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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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첫사랑은 얼마큼 가까이 있습니까 기대보다 한발 더 나아가는 재치 있는 문장 아주 귀여운 소설의 발견! 한국소설의 참신한 상상력을 발굴하기 위해 창비가 제정한 ‘창비장편소설상’의 제7회 수상작인 정세랑 장편소설 『이만큼 가까이』가 출간되었다. 이번 수상작은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스럽다고 표현할”(소설가 정이현) 소설로, 한국소설에 활력을 더하고 새로운 목소리를 기다려온 독자들에게 청량감을 안겨줄 것이다. 작가는 지금 삼십대에 이른 세대가 학창시절에 겪었음직한 꿈과 좌절, 불안과 우울, 명랑성과 호기심을 섬세하고 야무진 손길로 잘 매만지고 있다. 한 세대의 감수성과 정체성을 대변하는 영화, 음악, 패션, 유행, 직업 등 문화 전반이 총망라되어 소설을 읽는 내내 과거를 반갑게 추억하기도 하고, 현재를 따뜻하게 다독이기도 하면서 ‘우리’의 이야기를 공감하고 나누게 된다. 최근 들어 첫사랑과 죽음, 그로 인한 청춘의 절망과 상실감의 치유 과정을 이처럼 아름답고 촘촘하게 그려낸 작품은 찾기 어려울 만큼 정세랑의 필력은 남다르다. 이 소설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또 하나의 가장 큰 매력으로 “늘 기대보다 한발 더 나아가는 재치있는 문장력”을 꼽을 수 있으며, “최근 몇년 동안 이목을 끌었던 트렌디한 소설이 이 작품에서 꽃을 피웠다”(소설가 전성태)는 심사평처럼 드디어 우리는 아주 특별하고 귀여운 소설을 만나게 되었다. 청춘의 트라우마를 다독여주는 정세랑의 명랑한 기운 『이만큼 가까이』는 신도시 외곽 작은 도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친구들이 겪는 성장의 진통을 담담하면서도 경쾌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나'와 주연, 송이, 수미, 민웅, 찬겸 등 여섯명의 친구들과 '나'의 첫사랑 주완이가 그 주인공들이다. 소설은 개성 넘치는 친구들의 현재 일상과 과거의 사건들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나’와 친구들이 성장해나가는 모습과 학창시절의 에피소드를 발랄하게 이어간다. 겨울이 유난히 길고 안개가 자욱하던 파주에서 휑뎅그렁한 신도시 초기의 일산으로 학교를 다니던 나와 친구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2번 버스’뿐이다. 그 낡은 버스 안에서 MD플레이어나 MP3로 음악을 듣고, 전날 봤던 TV 프로그램 이야기를 하고, 짝사랑하는 친구 때문에 아파하면서도 여섯명의 친구들은 각자 버스 안의 앉은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서로 의지하고 위안을 받으며, 십대의 덜컹거리고 꼬불꼬불한 길을 흔들리지만 쓰러지지 않고 함께 지나온다. 2번 버스. 그 망할 버스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 버스를 빼놓고는 아무 얘기도 할 수 없다. (…) 우리 여섯명은 곧 쓰러져 죽을 것 같지 않으면 매일 그 버스에 탔다. 누구 한사람 타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졌다. (…) 버스가 퍼져버리면 우리 여섯은 눈길을 헤치고 더 큰 길로 나가기 위해 애를 썼다. 운동화가 젖는 건 예사였다. 발가락이 얼어 떨어져나가지 않은 게 지금 와서도 다행이다. 그런 경험들이 우리를 우리로 만들었다. 2번 버스가 아니었다면 우리도 우리가 아니었을 것이다.(17-19면) 영화미술 일을 하는 '나'는 DSLR 카메라에 동영상으로 현재의 친구들 모습을 담는다. ‘나’와 친구들, ‘나’의 가족들, 흔하디흔하지만 각별한 순간들을 담고 있는 마흔여섯 컷의 MPEG 동영상 파일들은 각각의 씬들이 생생하면서도 재치가 넘쳐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자꾸 따라 읽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주인공 ‘나’가 지금의 영화 일을 하게 된 데에는 ‘하주’로 통칭되는 주연이의 오빠이자 ‘나’의 첫사랑, 하주완의 영향이 무엇보다 크다. 영화를 좋아했던 주완이와 ‘히치콕 주간’ ‘우디 앨런 주간’ ‘지브리 주간’ ‘주성치 주간’ 등을 정해 감독별, 배우별로 영화를 보는 동안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나’와 주완이는 서로에게 특별한 사이가 되고,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설레고 두근거리는 처음의 경험들을 함께 만들어가는 풋풋하고 아름다운 ‘첫사랑’이 된다. 내가 학교에 가고 없는 시간, 하주가 혼자 운동화 끈을 꼬고 있었을 걸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굳이 묻지는 않았지만 여분 끈은 두개니까 하나 더 만들었을 텐데 그럼 커플 팔찌네, 나는 귀가 뜨거워졌다. 귀가 뜨거워진 날은 후드를 쓰고 잤다.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머릿속의 따뜻한 공기가 새어나가지 않도록.(83면) 그 거리감이 괜히 좋았다. 나머지 애들은 주완이의 친구가 아니다. 나만 주완이의 친구다. 친구보다 더 친밀한 어떤 것이다. 이만큼 가까워, 우리는. 여자친구보다도 더 친밀한 어떤 것이 어느날엔가는 될 수 있을지도 몰라. 가까워지고 가까워지다보면 분리가 불가능한 사이가 될 거라고, 나는 주완이의 곁에 캐주얼하게 앉아 음험하고도 창대한 계획을 세웠다.(98면) ‘빗물에 젖으면 녹아버릴 것처럼 아슬아슬해 보이는’ 주완이를 ‘장난감 인형처럼 언젠가 갑자기 잃어버릴 것’만 같다는 예감 속에서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주인공의 첫사랑은 어느날 예기치 못한 죽음으로 파국을 맞는다. 눈 내린 파주의 겨울 산에서 주완이는 탈영병이 숨겨둔 총기로 장난을 치던 아이로 인해 사고를 당하게 되고, ‘나’는 첫사랑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혼란스럽고 아픈 청춘 시절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느닷없고도 불운한 죽음 앞에서 친구들은 통곡하기보다는 기나긴 시간을 건너는 법을 배우며 꿈을 찾아 떠나거나 현실에 순응하며 십대를 이겨내고 이십대를 견뎌내, 이제 ‘안정된 음역’을 지닌 삼십대의 목소리로 편안하게 서로에게 말을 건넨다. 서로의 시간을 이해하고 견뎌내는 ‘나’와 친구들의 섬세하고도 사랑스러운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차분한 목소리를 듣다보면, 무언가를 잃어가던 나의 젊은 한때와 대면하게 되고 저마다 마음 한켠에 담아두었을 청춘의 트라우마가 더불어 다독여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연이가 끊임없이 나와 이야기해준 게 무엇보다 도움이 된 것 같다. 나의 망상을 삭제하고 삭제해줬던 주연이는 정작 그 시간을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한번만 더 말해줘. 여기 쳐다보면서 말해줘. 녹화해두게. 다시는 말해달라고 안할게. 미안해.” “아니, 괜찮아. 언제든지 말해줄게. 오빠는 죽었어.” (…) 여기를 쳐다보면서, 내가 살아 있다고 말해줘. 그렇게는 부탁하지 못했다.(186-188면) 우리는 그렇게 모여서 함께 망가지고 고장나고 그러다 한사람씩 사라질 것을 예감했으나 이른 포기의 달콤함 같은 것이 깃들어 있어서 그리 무거워지진 않았다. 열개의 인디언 인형처럼 하나씩, 운이 좋으면 길게 머물 거고 아니라면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었다. 순서를 기다리면서 담담하게 치킨을 먹고 생일파티를 하고 경조사를 챙겼다. 살아진다는 어른들의 말에 진저리를 내면서도 살아졌다. 그사이에 다시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 떠났다가 돌아왔다가 할 것이었다. 다른 친구들과 새로운 그룹을 형성하고 먼 도시에서 살 것이었다.(192면) 반짝이던 너를 만나는 순간, 아직 오지 않은 그리움 이제 삼십대에 들어선 여섯명의 친구들은 어렸을 때의 성격과 소질을 살려 저마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다가 이따금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아무렇지 않아질 작별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슬픔과 상실의 시간을 이겨내는 동안 쓰라렸던 상처는 서서히 아물어 이제는 잘 보이지 않는 희미한 흉터로만 남게 된다. 아프면 아픈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굳이 쿨하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로, 서로의 지금 그대로를 지켜주는 ‘우리’가 아름답다는 것을 작가는 담담하면서도 명랑한 목소리로 전한다. 내 마음을 채우던 그 누군가가 어디에 있든 지금 여기, ‘이만큼 가까이’에서 더욱 반짝이며 손을 내밀고 있는 걸 느낀다. 나중에 그리워질 걸 알아서 더욱 소중한 지금 이 순간을, 지금의 우리를, 그 간절한 두 손을 힘껏 잡아줄 때이다. 아무도 깨어 있지 않은 시간에 나만 깨어서 영상들을 돌려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