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학적 미디어: 1999년 베를린 강의

프리드리히 키틀러
3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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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데리다’ 키틀러의 첫 국내 완역본. 이 책은 키틀러를 처음 만나는 독자에게 최고의 책이 될 것이다. 활기가 넘치고 즉흥적인 재기가 반짝이며, 소위 ‘키틀러식 독일어’로 통하는 함축적이고 읽기 어려운 키틀러 특유의 문체도 보이지 않는다. 주로 광학적 영역에 적용되는 키틀러의 중기(中期) 미디어 이론을 비교적 알기 쉽게 소개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키틀러가 1970년대에 이단적인 소장파로서 학자 생활을 시작했던 독일 문학 및 문화학 쪽에 관한 최소한의 일반적 지식을 전제하며, 저자가 야심만만하게 제시하는 몇몇 뻔뻔하고 노골적인 주장을 독자에게 순순히 따르라고 요구한다. 그의 주저라 할 『담론 네트워크』와 『축음기, 영화, 타자기』에서 상당수의 논제를 추출한 이 책은 키틀러의 미디어 이론을 관통하는 대표적인 주제들과 키틀러 특유의 괴팍함을 함께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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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해제: 프리드리히 키틀러가 선사하는 빛의 향연 _ 존 더럼 피터스 0. 서문 1. 이론적 전제 2. 조형예술의 기술 2.1 카메라 옵스큐라와 투시도법 2.1.1 전사 2.1.1.1 그리스인과 아랍인들 2.1.2 실현 2.1.2.1 브루넬레스키 2.1.2.2 알베르티 2.1.3 영향 2.1.3.1 투시도법과 활판인쇄 2.1.3.2 자연의 직접 인쇄 2.1.3.3 유럽의 식민 열강 2.2 매직 랜턴과 세계상의 시대 2.2.1 매직 랜턴의 작용 2.2.2 실현 2.2.3 영향 2.2.3.1 선전 2.2.3.2 하이데거의 ‘세계상의 시대’ 2.2.3.3 예수회와 광학적 미디어 2.2.3.4 유랑 극단 2.2.3.5 예수회 교회 2.2.3.6 예수회극 2.3 계몽과 이미지 전쟁 2.3.1 브로케스 2.3.2 현상학: 람베르트에서 헤겔까지 2.3.3 유령을 보는 사람 2.3.3.1 실러 2.3.3.2 호프만 2.3.4 낭만주의 문학 3. 광학적 미디어 3.1 사진 3.1.1 전사 3.1.2 실현 3.1.2.1 니에프스와 다게르 3.1.2.2 탈보트 3.1.3 회화와 사진: 눈알을 둘러싼 투쟁 3.2 영화 3.2.1 서막 3.2.2 실현 3.2.2.1 마레와 머이브리지 3.2.3 무성영화 3.2.4 유성영화 3.2.5 컬러영화 3.3 텔레비전 4. 컴퓨터 역자후기 참고문헌

Description

‘디지털 시대의 데리다’ 키틀러의 첫 국내 완역본 지난 10월 18일 독일의 미디어 이론가 프리드리히 키틀러(1943~2011)가 베를린에서 향년 68세로 사망했다. 영미권에서 ‘디지털 시대의 데리다’로 불렸던 키틀러는 미디어, 테크놀로지, 전쟁을 중심으로 현대 문화를 비평한 탁월한 이론가였다. 그의 첫 번째 히트작 『담론 네트워크』(1985)는 독일 인문학계에서 일종의 분수령을 형성했고 그가 발전시킨 미디어 하드웨어 이론은 1990년대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격렬한 찬반양론을 불러일으켰다. 『축음기, 영화, 타자기』(1986), 『시인, 어머니, 어린이』(1991) 등으로 이어진 그의 저작은 지극히 독창적이고 종종 논쟁적이며, 오늘날 ‘미디어에 포화된 동물’이 돼 버린 우리의 운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씨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미디어 이론과 인문학 전반에 미친 영향과 업적에도 그동안 키틀러의 저작은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되지 않았다. 그의 이론적 논의를 축약해서 실은 몇 권의 미디어 교과서를 제외하면 ‘유럽 최고의 미디어 철학자’ 또는 ‘오이디푸스적인 반란의 표적’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은 키틀러의 사상을 직접 만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이번에 현실문화에서 출간하는 『광학적 미디어: 1999년 베를린 강의』는 2002년 독일 메르페 출판사에서 나온 Optische Medien­Berliner Vorlesung 1999을 완역한 것으로, 이 외에 2010년 폴리티 출판사에서 나온 영역판을 참고하고 존 더럼 피터스가 쓴 영역판 해제를 덧붙였다. 피터스의 해제는 키틀러라는 인물의 성격, 지역적·문화적 맥락, 그의 미디어 이론과 이 책에 관한 전반적인 소개를 포함하고 있다. 키틀러 이론의 핵심만을 간추린 1999년 베를린 강의록 『광학적 미디어』는 키틀러를 처음 만나는 독자에게 최고의 책이 될 것이다. 이 책은 활기가 넘치고 즉흥적인 재기가 반짝이며, 소위 ‘키틀러식 독일어’로 통하는 함축적이고 읽기 어려운 키틀러 특유의 문체도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은 주로 광학적 영역에 적용되는 키틀러의 중기(中期) 미디어 이론을 비교적 알기 쉽게 소개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책은 키틀러가 1970년대에 이단적인 소장파로서 학자 생활을 시작했던 독일 문학 및 문화학 쪽에 관한 최소한의 일반적 지식을 전제하며, 저자가 야심만만하게 제시하는 몇몇 뻔뻔하고 노골적인 주장을 독자에게 순순히 따르라고 요구한다. 그의 주저라 할 『담론 네트워크』와 『축음기, 영화, 타자기』에서 상당수의 논제를 추출한 이 책은 키틀러의 미디어 이론을 관통하는 대표적인 주제들과 키틀러 특유의 괴팍함을 함께 선사한다. 『광학적 미디어』는 키틀러가 1999년 베를린 훔볼트대학교에서 진행한 동명의 14회분 강의를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왜 강의 제목이 ‘시각적 미디어’가 아니라 ‘광학적 미디어’인 것일까? 광학은 물리학의 하위 분야지만 시각 연구는 생리학, 심리학, 문화의 하위 분야이다. 시각적 스펙트럼은 거대한 광학적 스펙트럼에서 한 줄의 좁은 띠에 지나지 않는다. 키틀러는 주체가 언제나 대상에 종속된다고 보며, 인간의 지각이 물리적 현실과의 인터페이스를 형성한다고 간주한다. 최근 ‘시각 문화 연구’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키틀러는 광학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지각되는 이미지보다 그 물리·기술적 조건을 우선시하는 특징적인 접근을 보여준다. 감각 기관은 신호 처리 장치로서 비교적 효율이 떨어지는 편에 속한다. 키틀러는 인간의 용량을 만물의 척도로 삼는 것을 엄격히 거부한다. 그는 우리의 몸과 감각이 미디어로 외재화되기 전까지는 우리가 그에 관해 전혀 알 수가 없다고 본다. 요컨대 키틀러는 미디어를 ‘인간의 연장’으로 간주한 매클루언과 달리 테크놀로지의 자율성을 강조한다. 미디어의 역사에 관한 철학적 성찰 『광학적 미디어』는 르네상스의 투시도법 패널화에서 출발해서 이미 진부해지고 있는 사진, 영화, TV 기술을 지나 1980년대부터 급성장한 컴퓨터 그래픽까지 살펴본다. 키틀러의 설명은 크게 예술적 미디어, 아날로그 미디어, 디지털 미디어라는 세 겹의 서사를 따른다. 각각의 역사는 르네상스, 종교개혁, 반종교개혁, 계몽주의, 낭만주의와 같은 기본적인 시대 구분에 따라 상당히 관습적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키틀러가 미디어를 침투시키면서 그런 평범한 범주들의 내부에서 조금씩 변화가 일어난다. 그것들은 우리가 이미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미디어가 얼마나 잘 설명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인간의 손이 지배하는 예술적 미디어의 시대는 르네상스 시대에 투시도법이 발명되면서 정점에 달한다. 이 손은 테크닉을 모르는 순수한 손이 아니라 투시도법의 기하학적 규율로 훈육된 손이고, 카메라 옵스큐라에서 빛 자체의 반전된 흔적을 따라가는 손이다. 늘 그렇듯이, 이러한 예술적 미디어는 국가 권력, 종교 권력, 군사 권력과 모의한다. 반면 진정한 광학적 미디어인 아날로그 미디어의 시대에는 시각적 묘사 활동이 인간의 손에서 해방되고, 시각적 지각 활동이 인간의 눈에서 해방된다. 일련의 사진 촬영 장치들 덕분에 연필이나 붓의 개입 없이도 햇빛을 바로 옮겨 그릴 수 있게 되고, 가시성의 영역이 눈의 생리학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인간은 더 이상 기록을 지배하고 인식 가능한 우주를 통치하는 군주가 아니다. 여태껏 인간의 고유한 활동이라고 여겨졌던 그리기, 글쓰기, 보기, 듣기, 언어처리, 기억, 심지어 인식까지 기계의 몫이 되고, 어떨 때는 기계가 이런 분야에서 인간보다 더 뛰어나기도 한다. 아날로그 미디어의 가장 큰 혁신은 시간적 과정을 저장하고 조작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며, 가장 큰 문제는 서로 다른 미디어 시스템 간의 호환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키틀러는 영화와 TV를 설명하면서, 광학적 트랙과 음향적 트랙이 상호 호환 및 변환 가능성을 획득하기 위해 얼마나 다양한 미봉책을 동원했는가 하는 다소 목적론적인 이야기를 전개한다. 궁극의 호환 가능성이 실현되려면 디지털 기술이 나타나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빛의 효과나 흔적이 아니라 빛 자체를 처리할 수 있는 유토피아적 가능성을 기다린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키틀러는 자신의 연구 주제가 영화나 TV의 역사가 아니라 광학적 미디어라고 명시한다. 그는 미디어를 어느 특정한 구현물과 동일시할 생각이 없으며, “다양한 이미지 구현의 양상들보다는 이미지 저장, 전송, 처리의 일반 원리를” 확립하고자 한다. 더 엄밀히 말하면, 키틀러는 컴퓨터를 기존 미디어의 역사 전체를 다시 쓸 수 있는 편리한 장치로 활용한다. 미디어는 데이터 처리 장치라는 것이 그의 출발점이다. 이 강의는 전신 시스템에서 컴퓨터 시스템에 이르는 원격 통신 기술을 근대적인 광학적 미디어의 토대로 전면에 부각하면서 저장, 전송, 처리의 세 기능을 살펴본다. 이렇게 사태를 추상화하는 접근 방식이 역사의 복잡한 모서리를 둥글게 쳐내는 것일 수도 있지만, 키틀러는 언제나 미디어 역사가이기 이전에 미디어의 역사를 탐구하는 철학자다. 그의 목표는 역사를 이용해서 전송, 저장, 연산 기술에 관한 철학적 성찰을 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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