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인류를 넘어선 존재, 지구 너머로 나아갈 인간을 그린 아서 C. 클라크의 대표작
2017년 아서 C. 클라크 탄생 100주년 기념판
가장 좋아하는 SF소설을 꼽으라는 질문에 나는 오래 망설이지 않는다. 훌륭한 SF소설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충격적인 도입부와 전위적인 결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소설을 꼽으라면 아서 C.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 이외에 다른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드라마와 영화와 소설들이 이 작품으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던가. 그 가운데 《유년기의 끝》보다 흥행한 작품은 있을지언정 《유년기의 끝》만큼 우리의 현재를 돌아보게 만드는 동시에 인류의 내일을 사유하게 만드는 걸작은 단언컨대, 없었다. 오래전 《유년기의 끝》의 첫 장을 들추고 마지막 장을 덮는 데까지 걸린 그 짧은 시간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흥분되고 행복한 순간 가운데 하나였다. 그 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_허지웅(작가)
과학 대중화에 앞장선 과학자이자 우주시대를 열 다양한 개념들을 제시한 우주 개발자, 인류의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던 미래학자이기도 한 아서 C. 클라크가 2017년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다. 달에 착륙한 최초의 인간인 닐 암스트롱과 제9대 NASA 국장 데니얼 골딘 같은 실제 우주 탐사자들은 물론 스텐리 큐브릭을 비롯한 예술가들, 동료 SF작가들, 2007년 노벨상 수상자 도리스 레싱 등의 후대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20세기 문화와 문학, 과학기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그는 20세기가, 인류가 우주시대에 품었던 꿈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이다.
루퍼트 머독은 이 같은 클라크를 20세기 정신적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꼽았지만, 정작 클라크 자신은 죽음을 한 해 앞두고 한 90세 생일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무엇보다 ‘작가’로서 기억되고자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여섯 대의 컴퓨터와 프린터, 주변 장치들로 빽빽한 테크노 벙커 같은 작업실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작업을 계속해나갔던 그는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100여 편의 작품들을 발표했고,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앤슨 하인라인과 함께 SF 3대 거장으로 지워지지 않는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클라크가 그린 세계는 단순한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닌, 아시모프가 칭송한 대로 미래에 대한 진보된 예측인 동시에 지금 우리의 모습에 대한 통렬한 통찰의 결과였다. 때문에 그의 많은 작품들이 장르와 세월의 경계를 넘어 폭 넓은 사랑을 받아왔고, 특히 클라크가 평생토록 만나길 고대했던 외계지성과의 ‘최초의 접촉’을 그린 초기 대표작 《유년기의 끝》은 인류를 넘어선 존재, 지구를 넘어선 인간에 대한 클라크의 비전을 상징하는 아이콘 같은 작품으로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게임 캐릭터로도 익숙한 ‘오버로드’, 20세기 말을 휩쓸었던 에바 열풍의 주인공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등장하는 ‘인류보완계획’ 등도 바로 이 작품에서 빌려온 개념들이다. 작품 속에 담겨 있는 초고도의 지성을 가진 존재들의 시선을 통해 본 인류의 한계와, 이를 통해 인간이 스스로에게 품게 되는 질문들은 인간이 달에 착륙하기 무려 10여 년 전에 출간된 작품임에도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새롭게 선보이는 특별판 《유년기의 끝》은 냉전 종식 후 새로운 세기에 대한 희망을 담아 개작한 (하지만 소련 붕괴 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1989년의 도입부와 반세기가 넘도록 사랑받은 자신의 대표작에 대한 클라크의 단상을 담은 2000년의 <서문>, 클라크의 가장 널리 알려진 팬인 작가 허지웅을 비롯, 탄생 100주년을 축하하는 한국 독자들의 애정 어린 축하 글들을 담아 더욱 의미 있는 판본으로 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