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오랫동안 곁에서 그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다” 일상적 풍경이 새겨진 투명하고 단정한 문장들 말의 무력함을 이해하는 작가 김유진의 두번째 소설집 2004년 문학동네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후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아름답고 단단한 문장으로 안정된 소설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 김유진이 두번째 소설집 『여름』을 출간했다. 호흡을 고르듯 신중히 언어를 조탁해내는 군더더기 없는 문장들을 마주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김유진이 “목소리의 무력함, 말하기의 무력함, 소설이란 장르 자체의 무력함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고결한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여름』에는 2011년 제2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단편 「여름」과 2010년 6월 <웹진 문지> ‘이달의 소설’에 선정된 「희미한 빛」을 포함해 총 여덟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첫 소설집 『늑대의 문장』과 장편소설 『숨은 밤』에서 두드러졌던 속도감과 짙은 색감은, 『여름』에 이르러 차분한 빛깔로 정돈된다. “누구도 본 적 없는 압도적인 풍경을 그리고 싶었다”던 그녀는 이제 “단번에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옅은 것, 미묘한 것, 그러나 이곳에 있는” 가능한 한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을 응시한다. 행간에 좀더 깊은 의미를 품게 된 김유진의 문장을 읽을 때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번 소설집에서 그려내는 것은 명확하고 또렷한 이미지‘들’이 아니라 언뜻 모호해 보이는 풍경 한 장면이다. 한없이 조용하고 느리고 투명한 채로 어쩐지 슬프다. 김유진은 단호한 미문으로 모호한 정서를 실어 나른다. 그녀의 무심한 인물들이 후박나무의 빽빽한 잎 사이로 쪼개지는 햇빛에 대해 말할 때, 마른 땅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발견할 때, 한여름의 살구나무와 농익은 무화과를 기억해낼 때, 그들의 마음속에는 각양각색의 감정들이 엉키지만 김유진의 단단한 문장 속에서 감정의 채도는 풍경의 명도로 뒤바뀐다. _조연정(문학평론가) 문자로 환원될 수 없는 미묘한 인간의 마음을, 풍경을 통해 바라보게 하는 복화술사 풍경을 묘사할 때 김유진은 그저 거기에 있는 것을 매만진다. 유난히 뜨겁거나 차가운 감정 같은 건 섞여 있지 않아서, 화자의 상황을 짐작할 수 없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도중 곳곳에 삽입되는 장면 묘사는 때로 삽화 같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페이지를 다 넘기고 난 뒤에 남는 잔상들은 또렷한 한 풍경으로 소설 전반과 묘하게 화합한다. 사방에서 쏟아진 미적지근한 햇빛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가 이내 스며들었다. 수명을 다한 빛은 무거웠고, 눅눅했다. 빛은, 찌들어 보였고, 먼지로 가득 찬 것만 같았다. 목구멍이 간질거렸다. 열차는 다리를 건넜다. 모호한 색의 강물과 멀리, 오물처럼 물 위에 둥둥 떠밀려오는 노을, 구름 너머 V자 모양으로 일렁이는 철새 무리가 있었다. 「희미한 빛」, p. 42 얼마 전 남자 친구와 헤어진 데다 오래전 잠시 만났던 남자 친구의 집에 얹혀사는 실업자인 「희미한 빛」의 주인공에게, 빛은 미적지근하고 무겁고 눅눅하며 먼지로 찌든 오물 같다. 실업 급여를 받으러 고용 센터에 가거나 동거인의 작업을 돕는 등 무미건조한 일상을 지속하는 주인공은 모든 것을 하찮게 느낀다. 풍경과 풍경 사이, “지리멸렬했다”는 문장이야말로 주인공의 심리를 단적으로 나타낸다. “고백보다는 관찰, 진술보다는 묘사의 방식을 주로 사용하는 김유진 소설의 특징”은 김유진의 인물들이 ‘말’에 민감하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말’에 민감한 사람은 위태로운 말에 의존할 수 없기에 말수가 적어질 수밖에 없”(조연정)으므로, 스스로 절제하여 억눌린 감정이 “이미지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환기”(강지희)되는 것이다. 대개 일인칭 화자나 화자에게 호의를 품고 있는 관찰자 입장에서 서술되는 등장인물들은 매우 평온한 듯 보인다. 하지만 한 발 다가가 들여다보면 모두 관계를 지속하는 데 문제를 품고 있다. 어머니와 아들이든 남자와 여자든, 이미 헤어졌거나 결별 위기에 처해 있는 그들은 결국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 상태다. 이해할 수 없다면 표현할 필요가 있을까. 『여름』 속 인물들은 남녀노소에 관계 없이 무성(無性)적이고 식물적이다. 어쩌면 그들의 초연함은 스스로를 풍경화하려는 인물들의 의지인 듯싶다. 언어, 그것은 관계의 시작이자 끝 「A」와 「눈은 춤춘다」의 아이들에게는 자신만의 언어가 있다. 기존의 언어를 거부하던 아이들은 관계를 시작하며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언어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서로를 견딜 수 없는, 헤어짐이 임박한 커플(「여름」 「물보라」)은 서로의 말에 민감해지고 갑작스레 껄끄러워진다. 관계를 열었다가 닫는 것은 언어가 생성되었다 소멸하는 과정과 닮아 있다.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배웠던 말은 결국 서로 이해할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의미를 잃고 빛이 바랜다. 마음이 마음에 닿지 못한 채 ‘우리’를 위한 말이 기어이 무력해지면 입을 다물고 가만히 마음과 세상의 풍경을 응시할 시간이 필요하다. 언어의 생성과 소멸을 겪은 후에 다시 쓰여진 『여름』 속 김유진의 문장들은 그런 의도적 실어(失語)를 앓았기에 새로 배운 말처럼 정갈하다. 김유진이 말하고 싶은 것은 삶 그 자체다.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법,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 체념하는 법, 그러나 놓거나 잊지 못한다면 감정을 담지 않고 바깥에다 대고 말하는 법. 삶은 이 방법들을 배우는 시간이다. 긍정도 부정도 없이, “사는 것이란 쉽게 경계를 나눌 수도 없고 때때로 지루하며, 대부분 소박한 채로 흘러간다는, 더 이상은 외면할 수도 미룰 수도 없는 사실을, 그것을 노래할 수 있다면.” 김유진은 『여름』에서 그것으로 족하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