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적인 풍경과 평온한 인물이 조응하는 기막힌 순간.
선형적인 줄거리로 압착하기 아까운 분위기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2018 코믹바르셀로나에서 최우수신인상 수상작
2018 ACD코믹크리틱 브레이크스루 작가상 수상작
회화처럼 만화 읽기
소재나 기법에 대한 언급 빼고는 일언반구 붙어 있지 않은 흰 벽의 회화 한 장을 두고, 오래 이야기 나누는 일. 대답 없는 화가에게 따져 묻는 대신, 다른 해석을 내놓은 동행자와 몇 분에 한 번씩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양 흥분해서 떠드는 일. 흰 벽에서 멀찍이 떨어진 벤치에 앉아 허락된 촬영 대신 꿈벅꿈벅 눈꺼풀만 연거푸 여닫는 일.
...친절하지 않은 회화가 주는, 가르마 같은 길이 나 있지 않은 정원 산책은 참 설렙니다.
주인공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 어떤 머리를 하고, 어떤 감탄사를 내뱉었는지 단 하나 기억을 못 하는데도 우리는 곧잘 만화책 몇 권을 그 자리에서 끝내곤 하죠. 그렇게 게걸스러운 독서를 마치고, 한 질의 가볍고도 볼륨감 있는 빛바랜 종이묶음이 방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을 바라보자면, 해치웠다는 실감에, 여운까지 잡아먹히고, 한동안 멍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 이런 생각 들지 않나요?
"한 장의 그림을 찬찬히 뜯어보듯이, 받아들여 볼걸.
이 만화를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기 전에 말이야."
회화를 전공한 세비야 출신의 동시대 만화가 마리아 메뎀(Maria Medem)은, 독자가 대단한 결심을 하지 않아도, 진공청소기처럼 삼켜지지 않게 만화를 쓰고 그립니다. 시간 순삭 대신 시간 보전을 돕는 작품이랄까요. 쉽지도, 단순하지도, 귀엽지도, 사랑스럽지도 않지만, 긴장과 이완을 부드럽게 넘나들고, 흐릿한 기억을 시력검사라도 할 때처럼 한순간 선명하게 만나게 해줍니다. 그것도 작가가 창조한 세계 속 기억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 지나쳐온 간밤의 꿈들을요.
"이 이야기는 많은 방식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가진 모든 경우의 수를 긍정하고 싶어요. 어떻든 저로서는, 통제를 벗어나는 것, 대화에 참여하는 이들의 서로에 대한 한정된 이해를 그리고자 했습니다. (...) 쓰고 그리는 동안, 저는 제가 전달하고 싶은 방향을 상실하는 느낌, 완전한 이해에 도달하지 못하는 데 대한 은근하고도 참을 만한 좌절감을 마주했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꿈결 같은 이야기이면서도 스릴러 같은 작은 긴장과 지속적인 리듬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 마리아 메뎀
온 세상을 비추는 정오의 빛 아래 단 두 사람
'세닛CENIT'은 꼭대기 혹은 천장을 뜻하는 스페인어입니다. 그런 제목이 붙은 이 작품에는, 해가 가장 높이 떠 있는 한낮마다, 지난밤의 모호한 꿈의 이야기를 추적하기 위해 두 사람이 모입니다. 대화를 한다고 해서, 정확한 합일의 순간을 만날지는 미지수지만요. 그러나 해가 중천에 뜬 낮마다 불충분한 표현을 나누는 기다란 식탁에 마주 앉은 두 친구. 때로는 이토록 가까운 어긋남도 존재하는 듯싶네요...
분절되지 않는 시간을 분절해내는 우리의 의식적인 노력을, 만화가는 칸 속의 칸으로 그려냅니다. 만화 속 날개 달린 새를 보고, 태양을 보고, 식물을 보고, 그건 주인공의 시선이었다가 독자의 시선이 되고, 만화적 표현이었다가 만화 속 배경이 됩니다. 띄엄띄엄 놀듯이 큰 칸 속을 떠다니는 작은 칸들, 그중 하나에 시선이 머물러도 좋을 겁니다.
"어젯밤은 어땠어?"
"휴, 말도 마. 어땠길 바라는데? 해 질 무렵에는 완전히 피로에 절어서 그대로 잠들었지, 뭐... 요새 항상 이렇다니까. 겨우 읹었는데 니가 상기시켜주네. 고맙다?"
"예민하게 굴지 마."
"예민하다고? 이 정도를 예민하다고 하면, 글쎄 잘 모르겠다..."
"아이고, 알았어. 알았어. 우리 딴 얘기 하자."
"아니, 아니. 마저 얘기하자..."
낮의 언어로 어렴풋이 짐작해보는 꿈의 비언어
꿈을 잊은 당신에게는 꿈의 기록, 꿈을 잊지 못하는 당신에게는 꿈의 망각으로 읽힐 이 만화에는 도예가 두 명이 등장합니다. 두 친구는 그릇을 만들고, 밤을 새우며 스스로가 내린 창작의 과제에 파묻히곤 합니다. 그러다 와장창 부서져 있는 그릇을 발견하는 식이지요. 그리고 끊임없이 꿈을 꿉니다. 철저하게 혼자였던 밤을 지나, 해가 꼭대기에 올라 있는 익숙한 점심식사 시간이 오면, 둘은 지난 꿈을 이야기하며 조각을 맞추고 끼워봅니다. 그 파편이 디스크조각모음처럼 하나의 작업물로 모아지지는 않으려는 모양이에요. 단단한 도자기는 물이 되어 바닥에 엎질러지고, 두 친구의 얼굴은 묘하게 닮아갑니다.
"꿈에서 어떤 장소를 다시 본 적 있어? 나 어릴 때 이후로 간 적 없는 어떤 장소에 있었어. 그리고 지금은 그곳을 완벽히 알아. 어제 내가 그 집을 제대로 기억해하기는 불가능했을 거야. 기억을 되찾는 느낌이었어."
"난 죽는 꿈 꾸면 무슨 생각이 드는 줄 알아? 지난 죽음들을 다시 경험하고 있구나 싶어."
"딱 너다운 생각이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들어봐. 여기 확실한 예시가 있으니까. 쫓기는 꿈을 꿨어. 그리고 어느 벽 앞에서 멈춰 섰지. 누가 코앞까지 다가와서 나를 향해서 뾰족한 창을 던져. 그게 팔에 박히면, 그 고통이 너무 심해서 잠에서 깨는 거야. 그리고 깨어난 지 두 시간은 지나야 통증이 사라지더라고! 어떻게 생각해?"
만들고 나서 부수기
지난밤에도 꽤 활발히 모험한 탓인지, 두 사람은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피로한 컨디션으로 일어났습니다. 어쩌면 꿈이 아니라 진짜로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인지도요. 그릇을 만든다는 것, 깨지기 쉬운 것을 단단하게 만든다는 것, 단단하지만 깨질 가능성 있는 것을 고심한다는 것... 뜸하게는 몇 달에 한 번, 잦게는 매일같이 부서질 그릇을 만드는 도예가. 창작의 시간은 2분처럼, 이틀처럼, 고여 있다 흘러갑니다.
"공방에서 일을 하고 있어. 마치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2분 정도 지났을까. 어쩜 이틀일지도. 모르겠어. 그러다 문득 깨닫게 돼. 모든 게 다 물로 변하고 있다는 걸. 난 작업을 계속해. 점점, 점점, 빠르게 내가 작업을 하면 할수록, 수위도 그만큼 높아져."
"잠에서 깼을 때 물건의 위치가 달라져 보인다거나 손상되어 있다거나, 눈을 떠보니 밤에 잠들었던 곳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 때 엄습하는 공포감이란, 아주 생경한 남의 일만은 아니지요. 그러고 보면 두 인물의 두려움과 불안을 이해하는 것이 꼭 어려운 일만도 아닙니다. 스페인어를 모르더라도, 작품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세닛'이 알아지셨을지도 모릅니다. 도입부의 시점, 태양의 위치, 두 주인공이 나누는 대화의 흐름을 관찰하며 그 의미를 감지하셨기를 바랍니다." - 옮긴이 최연정
편집자의 말
히구치 이치요 선집을 편집할 때 함께했던 최정은 디자이너가, 아시아인은 아니지만 일본의 오래된 소설과도 잘 어울릴 만한 일러스트레이터를 찾았다고, 그런데 내가 이미 팔로우하고 있더라고 일러주신 일이 있다. 잊고 있던 나의 (SNS) 친구 마리아 메뎀. 그녀는 만화 같은 서사성 짙은 리소 출판물을 꾸준히 선보이는 젊은 스페인 작가였고… 표지를 쓰고 싶다는 우리의 제안을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메일로 간헐적인 대화를 나누던 어느 날, 그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그러나 완전히 수용할 자신도 안 생기는 장편만화를 고용량 PDF로 보내왔다. 바로 이 작품이었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마다 식사를 함께하는 두 친구. 두 친구는 모두 불면과 몽유의 밤에 시달린 지 오래다. 『세닛』은 밤과 낮, 의식과 무의식, 불면과 잠, 창조와 파괴… 처럼 명백한 대립어인 것, 그러나 대립의 관계로서 늘 마주하는 수많은 "두 친구"를 그리운 마음으로 상상해보게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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