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사회학의 대가이자 “내일의 사유를 바꿀 12인의 사상가”
중 한 명인 에바 일루즈의 역작
‘감정 자본주의’를 파헤쳐 학계와 출판계를 놀라게 했던 그녀가
이번엔 ‘현대인의 사랑’에 관한 사회학적 고발장을 던진다!
우리 삶의 일상과 현대문화의 다각적 측면을 활발히 성찰해온 여성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특히 인간의 ‘감정’ 연구에 몰입해왔다. 지금껏 ‘감정’은 주로 심리학의 연구대상으로 여겨져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에바 일루즈는 소비자본주의로 기울어진 현대사회가 결국 그 구성원들이 지닌 감정의 생산과 변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진단한다. ‘현대’라는 사회의 풍경을 감정의 ‘상품화’ 혹은 ‘자본화’라는 코드로 읽어내는 것이다.
‘사랑은 왜 아픈가?’ 혹은 ‘사랑은 왜 사랑에 빠진 사람을 아프게 만드는가?’를 다루는 이 책은 그녀가 진행해온 연구를 또 다른 방식으로 집대성한 독특한 성과물이다. ‘남녀 간의 사랑’(이 책의 표현에 따르자면 ‘낭만적 사랑’)이야말로 인간의 감정이 오롯이 표현되는 영역이므로 그 이면에 숨은 ‘사회학적 통찰’(‘심리학적 치료’가 아니라!)을 감행해본 것이다.
에바 일루즈 자신은 그런 시도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이 책이 품은 커다란 야심은 마르크스가 상품을 가지고 벌인 일을 감정에, 적어도 낭만적 사랑의 감정에 적용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즉 (사랑의) 감정은 사회관계들로 형성된다는 것, 감정은 아무런 제약이 없는 자유로운 방식으로 순환하는 게 아니라는 것, 감정이 빚어내는 마법은 바로 사회의 마법이라는 것, 그리고 감정은 현대의 제도들을 압축해낸 것임을 보여주려는 야심인 동시에 열망이라는 이야기다.
▶ 현대인의 연애와 사랑, 그 현주소는? - ‘사랑’이라는 매체로 들여다본 ‘현대성’
에바 일루즈는 세계적인 학자답게 사랑을 주제로 다룬 이 책에서도 놀라운 박학다식함과 특유의 성실함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그녀는 제인 오스틴의 여러 소설들에서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과 잡지 기사,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에 올라온 숱한 고백담과 댓글들, 연애와 불륜을 포함한 여러 부류의 ‘사랑’ 경험자들과 나눈 실제 인터뷰를 토대로 ‘오늘날’, 즉 현대를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들이 만들어낸 ‘사랑의 현장’으로 곧장 파고들어간다. 그리고 거기에 그토록 많은 고통과 상실과 아픔과 눈물이 차고 넘치는 이유가 무엇인지 대단히 치밀하게 분석한다.
현대를 창출한 ‘계몽적 이성’과 ‘자유’는 삶의 모든 부분에서, 심지어 ‘감정’이 닿는 부분에서까지 ‘합리성’과 ‘자유로움’을 강제한다. 그리하여 오늘날 애인에게 버림받은 사람은 자신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하게 되고(‘합리적/계산적 성찰’의 결과다) 자존감에 심각한 내상을 입게 된다. 자신을 버린 상대방에 대해 윤리적 심판을 내리는 대신에 현대의 여성들은 애인이나 배우자의 사라짐을 자신의 가치와 자존감과 직접 결부 짓는 것이다. 하지만 에바 일루즈는 ‘사랑의 상처’라는 경험은 그것이 아무리 개인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할지라도 지극히 ‘사회적인’ 경험임을 역설한다. 현대사회 그 자체가 제인 오스틴이 살던 빅토리아 시대와 달리 상대방의 태도를 ‘이해’하거나 ‘심판’하는 그 어떤 도덕적 언어도 필요로 하지 않는 레퍼토리를 강제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연애나 결혼 문제에서 현대와 달리 굉장한 ‘합리성’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고작해야 상대방의 재산 정도를 대략 알아보고, 상대방의 인격과 평판을 살핌으로써 ‘배우자’로서 ‘적당한’ 인물인지를 따졌다. 남자든 여자든 상대에게 어떤 특정한 ‘성격’이나 ‘감정’을 요구하는 경우가 없었다. 더구나 개인적 차원에서 배우자를 찾는 일은 거의 없었으며, 그 일은 언제나 가문끼리 혹은 특정 집단을 통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로 접어들면서 사랑의 문화는 성정체성과 함께 크게 변모했다. 이른바 ‘현대문화’는 이상적 사랑이란 일상생활을 초월하는 일종의 권력이 되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성의 평등’과 ‘섹스의 자유’라는 두 가지 정치적 이상이 애정관계의 핵심으로 치고 들어오자, 현대문화는 그때껏 사랑을 감싸고 있던 의례적 경건함과 신비스러운 후광을 벗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거룩하다고 여겨지던 사랑이 이제는 범속한 것으로 변해버렸으며, 그에 따라 남자와 여자의 관계 지형도도 변질되고 말았다.
에바 일루즈는 ‘현대’ 이후 남녀 간의 사랑이 떠안은 이러한 깊은 분열상에 집중한다. 어째서 현대인은 사랑을 하면서 혹은 사랑을 끝내면서 아파야만 하는지를 사회라는 전체 맥락에서, 그리고 역사 변천 과정 속에서 사랑이 보유해온 이중적 측면을 거듭 고찰함으로써 사랑의 본질을 되묻는 것이다. 그녀가 보기에 사랑은 한편으로는 일상생활을 초월해 현실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원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성정체성이 맞부딪치며 권력을 놓고 싸우는 각축장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런 싸움이야말로 현대적 사랑이 갖는 문화적 특징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연구한다는 것은 결코 지엽적인 일이 아니며, 오히려 현대성의 핵심과 기초를 연구하는 일의 중심이라는 견해가 피력된다.
▶ 심리학은 사랑을 혹은 개인의 자아를 어떻게 망가뜨렸는가?
에바 일루즈에 따르면 사회학의 핵심과제는 ‘사회적’ 밑바탕을 폭로하는 것이다. 반면에 현대 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는 심리학자란 무릇 “끊임없이 다양한 형태로 생각하는 자세”를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때 그가 말하는 ‘생각’이란 다분히 개인적인 것, 개인으로 하여금 외부세계의 어떤 경험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무시해도 좋은지 결정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거나 해석하는 방식도 심리학(특히 정신분석학)과 사회학 간 격차가 있다. 지금껏 많은 사회(특히 미국 사회)에서 ‘사랑’은 심리학적 해석대상으로, 나아가 심리학적 ‘치유’의 대상으로만 다뤄져왔다. 그런데 저자가 보기에 ‘심리학적’ 방식은 개인의 감정을 치유하고 자존을 되살리기보다는 개인의 감정을 망가뜨리고 자존감을 죽이는 장치로 곧잘 활용되었다. 특히 여성들에게 그랬다. 에바 일루즈는 사랑이 왜 ‘심리학적’ 치유의 대상으로 퇴화했는지, 어째서 사랑은 특히 ‘여성’을 약자로 만들었는지 그 변화과정을 추적하며 ‘이성애 혹은 이성관계의 밑바탕’을 폭로한다.
에바 일루즈는 이 방대한 저작을 통해 ‘심리학이 지배하는 해석 모델’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면서 진정한 사회학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낸다. 그녀는 인간의 행동방식을 ‘아프리오리’, 곧 선천적으로 타고난 병리적 현상으로 다루는 설명을 의심한다. 예컨대 프로이트 식의 논점을 거부하는 그녀는 “성적 매력이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통해 가장 잘 설명될 수 있으며, 어떤 사랑을 선호하는가 하는 태도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일찌감치 형성된다는 주장을 강력히 내세우는” 프로이트 문화를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른바 ‘프로이트 문화’의 유행으로 인해 내 파트너가 내 부모와 닮았든 말든 그 파트너가 곧 나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이 직접적으로 반영된 결과물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 사실이며, 이로써 ‘사랑의 고통’이란 결국 ‘개인이 자초한 것’이라는 파괴적 결말이 인간의 마음을 장악하게 되었다는 통찰이다.
다시 강조하자면, 사회학은 무엇보다 사회의 틀이 만들어낸 조건에 주목한다. 더 나아가 사회의 틀이 빚어낸 문화 모델이 전략적으로 반응해야 하는 딜레마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갖는다. 에바 일루즈 역시 바로 이런 틀을 만드는 현대적 사랑의 조건을 여러 각도에서 매우 깊이 있게 탐구하고 있다.
▶ 사랑과 섹스의 ‘거대한’ 전환 - 화성 남자 대 금성 여자의 이분법을 넘어서
에바 일루즈는 사랑의 파트너를 고르고 관계를 맺는 ‘낭만적 선택’에 일어난 변화가 경제상황을 두고 칼
이의현
5.0
우리의 감정은 과연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일까. 가장 흔들리기 쉬워, 그만큼 정확히 이해해야 하는 당신에게.
hhyen
4.0
방대하다! 역사 문학 과학 정치 사회 여러 관점으로 바라본 사랑, 흥미로운데 산만한 느낌도 있었는데 그걸 염두하고 에필로그에서 색깔을 명확히 정리한다. p.471 내 연구작업에 바탕이 되어준 아주 중요한 규범적 전제 가운데 하나는 열정과 같은 밀도 높은 감정의 상실이 문화적으로 아주 심각한 손실이며, 감정이 식어버린 탓에 우리가 상처를 덜 입을지는 몰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격정적으로 맺어지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고통이 아프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고통으로 죽는 것은 아니다. 마취를 한 채 기술의 힘을 빌린 자급자족위 꿈이라는 대안이 과연 바람직한지 생각해본다면 아픔은 자연의 산물이며 모순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있음을 확인해주는 자연의 지표다. 아무런 아픔 없이 인생을 헤쳐왔다는 말은 살아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p.326 과학, 그러니까 심리학이든 생물학이든 진화론이든, 과학의 설명모델은 그 본성상 인생을 살면서 겪는 감정체험을 추상적이고 피상적으로 다루는 경향을 보인다. 3,4장이 재밌었다. 5장에선 한병철 에로스의 종말이 떠오른다. 모르는 건 모르는 것으로 둬야지.. 모름의 상태와 그리움의 감정 너무 필요해. 소비와 선택의 행위, 합리와 분석과 해체 작업으로 멸종한 사랑. 낱낱이 밝혀내고 알아내려 하지만 동시에 상상하고 기대하고 실망하는 모순도 익숙하고,, 어쨌든 자유와 평등이 강조되고 우리는 충분히 자유롭고 평등하지만 신자유주의 권력은 더 교묘하게 작동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사랑도.. 우리는 사랑을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랑에 있어서 자유롭고 쿨하다고 생각하지만, 겉으로 아프냐 속으로 아프냐 차이일뿐? 능력주의 사회에서 자유롭게 억압받는 현대인은 사랑도 그렇게 하고 있네.
Flyer
4.5
야심차고 머리를 뒤흔드는 분석과 맥빠지는 결론.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상식이 깨진다. 상식을 깰 수 있는 책은 언제나 위대하다.
김성욱
3.5
신기하게 한국에서 반짝함. 무시할 수준은 절대 아님
일반음식점
4.0
사랑이 아플 때 마저 읽었더니 상처가 머쓱할 정도로 말끔히 괜찮아짐 그래서 괜히 아쉬움 아 아픈 거 쫌 더 즐겨야 된다고요~~~ 그래야 창작이 된다고요~~~ 가끔은 현상을 분석해서 말끔히 문제를 고치기보다는 그냥 엉망인 채로 살고 싶을 때가 있는데 다 나아버림 이게 너드들의 문제야 그리고 역시 남성과 여성 사이의 불평등을 많이 고찰하느라 이성애 중심의 분석이 이루어진 건 아쉬웠다 그렇다면 이성애 외의 사랑은 서로 간에 불평등한 요인이 줄어들어 덜 괴로울까?
MJ
4.5
이 책이 학문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의도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의 아픔을 ‘줄여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수영
4.5
사랑에 대해 이토록 놀랍고 대담한 통찰을 한 이 언니는 그래서 누구랑 함께하고 있을까
누구임다
4.0
고통이 아프기는하나 그렇다고 고통으로 죽는 것은 아니다. 아픔은 자연의 산물이며 모순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있음을 확인해주는 자연의 지표다 열정을 회복하고 싶은데 저의 상상은 사회가 강요하는 틀 안에 갇혀있네요. 앓다 죽을 미디어 속 잘생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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