로는 구습과 신문화의 대립으로 격동하던 당시 중국사회의 모습을 날카롭게 그려낸 바진의 마지막 장편소설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중국의 모습을 한 지식인 가정에 빗대어 그려낸 이 작품은 전쟁이 초래한 빈곤과 사상의 대립으로 파멸되어가는 가족의 모습을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바진에 회고에 따르면, 당시 그는 국민당 정부가 피난 와 있었던 충칭(重慶)에 머물면서 이 작품을 구상했다. 항일전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당시 많은 문인들은 충칭에 결집하여 항일 대열에 참가하고 있었으나, 문인 및 일반 민중에게는 하루하루가 극심한 고통의 나날이었다. 치솟는 물가, 팽배해진 염전(厭戰)사상, 국민당의 실책과 가혹한 통치 등은 항일전 초기 열정적으로 구국 대열에 투신했던 많은 작가와 지식인들 사이에 패배감과 무력감, 그리고 허무주의적 사조를 뿌리내리게 했다. 《차가운 밤》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풍조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시공사 세계 문학의 숲
고전의 경계를 넘어 내일을 여는 문학, 시공사 세계문학의 숲
최근 들어, 세계문학의 르네상스라 불릴 만큼 다양한 전집들이 선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국내 출판사들의 역량이 점차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필독서 중심의 틀에 박힌 리스트보다 자신의 취향과 취미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문학 리스트를 원하는 독자들이 그만큼 많아졌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시공사 세계문학의 숲’은 올해로 창사 20주년을 맞이하는 시공사가 이러한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새롭게 선보이는 세계문학 총서이다. 그동안 ‘시그마북스’ ‘그리폰북스’ 시리즈 등 문학의 경계를 넓히는 데 앞장서온 시공사는 세계문학에 있어서도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시리즈를 지향한다. 지금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두고두고 참고할 수 있는 세계문학 리스트를 만든다는 취지로 학계의 전문가들과 평론가, 우리말 번역의 역사를 함께해온 베테랑 번역가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다음의 두 가지 원칙에 입각하여 시공사만의 세계문학 총서를 구성하였다.
하나, 새로운 고전, 무엇을 읽을 것인가
‘시공사 세계문학의 숲’은 아직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반드시 소개되어야 할 숨겨진 고전들을 발굴?소개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조지 오웰에서 커트 보네거트에 이르기까지 현대 디스토피아 소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체코의 국민작가 카렐 차페크의 《도롱뇽 전쟁》, ‘안드로이드’라는 개념을 처음 알린 오귀스트 빌리에르 드 릴라당의 《미래의 이브》 등 언어와 장르에 있어서 주변부로 인식되어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걸작들을 적극 발굴 소개한다. 또한 우리에게는 연극 <칠수와 만수>로 더 익숙한 대만 작가 황춘밍의 단편 <두 페인트공>이 수록된 《황춘밍 단편선》 등 동아시아권 작가들의 작품까지 포괄하여 세계문학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황춘밍 단편선》은 작가가 직접 한국어판 수록 타이틀을 선정하여 더욱 그 가치를 높였다.
둘, 불멸의 고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셰익스피어, 괴테, 도스토옙스키, 세르반테스처럼 시대와 지역의 한계를 벗어나 이미 인류의 공동자산이 된 작가들의 경우 독자에게 새로운 판본을 제공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영국의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oyal Shakespeare Company)와 저작권 계약을 맺고 극으로서의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가지는 의미, 공연사, 관련 역사적.사회적 자료 등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새로운 판본을 준비하였으며,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세계 세르반테스학회 회원이자 스페인 황금세기학회 회원인 한국외대 박철 교수의 스페인어 완역본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단순히 대표작을 번역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까지 포괄, 독자의 선택의 폭을 넓히고자 노력하였다.
최적화된 번역과 감각적인 디자인
‘시공사 세계문학의 숲’은 원전 번역을 기본 원칙으로 삼아 각각의 타이틀에 가장 적합한 역자를 선정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우리가 세계문학이라고 분류하는 작품들 중에는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 의미를 온전히 파악하기 힘든 작품도 있고, 작가의 문장이 가지는 섬세한 결을 느낄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제 가치를 알게 되는 작품도 있다. 따라서 각 작품이 가지는 특성에 따라 역자의 선택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영미문학사상 보기 드문 산문의 달인 토머스 드 퀸시의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번역가 김석희 씨가 번역을 맡아 그 글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판본을 제공하며,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 《이방인.시시포스의 신화》의 번역은 불문학자이자 소설가인 최수철 씨가 맡았다. 또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의 번역을 맡은 안인희 씨는 ‘베를린’이라는 도시 자체를 떠나서는 그 의미를 이해하기 힘든 이 소설의 번역을 위해 직접 베를린 답사를 감행하기도 했다.
책의 디자인과 판형, 종이 선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원칙이 적용되었다. 최근 세계문학을 다시 읽는 독자들에게 고전은 더 이상 서가의 장식품이 아니다. 따라서 내지 디자인은 최대한 읽기 편하고 휴대가 간편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표지 디자인은 스타일 자체를 단순화하여 시리즈로서의 통일성을 갖추되 작품에 대한 시공사 편집부의 해석이 드러날 수 있는 감각적인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여 소장 가치를 높였다. 일례로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표지에 쓰인 그림들은 사회의 부정과 속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