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거듭 새롭게 읽히는 퀴어 문학의 기념비적 작품 두 남자와 한 여자를 둘러싼 사랑과 실패, 진실과 외면의 이야기 ★ 1957년 전미 도서상 최종 후보 ★ BBC 선정 <세계를 빚어낸 소설 100>, <가장 크게 영감을 불어넣은 영문 소설 100> ★ 피터 박스올 선정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1001> 미국 문학사의 주요 작가이자 글과 행동으로 흑인과 성 소수자 들에게 뚜렷한 영향을 남긴 제임스 볼드윈의 대표작 『조반니의 방』이 번역가 김지현 씨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290번이다. 1950년대 파리를 무대로 미국인 데이비드와 이탈리아인 조반니의 비극적인 관계를 그린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거듭 새롭게 읽히며 현대의 고전으로 손꼽히고 있다. 파리에 체류 중인 미국인 데이비드는 어느 날 바에 갔다가 바텐더로 일하는 이탈리아인 조반니에게 이끌린다. 자신의 성적 지향을 부인해 온 데이비드에게는 이성 연인 헬라가 있지만 두 사람은 순식간에 서로에게 빠져든다. 헬라는 멀리 여행을 떠나 있고 마침 숙소에서도 나오게 된 데이비드는 조반니의 방으로 옮겨 가고 <삶이 바닷속에서 벌어지는> 것 같은 그 방에서 되돌릴 수 없을 전환점을 맞는다. 좁고 초라한 조반니의 방에서 두 사람은 짧은 기쁨과 경이의 시간을 지나 이면의 괴로움과 두려움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성적으로도, 계급적으로도 끝내 <정상적인 삶>으로 복귀하기를 열망하던 데이비드는 조반니를 버리고 헬라에게로 돌아가고 두 사람은 각자의 파국에 이르게 된다. 자신마저도 집어 삼키는 서글픈 수치심 사랑을 압도하는 경멸과 공포 (131면) 데이비드는 동성에게 끌리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끊임없이 부정한다. 파리의 게이들과 어울릴 때도 자신은 <이쪽>이 아니라고, <정상>적인 남자라고 항변하며 그들의 의미심장한 눈빛을 외면한다. 하지만 조반니를 만나면서, 그는 그들의 일부가 아닌 척 관망하던 입장에서 관망당하는 처지로 변화한다. 조반니의 방으로, 이들의 세계로 휩쓸려 들어간다는 두려움은 자신에 대한 경멸과 수치심을 동반한다. 데이비드는 조반니와 길에서 아이처럼 장난을 치다가도 문득 타인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수치스러워한다. 실제로 쳐다보는 사람이 있는지, 그 사람이 어떤 의미로 쳐다보는지는 상관없다. 그 시선은 자기 안에 이미 내재해 있고 그는 끝없이 그 눈길로 자신을 바라본다. 10대 시절, 친구인 조이와 충동적으로 섹스를 하고 난 아침에도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은 수치심이다. <어떤 피조물보다도 아름다운> 조이의 몸, 하지만 데이비드는 그 몸 때문에 수치심과 공포로 눈물을 흘릴 것 같다고 느낀다. 그 이후로 데이비드는 끊임없이 도망친다. 조이로부터, 아버지로부터, 미국으로부터, 그리고 다시 조반니로부터, 파리로부터, 헬라로부터. 데이비드는 그러한 도피와 부정에서 아무 보상도 얻지 못한다. 그가 열망하는 안전한 세계, 남들처럼 살 수 있는 세계는 어디에도 없고, 그는 계속 방랑할 뿐이다. 이 우주에 수치심과 공포를 느낄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그는 우주도 자신도 보지 않기로 결심하고, 끊임없이 도망치듯 돌아다니지만 언제나 갇혀 있고 언제든 추락할 수 있다. 그가 외면하는 것들이 <마음 밑바닥에서 썩어 가는 시체처럼 내내 고요히, 끔찍스럽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될 수 없음을, 내 것이 아닌 욕망을 갈망할 수는 없음을 그는 이미 안다. 아무도, 아무것도 실재하지 않는 비현실 속에서 (136면) 데이비드는 그렇게 타인과 자신을 부정함으로써 온전한 현실을 살아가지 못한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는 끊임없이 감추고, 경멸하고, 저항하기에 늘 현실에서 약간 벗어난, 진실이 부재한 상태에 머문다. 그런 데이비드에게는 무엇도 실재하지 않는다. 아버지도, 헬라도 그에게는 실재하지 않는다고, 다시는 무엇도 진짜일 수 없으리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반니. 옆에 누워 있으면서도 그 손을 만지는 꿈을 꾸게 만드는 조반니는 그에게 현실이 될 수 없다,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조반니를 떠나며 깨닫는다. 조반니의 몸으로부터 도망치더라도, 아니, 도망침으로써, 그 몸이 <마음속에, 꿈속에 낙인처럼 깊이> 새겨지리라는 것을. 이제 조반니는 없고, 조반니가 있던 자리에는 영영 아무것도 없을 것임을 깨닫는다. 육체도 사랑도 영원히 거듭날 가능성도 사라졌다. 뒤늦게 그는 모두가 떠난 텅 빈 방에서 홀로 거울을 응시하며 구원에 대해 생각한다. 데이비드는 타인의 인생을 파국으로 몰아넣지만 그 자신 또한 추락한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조반니만의 비극이 아니라 데이비드의 비극이자 헬라의 비극이기도 하다. 자신을 부정하고 타인을 경멸하며 사람들이 진짜 삶이라고 하는 것에 진입하려 애써야 하는 데이비드의 비극 역시 조반니가 맞은 파국보다 나을 것이 없다. 사회가 공인하는 형식 속에서 사랑과 안정을 이뤄 내고자 한 헬라 역시 뼈아픈 배신을 겪어야 한다.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세계, 자신의 현실이 아닌 남들이 정해 둔 현실에 자신을 끼워 맞춰야 하는 세계는 이렇게 모두를 비극으로 몰아넣는다.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하는 진실은 사라지고 연극과 신기루와 어둠만이 남는다. 사랑의 악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조반니는 자신을 떠나려는 데이비드에게 자신이 사랑의 악취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때문에 그의 몸에서도 악취가 날까 봐 두려워서 떠나는 거라고 그를 비난한다. 어떤 사랑이 악취를 풍기는 건, 사랑하는 몸이 더러워지는 건 그 사랑을 하는 사람이 그렇다고 여길 때뿐이다. 내 몸에 묻을 사랑의 악취를 두려워하지 않아야만, 사회가 마련해 둔 <안전한 곳>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만, 온전한 현실을 살아갈 수 있다. 최소한 개인으로서는 그렇게 내 악취 나는 사랑과 이 더러운 몸을 구원하는 수밖에 없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 두려움 없이 사랑하고 욕망하는 것만이 경계의 바깥으로 내모는 이 세계에서의 끝없는 추락을 막으리라고 소설은 말한다. 『조반니의 방』은 발표 당시에 뜨거운 논란과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 냈다. 퀴어 혐오자들뿐 아니라, 인종 문제가 아닌 성 소수자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이 작품을 많은 이들이 <배신>이라고 여겼다. 이 작품을 통해 볼드윈은 어떤 작가여야 한다는 사람들의 기대를 배반하고, 자기를 가두는 어떤 기준에도 불복하리라는 의지를 보여 주었다. 자신의 작품 세계를 더욱 과감하게 확장한 이 작품을 통해 볼드윈은 성 소수자의 내면을 가감 없이 그려 내고 당시 퀴어 커뮤니티의 일면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성 소수자의 현실과 고민을 다룬 책이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던 때에 이 작품은 복잡한 문제를 예리하면서도 섬세하게 다뤄 낸다. 20세기 중반의 주제들을 여실하게 담아내면서도 시대를 초월하는 문제의식과 문학적 성취에 다다름으로써 『조반니의 방』은 빛이 바래지 않는 퀴어 문학의 고전으로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