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이 전하는
시간과 풍경과 사람과 삶의 스펙트럼
터키 이스탄불 거리의 신비롭고 매캐한 향기와
작가 내면의 언어가 담긴 에세이 문학의 진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이 다양한 색채와 다채로운 키워드로 풀어내는 우리 인생의 이야기 『다른 색들』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딸과 가족이 함께한 소소하고 아름다운 일상, 어린 시절을 장식한 낡고 소중한 추억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작가의 삶을 지배하는 문학과 집필 같은 지극히 내밀한 이야기에서부터 터키 국내 인권의 현실, 정부 비판으로 인해 겪은 소송, 대지진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사회적 문제점, 유럽 내 터키의 현주소 등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향한 날카로운 시선, 나아가 파리 리뷰 인터뷰와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 등 그의 작가 인생을 빛낸 순간들까지…….
우리 시대의 거장이 진솔한 어조로 토로하는 문학과 세태와 정치와 사회, 그리고 사랑과 우정과 추억과 인생 이야기가 눈앞에 펼쳐진다. 오르한 파묵의 삶과 문학을 집대성한 이 장중한 에세이는 책을 펼친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찾는 바로 그 이야기를 보여 줄 것이다.
당신이 누구라도 상관없다. 나보코프의 나비 날개처럼 섬세한 문체를 사랑하는 문학도, 죽은 아버지를 추억하는 아들의 담담한 회고 속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는 자녀, 이스탄불 거리의 어지러운 향신료 냄새를 동경하는 여행자, 유럽이라는 단위에 대하여 유럽인의 생각을 읽고자 하는 독자, 혹은 오르한 파묵의 대표작 『내 이름은 빨강』을 만들어 낸 초고에 관심이 있는 작가의 팬, 설령 그 누구라 해도. 이 책은 그 모든 ‘다른 색들’을 한 권에 가득 담고 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당신의 색을 찾아내 줄 것이다.
■ 작가, 독서가, 터키인, 세계인, 아버지, 아들
한 사람의 삶을 물들이는 이토록 다채로운 색들
한 사람을 규정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 성별, 인종, 나이, 종교, 가족구성을 전부 고려한 뒤에도 여전히 직업, 정치 성향, 취향의 문제가 남는다. 누군가를 잘 안다는 것은 결국 계속해서 그 사람이 속한 시간과 공간에 대하여 스펙트럼을 넓혀 나가는 일일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복잡하고도 명료하고, 순수하면서도 매혹적인 글쓰기로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은 작가 오르한 파묵에 대하여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라는 타이틀 하나만을 두고 볼 경우, 우리는 그의 작품을 절반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다른 색들』이라는 작가 본인의 치밀한 자기규정이 그를 사랑하는 독자들 손에 쥐여졌다.
이 책에서 오르한 파묵은 사랑스러운 딸 뤼야와 해변을 산책하는 아버지이자 하루 동안 제대로 된 글을 읽거나 쓰지 못하면 우울감에 사로잡혀 버리는 섬약한 작가, 언제나 아들의 그림을 좋아해 주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을 추억하는 아들이자 국제 팬클럽 대회에서 아서 밀러를 추모하는 세계적 명사, 보르헤스와 칼비노의 미로 같은 글 속에서 길을 찾아 헤매는 독자이자 터키 정부의 부패상을 낱낱이 밝히다가 소송에 휘말린 투사, 옛 이스탄불의 거미줄 같은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금지된 군것질을 즐기던 어린 소년이자 광막한 뉴욕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경외와 상실감을 동시에 맛보는 전도유망한 청년이다.
이번 주 금요일 이스탄불에서, 나의 모든 삶을 보냈던 쉬실리에서, 외할머니가 40년 동안 혼자 살았던 3층 집 맞은편에 있는 법원에서 판사 앞에 나간다. 나의 죄명은 “터키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모독한 죄.” 검사는 내게 징역 3년을 구형할 것이다.
- 「나의 소송」 중에서
우리는 한동안 죽을힘을 다해 공을 찼다. 내가 페네르바흐체 팀 선수 레프테르인 양 생각했고, 그처럼 경기했다. 벽으로 패스하면서 예방 주사를 맞은 형의 팔에 몇 번 부딪쳤다. 내가 5대3으로 이기고 있을 때 형의 주사 맞은 팔에 아주 강하게 부딪치고 말았다. 형은 바닥에 드러누워 울기 시작했다.
- 「창밖을 내다보다」 중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만화경처럼 수많은 색채로 부서지고 합쳐지는 풍경을 조망한 뒤 오르한 파묵의 ‘작품’을 다시 한 번 펼쳐 보자. 작품 속의 오스만 제국과 아버지와 이스탄불 뒷골목과 터키의 근현대사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색을 띠고 가슴속 깊이 다가올 것이다.
■ 자신의 글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타인의 글을 바라보다
타인의 글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자신의 글을 바라보다
이 책의 또 한 가지 특별한 점은 바로 『눈』, 『내 이름은 빨강』, 『검은 책』, 『순수 박물관』 등 오르한 파묵이 자신의 대표작들을 매우 객관적인 시각에서 분석함과 동시에 『롤리타』, 『트리스트럼 섄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악마의 시』 등 시대를 초월한 명작들에 대해 지극히 개인적인 독서 체험의 관점에서 돌아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거장의 반열에 오른 작가가 자기 자신의 작품에 대해 직접 밝히는 창작 배경, 완성되지 않은 초고, 작품에 이입된 흔적들은 마치 연구자의 시선처럼 냉철하고 분석적이다. 반면 지난 세기의 문호들과 동료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열정적인 소묘는 오르한 파묵이라는 작가의 특별함을 한눈에 보여 준다.
『검은 책』에 대한 첫 아이디어, 그러니까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하여, 도시의 모든 역사와 무정부주의, 내 어린 시절 이스탄불 거리의 시적인 면을 감싸 안을 어떤 책을 쓰고자 생각한 것은 1970년대 말부터였다. 1979년부터 쓰기 시작한 공책에 기록이 있다.
-「검은 책: 10년 후」 중에서
『파르마의 수도원』을 처음 읽은 것은 1972년,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이었다. 처음 읽었을 때 책 가장자리에 했던 메모들, 밑줄을 쳤던 곳들을 미소를 지으며, 젊은 시절 나의 혈기를 슬퍼하며 바라보았다. 하지만 28년 전 나 자신에게, 새로운 세계를 세우고, 세상을 이해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이 책을 열심히 읽은 젊은이에게 사랑도 느꼈다.
-「독서의 기쁨」 중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정오표를 대 보는 이성적이고 철저한 집필자의 모습과 문학 그 자체에 순수하게 경도되어 외경을 가지고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준 문장들을 소회하는 감성적이고 열렬한 독서가의 모습이 공존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뛰어난 작가의 필수적인 자질을 꼽아 볼 수 있다. 엄정한 작품성과 치열한 감성을 함께 갖춘 이 위대한 작가의 생생한 음성에, 이야기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잊을 수 없는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