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백만장자 예술가의 몰락 1850년대, 당시 미국 롱아일랜드 지역에 한적한 시골 마을과 어울리지 않게도 외관이 예스럽고 장엄한 성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성 주인인 밴버드의 이름을 붙여 그 성을 ‘밴버드의 폴리’라고 불렀다. 그 말에는 다소 비꼬는 뜻이 숨어있었다. ‘폴리Folly’는 건축 용어로 주거가 아닌 장식을 목적으로 짓는 건물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지만 ‘어리석음’이라는 뜻이 더 일반적이었으니 말이다. 존 밴버드는 미국 개척 시대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부유했던 예술가였다. 하나하나 세는 것이 불가능 할 정도로 많은 동전을 수레 가득 실어 은행에 맡기는 일이 하루 일과였던 그는 유럽과 미국을 휩쓸던 공연 기획자이자 화가였다.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움직이는 파노라마’ 덕분이었다. 움직이는 파노라마란, 그림을 그린 거대한 천의 양 끝을 밧줄 고리로 묶어 줄을 따라 천이 움직이는 작품을 말한다. 밴버드는 이 움직이는 파노라마를 처음으로 고안했다. 당시로는 획기적인 최초의 ‘활동’사진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 뱃사공의 경험을 살려 높이 3.6미터, 길이 800미터의 거대한 천에 미시시피 강 풍경을 그렸다. 그것은 이전의 어느 작품보다 거대했다. 거기에 특허를 받은 독특한 장치를 이용해 천을 움직여 강이 흐르는 것 같은 효과를 주고 내레이션과 피아노 연주를 더해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그의 작품을 모방한 해적판이 출현했고, 그것을 막을 수 없었던 밴버드는 다른 사업을 시작했지만 수완이 부족해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게 된다. 막대한 재산을 쏟아 부어 24만 제곱미터짜리 땅에 영국의 윈저 성과 똑같이 생긴 성을 쌓던 천하의 백만장자 밴버드는 말년에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고 만다. 밴버드는 ‘밴버드의 어리석음’이라고 시기어린 비아냥을 듣던 ‘밴버드의 멋진 폴리(성)’를 빼앗긴 채 결국 초라한 죽음을 맞는다. 그의 거대한 파노라마 천도 조각조각 나뉘어져 시골 마을 몇몇 집의 단열재로 쓰였다. CD가 등장하면서 역사 속에 사라져가는 카세트처럼, 무성영화의 등장으로 밴버드의 ‘움직이는 파노라마’는 역사 속에 사라졌다. 밴버드와 그의 움직이는 파노라마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그의 실패와 어리석음이 단지 ‘잊혔다’는 이유로 ‘실패’라 단정할 수 있을까. 그를 기억하려는 몇몇 안 되는 연구자들조차 ‘성공할 뻔한’ 사람으로 소개하는 존 밴버드. 열정을 다해 살아간 그의 인생을 단지 성공과 실패라는 잣대로만 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열정을 바쳤으나 역사에 잊힌 이들의 기이한 삶을 만나다 폴 콜린스의 《밴버드의 어리석음》에서 만나는 이들의 삶은 그야말로 기이하고 다양하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입증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무언가(설사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었든 그렇지 않든 간에)를 추구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당대를 풍미했던 유명인이었으나 지금은 완전히 잊혔다는 것이다. 이들 중에는 밴버드처럼 시대를 앞서는 생각을 했지만 수완이 좋지 못해 실패한 이도 있다. 미국 최초로 뉴욕 시의 지하에 기압을 이용한 지하철을 건설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앨프리드 엘리 비치도 그렇다. 그는 영화 <갱스 오브 뉴욕>에서도 등장하는 악명 높은 정치가 보스 트위드의 악랄한 방해 공작에 밀려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실패하고 마는 비운의 주인공이다. 엄숙함이 연극판을 지배하던 시대에 멜로와 컬트적인 연기를 펼쳐 사람들의 야유를 들었던 로버트 코츠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에는 오렌지 껍질 세례를 받았지만, 세월이 지나 컬트 연기가 일반화되자 그의 연기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포도 농부 이프리엄 불도 있다. 그는 값싸고 맛 좋은 포도를 개발하는 데 평생을 바쳤지만, 그 영광을 모두 웰치(음료수로 유명한 웰치스 회사의 창업자)에게 넘겨줘야했다. 그 당시에는 기발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거짓으로 판명되어 버려진 이론을 주장했던 이들도 있다. ‘지구 안은 텅 비었다’며 지구공동설을 주장했던 존 클리브스 심스, N선이라는 방사선을 처음으로 발견했다고 해서 노벨상 후보에까지 올라가 모든 프랑스 인들을 자랑스럽게 했던 프랑스 과학자 르네 블롱들로, 파란빛이 모든 종류의 병을 치료한다고 믿었던 오커스터스 플리즌튼, 7음계만으로 세계 최초의 공용어를 만들고자 했던 프랑수아 수드르, 4류 배우에 불과한 셰익스피어가 그렇게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없다고 믿고 식음을 전폐하며 비밀을 파헤쳐갔던 천재 여류 작가 딜리아 베이컨 등이 바로 그런 이들이다. 이들이 평생을 바쳐 주장했던 이론들이 가치 없는 것으로 판명 났을 때 이들이 받았던 엄청난 수모는 말할 것도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 존재를 인정받고자 스스로를 번뇌에 빠뜨린 불쌍한 영혼들도 있다. 골동품 수집가인 아버지를 기쁘게 하려고 셰익스피어 작품을 통째로 위조했던 윌리엄 헨리 아일랜드와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귀족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을 최초로 유럽에 온 포모사(지금의 타이완) 인이라고 소개하며 밥을 얻어먹었던, 그러나 단 한 번도 포모사에 가본 적 없었던 영국의 최고 사기꾼 조지 살마나자르의 이야기는 가슴을 깊이 울리는 감동을 준다. 실패와 성공의 모호한 경계에 대한 인문학적 탐험! 실제로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잊혔으나 잊히지 않은 인물들이다. ‘성공’의 역사에는 잊혔지만 지금도 ‘실패’의 역사 속에는 잊히지 않은 인물들인 것이다. 여러 책과 자료에서 이들은 여전히 조롱을 받으며 짧은 가십거리로 소개된다. 《발칙하고 기발한 사기와 위조의 행진》(휴먼&북스, 2006)에서 윌리엄 아일랜드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위조범으로, 《SCI非 SCIENCE 사이비 사이언스》(이제이북스, 2003)을 비롯한 많은 과학사 책에서 르네 블롱들로는 희대의 사기꾼 과학자로, 구글의 많은 사이트에서는 로버트 코츠를 ‘발연기’의 대가로 소개된다. 그러나 저자 폴 콜린스의 시선은 오히려 이런 조롱들을 유머스럽게 비꼰다. 폴 콜린스는 냉정한 역사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인생이 얼마나 열정으로 가득 찼었고, 그 과정들이 얼마나 인간적이었는지 따뜻한 시선으로 이야기 해 나간다. 마치 그들의 초라한 비석 앞에서 그들을 위로하며 추모식을 올리는 것 같다. 그의 통찰력과 입담 덕분에 다음 세대의 새로운 가치나 발견에 밀려 역사 밖으로 사라져간 사람들, 당시의 지식이나 과학 기술의 수준으로는 획기적이었으나 거짓으로 판명되어 비웃음을 샀던 사람들,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고자 노력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던 사람들이 모두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사실 우리의 삶은 그들의 실패 위에 세워진 역사가 아닐까. 밴버드의 움직이는 파노라마 덕분에 시각과 움직임이 결합하는 패러다임이 시작되었고 그것은 무성 영화의 시초가 되었다. 심스가 주장했던 지구공동설은 이후 극지방 탐험의 세계를 활짝 열었고, 에드거 앨런 포나 쥘 베른 같은 문학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들의 상상력과 창의력, 추진력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 이들의 모습은 ‘존재의 이유’를 고민하며 하루하루 열정을 다해 살아가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좌절하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 이 책의 부제는 ‘세상을 바꾸지 않은 열세 사람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저자가 ‘못한’이 아닌 ‘않은’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저자가 쓰고자 했던 것은 ‘실패의 역사’나 ‘실패의 원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많은 부분 이와 같은 저자의 역설적인 시선과 지적인 위트와 유머감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각 장의 주인공인 사람들을 둘러싼 주변 인물도 볼만 하다. 오히려 주변 인물들은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이들이다. 《작은 아씨들》의 작가 루이자 메이, 《주홍 글자》의 작가 너새니얼 호손을 비롯해 이 책에서 조연으로 등장하는 수많은 유명인들을 찾는 것은 이 책을 읽는 데 또다른 재미를 줄 것이다. 잊힌 것들에 대한 따뜻한 기록자, 폴 콜린스 폴 콜린스가 한국에서 처음 소개되었던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