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동네 끄트머리에 살던 털북숭이 물소는 어떻게 늘 정답을 알고 있었을까?
낡은 잠수복 차림으로 거리를 떠돌던 그 사람은 누굴 찾고 있었던 것일까?
사람들이 남몰래 써 놓고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은 시들은
어디로 모여 무엇이 되어 떠돌게 되는 것일까? ……
경계의 작가, 숀 탠
그림책에 관심이 있는 성인이라면 ‘숀 탠’이라는 작가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도착』, 『잃어버린 것』, 『빨간 나무』등의 작품도 한 번쯤은 접해 보았을 터.
그의 작품들은 흔히 ‘아이들이 보는 것’으로 여겨지는 여느 그림책들과는 매우 다르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잊어버리고 살게 되는 것들에 대한 연민’(『잃어버린 것』)이라든가, ‘일상 속의 한없는 절망과 절망 끝에 찾아드는 희망’(『빨간 나무』), ‘자기 나라를 떠나 낯선 곳에서 살게 된 사람들의 외로움과 고단함, 또는 그에 대한 위로와 연대’(『도착』) 등, 숀 탠의 작품들은 여타의 그림책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주제와 감성을 은유와 상징이 가득한 판타지로 풀어내, 성인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를테면 숀 탠은 ‘경계의 작가’다. 그림책적 형식과 성인문학적 감성의 경계에 서서 그 둘을 아우르는 작가. 그는 또한 다양한 예술 장르들을 아우르는 작가이기도 하다. 최고 권위의 그림책상인 볼로냐라가치상을 받은 호주의 대표적 그림책 작가인가 하면,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세계적인 그래픽노블리스트이기도 하다. 두 차례에 걸쳐 세계 판타지어워드 ‘최고의 아티스트’로 선정된 독보적인 에스에프 일러스트레이터이면서, 영화 「월-E」와 「호튼」의 컨셉디자이너로 일한 바 있는 비주얼아티스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작가적 경계성을 가장 잘 말해 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자리와 관점이다. 그는 세대와 세대의 경계에 서서, 앞선 세대에게 버림받은 작고 보잘것없지만 소중한 것들을 보듬고 지키려 한다(『잃어버린 것』). 날마다 절망과 희망 사이를 오가는 소시민의 자리에 서서, 절망하는 이들을 위안하고 희망의 새싹을 보여주고자 한다(『빨간 나무』). 토박이와 이주자의 경계에 서서, 낯선 세계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이주자들이 겪는 외로움과 고단함을 이해하고 위로하며 연대하려고 한다(『도착』).
작가 숀 탠의 이러한 경계성은 그의 출생 배경과 성장 환경에서 비롯된 바 크다. 그는 호주의 중국계 말레이시아 이민 2세다. 호주 이민자들의 기착지인 항구도시 프리멘틀에서 태어나, 대도시인 퍼스 북쪽의 변두리에서 자랐다. 이민 2세로서 도시 변두리에서 자란 성장기 내내 그는 경계인으로서 자기 존재의 정체성과 주변부의 삶에 대하여 고민하였고, 그 고민과 사유의 결과들이 이후 그의 작품 세계 속에서 다양한 소재와 주제로 변주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는 또한 문학과 회화에 대한 천부적 재능과 감수성을 타고났다. 어려서부터 시와 소설에 탐닉했고 그림에 몰두한 그는 불과 16세에 공상과학소설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시작해 18세에 ‘국제 미래의 출판미술가’ 상을 받은 바 있으며, 대학에서는 문학과 회화를 복수 전공했다. 이러한 자질과 환경, 그리고 현실에 대한 고민과 진지한 태도 들이, 문학과 회화를 아우르고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면서 주변인들의 삶과 꿈을 어루만져주는 독특한 작품세계의 배경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
경계의 작품, 『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
경계의 작가 숀 탠이 또 하나의 ‘경계의 작품’ 『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을 창조해 냈다. 이번엔 문학적 성취가 두드러진다. 어느 도시 변두리 지역의 일상을 회고하는 듯한 열다섯 편의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통해 삶의 내밀한 진실을 들여다보는 이 작품은, 그의 전작들에 비해 글의 비중이 현저히 크고 글 자체만으로도 서사의 힘과 문학적 완성도가 매우 높다는 점에서 소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단순히 언어예술로서의 ‘소설’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작품 지면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시각예술로서 ‘그림’들이 삽화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이야기를 전개하고 전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 작품의 두 번째 이야기 「에릭」을 보면, 화자의 집에 머물던 외국인 교환학생 에릭의 모습은 나뭇잎 모양의 머리를 지닌 땅콩만한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다. 어린 시절의 화자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러나 결과적으로 인정하고 존중해야만 하는 문화적 배경을 지닌 주인공의 모습을 비현실적이면서도 소박한 정감을 자아내는 이미지로써 그려낸 것이다. 이것은 말(글)로는 전달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느낌의 시각적 표현이다. 게다가 이 이야기는 에릭이 화자의 집에 남기고 간 것에 대해 “직접 보시라. 그것은 몇 해가 지난 지금도, 어둠 속에서 여전히 잘 자라고 있다……”라고 말한 뒤에, 책장을 넘기면 마주치게 되는 화면을 가득 채운 영롱한 그림으로써 그 이미지를 제시한다. 이것은 ‘글과 그림이 서로 보완하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즉 ‘보여주며 말하는’ 그림책적 표현 방식에 다름 아니다. 그밖에도 이 작품은 텍스트 자체를 시각 이미지로 활용하여 작품의 느낌을 연출한다든지(「멀리서 온 비」), 글자 하나 없이 그림만 있는 장면 넷을 연이어 보여줌으로써 이야기를 전개한다든지(「할아버지의 결혼식 이야기」) 하는 방식으로, 시각(그림/이미지)과 청각(글/언어)을 동시에 활용하는 공감각적 표현방식을 구사하고 있다.
이처럼 소설도 아니요 그림책도 아니면서 그 둘을 뛰어넘는 표현을 성취해 낸 이 작품을, 서평지 <스쿨라이브러리저널>은 다음과 같은 말로 평하고 있다. “너무나 독특한 작품이라서 기존의 장르로는 분류하기 어렵다. 차라리 이 책을 ‘보석’이라 하자. 아니, ‘보석의 모음’이다!”
변두리-주변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진실과 희망 이야기
『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 이 작품의 원제는 Tales from outer suburbia다. ‘suburbia’- 번역하여 교외, 또는 변두리쯤 되는 이 말은 숀 탠의 다른 작품 속에도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낱말로, 경계인 또는 주변인으로서 작가의 독특한 정서를 형성한 환경이다.
이 ‘교외’를 배경으로 하는 열다섯 편의 이야기들은 다 다르면서도 닮아 있다.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들, 그리고 보이지 않지만 결국은 보아야만 하는 것들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우리가 스스로 보지 못하는 우리 안의 편견과 어리석음을 드러내 보여주기도 하고, 스스로 무시해 버리는 작고 보잘것없는 생각의 조각들로 소중한 가치들을 빚어내 보여주기도 하며, 일상 속에 숨어 보이지 않는 진실과 희망을 들춰내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는 그것들을 직접 드러내어 말하지 않는다. 다양한 형상적, 언어적 상징과 은유가 담긴 기이한 이야기들을 통해 ‘느끼게’ 해 줄 뿐이다. 그리고 그 묘한 느낌의 끝자락에 독자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하여, 저마다의 언어로 된 답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가령, 이 작품의 첫 번째 이야기인 「물소」를 보자.
물소는 동네 끄트머리, 아무도 돌보지 않아 풀이 무성한 빈터에 산다. 물소는 거의 늘 잠만 자고 있고 누가 지나가든 무관심하지만, 누구라도 길을 가다 멈추고 무언가 물어보면 뾰족한 발굽을 들어 정확한 방향을 가리켜 준다. 그가 가리킨 데로만 가면 우리는 늘 기뻐하며 안도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물소는 이제 동네에 없다. 그저 묵묵히 방향만을 일러줄 뿐, 답을 찾는 방법이나 모양, 느낌 따위 스스로 알아가야 할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이 무뚝뚝하고 낯설고 무서워 보이기까지 한 존재를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야 우리는 그가 아쉽다.
작가가 풀어낸 이야기 속의 아무도 찾지 않아 떠나버린 물소, 그는 무엇이며 그를 아쉬워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네 번째 이야기인 「멀리서 온 비」는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