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선고

모리스 블랑쇼 · Humanities/Novel
120p
Where to buy
Rating Graph
Avg3.7(51)
Rate
3.7
Average Rating
(51)
블랑쇼의 언어관과 문학관이 잘 드러난 소설로서, 이후 많은 프랑스 현대철학자들뿐만 아니라, 폴 오스터나 존 업다이크 같은 영미권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 작품이다. 1부와 2부로 나뉜 이 이야기의 1부는 1938년 뮌헨협정으로 죽음을 선고받은 역사의 죽음, 모국 프랑스의 죽음,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 J의 죽음, 부활, 죽음이 차례로 벌어진다. 역사적, 개인적 죽음들이 혼재하는 1부와 달리 2부는 문학의 가능성으로서 죽음이 활성화된 공간이다. 2부의 이야기는 글쓰기가 죽음 이후에 도래하는 ‘사후적 사건’임을 보여 주기 위한 여러 가지 징표들을 담고 있다. ‘죽음’ 그 자체가 된 화자는 바라보는 모든 것을 죽음의 기호로 덧씌운다. 또한 2부에서 화자가 만나는 여인들은 중첩됨으로써 그 개별성을 잃고 비인칭의 존재가 된다. 이 책을 통해 블랑쇼는 언어 속에서 모든 언어의 바깥을 사유하는 것이 문학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에우리디케와 오르페우스의 만남과 헤어짐처럼 끊임없이 외부가 개입하는 죽음과 삶이 문학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나를 던지는 죽음이라고, 문학적 사건은 오직 죽음을 통해야 경험할 수 있는 사건이자 움직임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이렇게 해체, 끝없는 반복이 그의 문학적 사유의 어떤 도달점이라면 그 출발점 혹은 중심점은 죽음과의 만남임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인터파크 MIX & MAX

올 여름 휴가, 인터파크가 쏜다!

인터파크 · AD

Rating Graph
Avg3.7(51)

인터파크 MIX & MAX

올 여름 휴가, 인터파크가 쏜다!

인터파크 · AD

Author/Translator

Comment

9

Table of Contents

『모리스 블랑쇼 선집』을 발간하며 『죽음의 선고』 옮긴이 해제_‘이야기의 이야기’ 혹은 문학적 사건의 원형 모리스 블랑쇼 연보 모리스 블랑쇼 저작목록

Description

문학의 경계 바깥에서 쓰는 이야기! 죽음과의 만남, 주체를 흔드는 문학의 경험을 말하는 블랑쇼 소설의 정수! 현대 문학과 철학, 특히 데리다와 푸코로 대변되는 프랑스의 현대철학자들, 폴 드 만을 중심으로 하는 영미권의 비평이론가들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모리스 블랑쇼! 그의 독특한 문학관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 작품으로 손꼽혀 온 소설 <죽음의 선고>가 드디어 그린비 블랑쇼선집의 네번째 책으로 한국에 최초로 번역.출간되었다(선집 권차로는 1번). 블랑쇼는 이미 1938년 처음으로 출간한 <토마, 알 수 없는 자>에서 시공간과 인물을 극도로 추상화함으로써 누보 로망이라는 형식을 시도하여 관습적인 문학 장르에 문제를 제기했었다. 이후 1948년 그의 두번째 작품 <죽음의 선고>에서 블랑쇼는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문학이 과연 무엇인가를 묻기 시작한다. 특히 <죽음의 선고>와 함께 엮이는 <하느님>이 언어의 문제, 그중에서도 ‘잡담으로서의 말하기’라는 문제에 집중한다면, 이 책은 문학의 문제, 그중에서도 문학적 경험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중요한 작품이다. 또한 이 책은 독자들에게 해석에 반대하는 텍스트가 과연 어떤 의미인지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한다. 서사구조가 완벽하게 짜인 작품만을 읽어 왔던 독자들이라면 <죽음의 선고>를 읽으며, 텍스트가 하나의 의미로 포착되지 않고 무한히 미끄러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기실 독서란 읽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읽으면서 독자의 경험 속에 텍스트를 나름의 맥락으로 재배치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블랑쇼의 텍스트, 그중에서도 <죽음의 선고>는 ‘죽음’만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잔여(reminder)를 남기고, 해석의 무한성을 사유하게 만들며 끊임없이 독자들을 매혹시킨다. 공포와 밤, 두려움, 무덤, 죽음 등 평범한 언어로 쓰인 이 책이 문학 작품이자 철학 작품으로도 읽히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렇게 다층적 맥락으로 읽히는 이 책의 복합성은 블랑쇼에게 접근하려는 독자들에게 지금까지의 ‘읽기’ 행위에서 느끼지 못했던 무한한 즐거움과 함께 문학의 바깥(dehors)이라는 체험을 선물할 것이다. <죽음의 선고>: 만남, 죽음을 건너야 하는 위험한 사건 이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다. 모두 1938년 뮌헨협정으로 혼란스러운 프랑스가 배경이다. 1부에서는 관계가 명확히 드러나진 않지만, 사랑하는 사이라고 추측되는 화자와 J라는 여인이 등장한다. J는 오랫동안 병을 앓아 온 여인으로서 ‘죽음의 선고’를 받고, 자신이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며, 작품 속 화자 역시 병에 걸려 죽을 뻔한 적이 있다. 1부의 의사들은 병을 치료하기보다 죽음을 선고하는 사람으로 나타나고, 작품 속 화자는 잠깐 죽어 있었던 J를 되살아나게 한 후, 다량의 마약을 주사하여 괴로워하는 그녀를 다시 죽음에 처하게 한다. 1부에서 드러나는 삶과 죽음의 모호한 경계는 우리 의식 속의 이분법을 해체하며, 의미의 변별성도 흐트러뜨린다. 생물과 무생물, 자연과 인공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린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죽음의 선고>는 의미와 무의미로 설명될 수 없는 비의미의 영역을 드러낸다. 2부 역시도 1938년 프랑스의 한 호텔 방이라는 분명한 시공간적 배경을 갖고 있다. 하지만 2부에서의 공간적 배경은 현실 세계이면서 “무덤과 같은” 죽음의 공간이며, 화자는 낮엔 삶을 지속하다가도 밤이 되면 죽음의 두려움과 공포에 처한다. 이야기 속에서 어둠, 공포, 차가움, 부동성으로 표현되는 호텔 방을 열고 들어가는 일은 항상 위험하고, 수행할 수 없는 불가능한 임무로 규정된다. 그러나 동시에 그 공포의 공간은 “가장 큰 삶”이 거주하는 곳이기도 하다. 2부에서 화자가 만나는 여인들인 S와 N은 죽음을 매개로 화자와 연결된다. S는 화자가 병에 걸렸던 시절 요양소에서 만난 여인이며, N은 그가 죽을 만큼 병을 앓고 난 후에 만나게 된다. 유일하게 죽음에 다가서지 않은 채 만났던 여인 C는 화자에게 어떤 의미도 남기지 못한 채 그의 삶 속에서 사라져 버린다. 오직 죽음만이 화자에겐 존재를 연결한다. <죽음의 선고>의 유일한 사건은 “이리 와”라는 부름과 그에 답하는 다가옴이다. 내가 그녀에게 “이리 와”라고 말하고 그녀가 다가오는 그 사건은 금기를 위반하게 만드는 열망이 없으면 불가능한 두 절대적 세계의 만남이다. 작품에서 호텔 방을 여는 일이 그토록 위험하고 두려운 일인 까닭은 바로 그것이 나를 던지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나의 바깥에서 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던진 그 순간, 나는 없다. 그러나 내가 부재하는 곳에 나의 존재가 있다. 문턱을 넘고 닫힌 문을 밀고 들어가, 모르는 이에게 몸을 맡기는 움직임은 그래서 가장 위험하며, 나를 던져야만, 바로 그 죽음을 거쳐야만 가능하다. “이리 와”라는 부름에 응답하는 움직임과 다가옴은 그저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오히려 한 세계와 다른 세계가 맞부딪히는 거대한 사건이다. 개별적 존재를 조준하지 않는 이 원초적 힘에 빨려들어 그 광풍을 통과한 사람은 그 사실을 기억할 수 없거나, 말할 수 없다. 어떤 세계를 버리고 다른 세계를 만난다는 건, 존재를 버리는 경험, 존재가 사라지는 경험이 부재한 상태가 아니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은 의식, 기억, 언어, 의미의 세력권을 벗어난 죽음을 만난 것이다. 경계와 한계 너머로 건너오라는 부름에 몸을 던져 무한한 움직임으로 답하는 만남의 사건은 모든 문학의 유일한 사건이다. 이런 관점에서 <죽음의 선고>는 바로 문학 자체에 대한 이야기이며, 블랑쇼는 이 책을 통해 만남이란 죽음을 건너야 하는 위험한 사건임을 상기시킨다. 죽음의 경험, 가장 원형적인 문학적 사건 블랑쇼에게 타자의 죽음과 마주하는 경험은 내가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겪어야 하는, 그러니까 ‘우리’가 겪어야 하는 바깥(dehors)의 경험의 모델이다. 나는 그 경험에 타자와 함께, 타자와의 내밀한 관계 가운데로 들어간다. 바로 그곳에서, 타자 안에서뿐만 아니라 내 안에서도 자아는 해체되고, 타자를 관통하고 있는 바깥으로 나 또한 열리며, 그러한 한에서 나와 타자는 내밀성 가운데 만난다. 블랑쇼가 말하는 죽음은 종말이나 소멸이 아니며, 언제나 죽음으로의 접근이다. 종말이나 소멸을 선언하지 않는 죽음이 어째서 공포를 가져다주는지 의문이 들 것이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종말이 아니라 불가능성(세계의 불가능성, 존재의 불가능성)으로 인한 영원한 고통 때문이다. 그러니까 자아가 쥘 수 있는 확실성을 무너뜨리고 박탈당하는 기이함의 경험 때문인 것이다. <죽음의 선고>는 죽음과의 만남이라는 유일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으며, 이야기는 ‘나-화자’의 “이리 와”라는 부름과 그에 답하여 다가오고, 건너오며, 몸을 던지는 ‘여인-생각’의 무한한 움직임이 사건으로 도래하는 공간이다. 여인과 생각의 중첩인 그녀를 우리는 그리스 신화의 에우리디케에 비할 수 있을 것이다. 에우리디케가 오르페우스를 저승으로 이끄는 것처럼, 작품 속 여인들은 작품 속 화자의 확고한 세계를 무너뜨리고, 화자에게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만들어 버린다. 오르페우스는 죽음을 통해 그 지하 무덤 같은 세계로 들어가 에우리디케를 불러내려 하지만, 에우리디케는 오르페우스의 시선이 닿는 순간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그 사라짐은 소멸이 아니라 이야기의 시작이다. 블랑쇼 역시 이 책 속에서 죽음이 사라짐과 소멸이 아니라,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45쪽)임을 분명히 말한다. 오르페우스의 시선 속에서 드러나고 사라지는 에우리디케는 블랑쇼에 따르면 또한 하나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신화 속에서 에우리디케가 그러하듯 이 작품들은 오르페우스의 시선 속에서 탄생하는 동시에 소멸한다. &l

Collections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