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일기 1

김기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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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부터 왕성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기협은 특이한 배경의 역사학자다. 1968년 서울대 이공계열 수석으로 물리학과에 입학했다가 1년 후 사학과로 전과해서 중국사 전공을 시작한 뒤 석사과정은 경북대에서, 박사과정은 연세대에서 수학했다. 1990년 대학교수를 그만둔 이후 칼럼니스트와 번역가로 활동하다가 근년 들어 본격 저술활동을 시작했다. 그런 그가 환갑을 맞은 2010년 8월 1일 <해방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목표는 2013년 8월 31일까지 37개월간. 1945년 8월 1일 해방 전야부터 1948년 8월 31일 대한민국 건국 무렵까지의 기간 동안 '65년 전의 오늘'을 되살리는 작업. 저자는 <해방일기>를 통해 역사를 과거와 현재 사이의 대화보다 씨름으로 보고, 대화록을 정리해 주기보다 생중계를 펼치겠다고 한다. <해방일기>는 풍부한 관점을 제공해준다. 저자는 한국현대사 연구자가 아닐 뿐더러 학술논문 위주의 표준적 학술활동에서 벗어나 자기 식으로 오랫동안 공부해 온 사람이어서 일반 역사학자와 다른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는 문명사가의 관점도 있고 저널리스트의 관점도 있다. 원자폭탄의 등장은 우리 해방공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 폴란드,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일본, 중국 등지에서 펼쳐진 상황에 비추어 우리 '해방'의 의미를 다시 음미해 볼 점은 없는가? 미국과 소련은 당시에 어떤 변화를 겪고 있었고, 그 변화가 우리의 해방공간에 어떻게 투영되었는가? 등 해방공간의 실질적 이해에 도움이 되는 관점들이 새로 제시된다.

'그부호' 잇는 독보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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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머리말 원칙과 상식을 낯설어하는 사회 1 해방은 도둑처럼 왔던 것인가? 1945년 8월 1 ~ 15일 1945. 8. 1. 『해방일기』를 시작합니다 1945. 8. 2. 포츠담회담에 나타난 원자폭탄 1945. 8. 3. 폴란드의 해방 아닌 해방 1945. 8. 4. 모겐소가 부끄러워한 지독한 점령정책, ‘모겐소 플랜’ 1945. 8. 5. 일본의 지정학적 위치는 ‘미국의 밥’ 1945. 8. 6. 원폭의 참혹성은 인간성의 증발이었다 1945. 8. 9.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참극 1945. 8. 10. 일본의 항복 시점이 미ㆍ소 지분을 결정했다 해방의 시공간 - 1945년의 세계 1945. 8. 11. 미-소의 ‘눈치 보기’ 속에 그어진 38선 1945. 8. 12. 다급해진 총독부가 붙잡고 매달린 인물 1945. 8. 13. ‘항복’이라는 마지막 칼자루를 쥔 일본 1945. 8. 15. 일본이 망할 줄 시인은 정말 몰랐을까?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해방이 도둑처럼 찾아왔었나요? 2 항복을 선언했으나 아직 항복하지 않은 자들 1945년 8월 16 ~ 31일 1945. 8. 16. 여운형ㆍ안재홍, ‘건국 준비’에 나서다 1945. 8. 17. 총독부는 무엇을 알고 있었을까? 1945. 8. 18. 좌익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1945. 8. 19. 조선의 기독교와 민족주의 1945. 8. 20. 식민지배가 키워준 지주층의 ‘민족자본’ 1945. 8. 23. 소련군의 인민위원회 지지와 지원 1945. 8. 24. 정회(町會), 민중과의 접점 1945. 8. 25. 황폐한 이념시장 안의 ‘적대적 공생’ 해방의 시공간 - 일지로 보는 1945년 8월과 9월 1945. 8. 26. 건준을 외면한 자본가 집단 1945. 8. 28. 얄타의 배신, 폴란드의 비극 1945. 8. 30. 해방을 맞은 임시정부의 모습 1945. 8. 31. 식민지시대의 엘리트계층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온 사람들 3 남과 북 점령군의 서로 다른 모습 1945년 9월 1 ~ 15일 1945. 9. 1. ‘건국’의 주체가 되지 못한 건국준비위원회 1945. 9. 2. 전쟁광 맥아더의 손에 맡겨진 극동지역 1945. 9. 3. 임시정부의 가치는 무엇에 있었는가? 1945. 9. 4. 중도 좌파와 중도 우파의 결별 1945. 9. 6. 극좌와 극우의 대두 1945. 9. 7. 해방공간의 실패는 우익의 실패였다 1945. 9. 8. 건국동맹은 어디에 있었는가? 해방의 시공간 - 1945년 주요 정당의 계보도 1945. 9. 9. 미군과 소련군, 어떻게 달랐나? 1945. 9. 10. 좌익과 우익은 어떻게 구분되었는가? 1945. 9. 13. 하지 사령관의 첫 기자회견 1945. 9. 14. 유치하고 졸렬한 ‘인민공화국’ 1945. 9. 15. 일본인 대신 ‘통치’하러 온 미군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해방은 독립운동의 종착점 아닌 출발점 4 댄스홀과 요정이 그토록 번창한 이유는? 1945년 9월 16 ~ 30일 1945. 9. 16. 한민당의 명분과 실제 1945. 9. 17. 미군정이 풀어준 폭력의 고삐 1945. 9. 19. 김일성의 등장 1945. 9. 20. 동아시아에서 수동적 태도였던 소련 1945. 9. 21. “친일파여, 떨지 마라! 한민당이 있다.” 해방의 시공간 - 정치 1번지 종로의 정치지형도 1945. 9. 24. ‘무조건 항복’에 임하는 일본인들의 자세 1945. 9. 27. 한 달간 통화량 70% 증가의 의미 1945. 9. 28. 에드거 스노가 본 한국의 소련군과 미군 1945. 9. 29. 국민당과 한민당의 다른 점 1945. 9. 30. 그 많은 돈을 일본인들은 왜 뿌리고 갔나?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 1 5 남북 공산주의운동의 갈림길 1945년 10월 1 ~ 15일 1945. 10. 1. 독립운동 최대의 상징, 임시정부 1945. 10. 4. 한국인의 ‘준비된 근대어’, 한글 1945. 10. 5. 미군정, ‘어리석음’보다 ‘게으름’이 문제였다 1945. 10. 6. 단순치 않았던 임정 내부구조 1945. 10. 7. 세력확대를 위한 해방 후 임정의 노력 1945. 10. 8. 박헌영과 김일성의 만남 1945. 10. 11. 한민당과 아놀드의 찰떡궁합 해방의 시공간 - 일지로 보는 1945년 10월 1945. 10. 12. 자기 손으로 만든 박헌영의 지도력 1945. 10. 1

Description

역사학자 김기협, 65년 전의 ‘오늘’을 되살리는 대장정에 오르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20여 년 전 해방공간을 향해 이 사회의 시야를 열어주었다. 수십 년 동안 해방공간을 철저히 가로막아 온 반공체제의 장벽에 구멍을 뚫어 사람들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제 구멍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벽을 치우고 통째로 바라볼 때가 되었다. 만져보고, 쓸어보고, 현미경도 들이대보고, 성분조사도 해볼 때가 되었다.” 3년 전부터 왕성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기협은 특이한 배경의 역사학자다. 1968년 서울대 이공계열 수석으로 물리학과에 입학했다가 1년 후 사학과로 전과해서 중국사 전공을 시작한 뒤 석사과정은 경북대에서, 박사과정은 연세대에서 수학했다. 1990년 대학교수를 그만둔 이후 칼럼니스트와 번역가로 활동하다가 근년 들어 본격 저술활동을 시작했다. 그런 그가 환갑을 맞은 작년 8월 1일 『해방일기』를 쓰기 시작했다.(?프레시안? 연재) 목표는 2013년 8월 31일까지 37개월간. 1945년 8월 1일 해방 전야부터 1948년 8월 31일 대한민국 건국 무렵까지의 기간 동안 ‘65년 전의 오늘’을 되살리는 작업이다. 8월 1일자 첫 회에서 김기협은 선친의 전쟁일기를 언급했다. 『역사 앞에서』의 저자 김성칠 교수가 그의 선친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60년 전 세상을 떠난 선친을 스스로 들먹인 데서 새 작업에 대한 만만찮은 각오를 느낄 수 있다. (…)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독자께서는 바로 제 아버님을 떠올리시겠죠. 그렇습니다. 이 작업에는 아버님의 전쟁일기를 흉내 내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전쟁이란 상황에 마주쳤을 때 한 역사학도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힘껏 모색하신 것이 그 일기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 역시 통상적인 서술 방법으로 한계를 느끼는 주제 앞에서 제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으로 『해방일기』에 착수합니다. (…) 이 막막한 작업에 구상이 떠오른 지 불과 한 달 만에 착수하고 있다는 사실부터 어리둥절합니다. 가만 생각하면 바로 이런 성격의 작업을 위해 지금까지의 제 인생이 배치되어 온 것이 아닌가, 운명적인 생각까지 듭니다. (…) 그 후 40주째 매주 100여 매씩 글을 올리고 있다. 생각해 보면 황당한 일이다. 지금 1주일 동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누군가가 150매 분량으로 정리해 준다면 재미있게 읽을 독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하물며 65년 후의 어느 필자가 그런 일을 할 때 그것을 참을성 있게 읽어줄 65년 후의 독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이런 서술을 꾸준히 읽어주는 독자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어쩌면 놀라운 일이다. 그 방대한 서술에 독자들이 질리지 않게 해주는 것이 무엇일까? (1) 『해방일기』에는 현장감이 있다. 저자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 사이의 ‘대화’보다 ‘씨름’으로 보고, ‘대화록’을 정리해 주기보다 ‘생중계’를 펼치겠다고 나선다. 65년 전 상황의 ‘생중계’라니! 말이 안 되는 소리 같지만, 그 대상이 ‘해방공간’이라서 그 필요가 성립된다. 한국현대사의 결정적 기로였던 그 시기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아직도 차단과 굴절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생중계’가 반가운 것이다. “나는” 하고 거침없이 나서는 주관성이 현장감을 북돋워준다. 저자는 전문가로서의 책임감보다 동시대인으로서, 이웃으로서 독자들과의 연대감을 앞세운다. 주어진 자료와 연구결과를 놓고 독자들과 같은 입장에 서서 최선의 해석을 추구하는 것이다. 객관성을 최대한 확보하려 애쓰지만 그 한계에 이를 때는 한계를 서슴없이 인정함으로써 독자의 주체적 판단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준다. (2) 『해방일기』는 정치적 시각을 넓혀준다. 저자는 이 사회에서 ‘진보적’ 인사로 흔히 간주되는 사람인데도 스스로 ‘보수주의자’를 자처해 왔다. 그는 이 작업에서 “원칙과 상식을 중시하는 중도의 힘을 키우기 바라는 마음”을 밝힘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분명히 했다. 그가 내세우는 ‘원론적 보수주의’는 역사만이 아니라 지금의 한국 정치상황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 준다. 해방공간의 정치 상황은 지금까지 ‘좌우 대립’을 위주로 풀이되어 왔다. 저자는 ‘적대적 공생관계’로 맺어진 극좌와 극우가 함께 중도파를 억압하고 침식하고 봉쇄하던 상황을 그려 보인다. 원칙과 상식에 따르려는 중도파와 이해관계에 얽매인 극단파 사이의 ‘중극(中極) 대립’의 새 그림을 내놓는다. 원칙과 상식을 따르는 다수가 강력한 동기를 가진 소수 집단의 집요한 도발에 굴복한 해방공간의 상황이 65년 후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저자는 본다. (3) 『해방일기』는 풍부한 관점을 제공해준다. 저자는 한국현대사 연구자가 아닐 뿐더러 학술논문 위주의 표준적 학술활동에서 벗어나 자기 식으로 오랫동안 공부해 온 사람이어서 일반 역사학자와 다른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는 문명사가의 관점도 있고 저널리스트의 관점도 있다. 원자폭탄의 등장은 우리 해방공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 폴란드,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일본, 중국 등지에서 펼쳐진 상황에 비추어 우리 ‘해방’의 의미를 다시 음미해 볼 점은 없는가? 미국과 소련은 당시에 어떤 변화를 겪고 있었고, 그 변화가 우리의 해방공간에 어떻게 투영되었는가? 근대적 변화가 억압체제를 통해 민족사회에 작용한 구조는 어떠한 것이었는가? 등등 해방공간의 실질적 이해에 도움이 되는 관점들이 이 작업에서 새로 제시된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20여 년 전 해방공간을 향해 이 사회의 시야를 열어주었다. 수십 년 동안 해방공간을 철저히 가로막아 온 반공체제의 장벽에 구멍을 뚫어 사람들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제 구멍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벽을 치워버리고 통째로 바라볼 때가 되었다. 만져보고, 쓸어보고, 현미경도 들이대보고, 성분조사도 해볼 때가 되었다. 20년 전 젊은 세대는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가진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그 내용을 씹어 삼켰다. 상식이 철저히 봉쇄된 상황에서 벽에 뚫린 구멍을 통해 상식의 편린에라도 접하는 것이 너무 황홀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식과의 모처럼의 만남이 일으키던 황홀함은 빛이 바랬다. 충격적인 황홀함보다 차분한 이해를 늘리기 위해 ‘인식’을 더 심화시킨 ‘재인식’이 나올 때가 되었다. 그런데 연전에 나온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은 인식의 심화가 아니라 인식의 전복을 위해 나온 것이었다. 저자가 한국근현대사 서술에 나선 계기가 3년 전의 『뉴라이트 비판』 작업이었다. ‘대한민국 체제’를 절대적으로 옹호하기 위해 역사를 자의적으로 왜곡하는 뉴라이트 진영의 입론 방식을 그는 그 작업에서 비판했다. 이제 그는 『해방일기』를 통해 뉴라이트 진영의 입론 내용을 반박하고 있다. ‘대한민국 체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밝히는 것이 이 작업의 기본목적의 하나다. 저자는 『해방일기』가 특정 진영에 대한 반박을 넘어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보완이 되기 바란다. 벽 틈의 구멍으로 바라보며 그리움을 달래는 단계를 넘어 독자들이 해방공간의 역사를 품에 끌어안고 마음껏 어루만질 수 있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65년 전에는 우리 민족사회의 건강한 정신이 아직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그 이후 억눌려 온 그 정신을 지금이라도 되살리는 것이 민족사회의 장래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독자들과 함께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대장정의 첫 걸음 -『해방일기』제1권 해방은 도둑처럼 왔던 것인가 『해방일기』 제1권 해방은 도둑처럼 왔던 것인가(1945. 8 ~ 10) 개요 8월 15일 일본 천황의 항복 선언 후 소련군과 미군의 점령까지는 몇 주일의 간격이 있었고, 전국이 실효적 점령 상태에 들어가는 데는 더 긴 시간이 걸렸다. 이 ‘권력의 공백’ 기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