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Description

“끊임없이 상상하고 상상해서, 세계를 만드는 거지. 두려운 것이 없는 완전한 세계를. 그렇게 우주를 만드는 거야, 이곳에서. 그럼 이곳이 진짜가 되겠지.” 끝내 나아가게 하는 내 안의 용기에 대한 이야기 한국문학의 미래, 『천 개의 파랑』 『이끼숲』 천선란 신작 소설 2019년 『천 개의 파랑』으로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수상하며 혜성같이 등장해 한국 SF의 눈부신 미래를 만들고 있는 작가 천선란. 그의 세 번째 소설집을 출간한다. 천선란은 그간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나인』 등의 장편소설을 비롯해 소설집 『어떤 물질의 사랑』 『노랜드』, 연작소설 『이끼숲』과 중편소설 『랑과 나의 사막』 등을 펴내며 이 세계와 시대에 대한 고민을 가장 활발히 독자와 나누어온 작가이다. 독자가 뽑은 ‘2022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로 선정된 연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올초 펭귄 랜덤하우스와의 억대 선인세 계약(『천 개의 파랑』)이라는 놀랍고 반가운 소식을 전하기도 한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한국문학의 위상과 해외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에도 역시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작가가 되리라 기대된다. 『모우어』는 『노랜드』 이후 2년 만에 묶는 소설집으로 미발표작 두 편을 포함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쓴 단편 여덟 편이 수록되어 있다. 외계 존재 진압에 투입된 어린아이들부터 비범한 능력이 있는 십대 청소년, 장의사 안드로이드,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살아가는 인간과 비인간동물까지 다양한 존재가 조명되는 이번 소설집에는, 사라진 존재를 구하고자 분투하는 이들의 쓸쓸하면서도 아련한, 그러면서도 뜨거운 내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극한의 상황에 직면한 천선란의 인물들은 슬픔과 상실감을 안고도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는데, 그 용기는 어떻게 생기고 또 발휘되는지, 이번 소설집 편편에 담긴 간절함이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리라 믿는다. “거부할 수가 없어서. 몸은, 거부할 수가 없으니까. 마음이 시키면.” 소설집의 앞자리에 놓인 「얼지 않는 호수」는 세계가 꽁꽁 얼어버린 이후를 그린다. 삶에 아무런 기대도 없던 ‘그녀’의 적막한 일상에, 소중했던 친구의 말라붙은 심장을 품에 안은 아이 ‘야자’가 나타난다. ‘야자’는 친구의 심장을 그 영혼에게라도 쥐여주고자 ‘얼지 않는 호수’를 향해 먼길을 간다.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나요?”라는 천진한 듯 애틋한 듯한 ‘야자’의 질문은 ‘그녀’로 하여금 잊고 있던 기억을 하나둘 꺼내보게 하는데… 모든 것이 얼어붙은 지구 위에 끝끝내 ‘얼지 않는’ 호수가 있을까? 그런 호수가 있다는 믿음은 무엇을 가능하게 할까? 뒤이은 단편이자 표제작인 「모우어」는 언어가 사라진 세계를 그린다. 인류의 탐욕과 불신과 혐오가 모두 언어가 만든 질서/무질서 때문이라 여긴 어느 먼 미래의 인류는 언어를 포기하도록 진화했다. “인간의 언어가, 언어를 가진 인간이,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영원히 이 생태계의 이방인이” 되었다. 그후 인간은 ‘의음意音’으로, 요컨대 머릿속에서 떠올린 말로 소통하게 되었고, 입말로는 어떠한 규칙도 없는 음절들을 소리낼 뿐이다. 언어로 시간 역시 규정짓지 않게 된 인간들은 노화하지 않는데, 그런 세계를 살던 ‘초우’는 어느 날 버려진 아기를 구조해 ‘모우’라는 이름을 붙였다. ‘모우’는 ‘의음’보다 ‘말소리’에 반응했고 그것은 이 세계와 맞지 않는 일일 터, ‘소리’와 ‘의미’가 합쳐진 ‘언어’라는 게 무엇인지 궁금했던 모우는 결국 이단으로 몰리고 만다. 엄마, 나는 죽은 게 아니라 흐르기 시작한 거야. 내 몸의 시간이 흐르고 있어. 엄마, 나는 이 시간이 느껴져. 아주 얇아. 거미줄보다 더. 내게는 주름이 생길 거야. 시간이 스치며 생기는 자국이야. (…) 나 언어의 소리를 들었어. 언어가 만든 시간이 느껴져. _「모우어」에서 언어를 버리고 감각만으로 앞선 인류의 그 모든 죄를 느끼며 살아가게 된 신인류와, 그 사이에 등장한 ‘모우’. 언어는 정말 인류를 자멸로 이끈 도구이자 악습이었을까? ‘모우’가 새로이 들은 ‘언어의 소리’는 무엇일까. 애초에 ‘초우’는 ‘모우’라는 이름에 아무 의미도 담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한편 이 소설집에서는 가까웠던 사람을 잃은 인물들이 유독 눈에 띈다. 「얼지 않는 호수」는 물론이고, 마인드 업로딩 시스템을 주요하게 다룬 「쿠쉬룩」에서도 신경 네트워크에서 증발한 언니를 둔 ‘엔릴’이 화자이다. “각자가 만든 세계”, 요컨대 “불확실성이 없”는 세계로 기꺼이 증발한 사람들은 “진짜가 아니라고 가짜가 되는 건 아니”라는 소설 속 문장을 의미심장하게 만든다. ‘엔릴’이 언니를 상상하고 또 상상하는 과정 끝에 ‘쿠쉬룩(상자)’의 존재를 발견하고, 거기 새겨진 “우리만의 규칙”은 가상의 세계에서 언니를 만나게 한다. 현실의 삶에서 고고학자였던 ‘엔릴’의 언니는, 과거를 파헤치는 사람이자, 유적처럼 메마른 엄마를 돌보는 사람이자, 어린 ‘엔릴’을 보호하는 사람이었다. 겹겹으로 부과된 의무 속에서 과거에 머무른 채 현실을 살 수밖에 없던 언니를 ‘엔릴’은 “끊임없이 상상하고 상상”한다. ‘엔릴’에게는 그것이 자신이 선택한 사랑의 방식이었으리라. 엉망이던 “시침과 분침이 모두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두려운 것이 없는 완전한 세계”. 그곳에서 드디어 언니의 뒷모습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납득하게 된다. “진짜가 아니라고 가짜인 건 아니야.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지가 중요한 거지”라는 말을. 「입술과 이름의 낙차」 속 두 여성, ‘나’와 ‘주미’ 역시 오래전 가까운 이를 잃었다. ‘나’는 ‘의식 전이’까지 당해 원치 않는 범죄에 행위자로서 가담한 채 살고 있다. 적의 공격을 받고 쓰러져 있던 ‘나’를 의학도인 ‘주미’가 구하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저 가해자가, 저 피해자가 어쩌면 언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꾸 몰입하고 고민해요. 어느 곳에 언니를 세워두느냐에 따라서 내 선택도 달라져요”라고 말하는 ‘주미’는 평생을 따라다닌, 기억 속 비참한 언니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나’는 단 하나 남은 소중한 기억마저 지울 의식 전이 칩 제거술을 끝내 받게 될까.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어야, 혹은 놓아주어야 하는 걸까. 한편 「너머의 아이들」과 「뼈의 기록」에는 지구 밖으로 보내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너머의 아이들」의 경우 외계 존재를 진압하기 위해 몸집이 작은 아이들이 필요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희생이 불가피하며, 전쟁에서 이기고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아이들을 외계 존재의 우주선에 태운다. 그 아이들은 현실에선 죽음을 맞이했지만 ‘너머’에서는 깨어나고, “어린이일 때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과해 프로그램에서 깨어났으므로. 어른이 될 기회를 박탈당한 채 현실로 돌아왔으므로” 시간이 흘러도 어린이인 채이다. 어린이뿐인 ‘너머’의 세계. “단 한 명의 어른이 오면 우린 그 어른을 신처럼 모셔야 할 거야. 두 명의 어른이 오면 우린 두 사람의 비위를 맞추느라 눈치를 볼 거야. 세 명의 어른이 오면 우린 노동을 해야 할 거야. 더 많은 어른이 오면 불행이 반복될 거야.” _「너머의 아이들」에서 「뼈의 기록」은 장의사 안드로이드 ‘로비스’와 병원의 미화원 ‘모미’의 특별한 우정이 인상적이다. 죽은 몸을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을 헤아리는 안드로이드, 라는 상상력은 그간 천선란 작품 속 사려 깊은 존재들과 맞닿아 있다.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이, 몸에 새길 정도로 좋아했던 것들이 가장 오래도록 몸에 남아 인간의 육체를 삶에 붙들어놓고 있는 것일까. 로비스는 노인의 몸에 남은 선연한 문신의 형태를 보며 생각했다. 로비스의 회로는 그런 의문을 만들게끔 만들어졌다. 그래서 로비스는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진다. 모든 의문의 종착지는 헤아림이다. 그리고 그것은 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