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소프트웨어이고 통화인 비트코인의 기저에 깔린 우익 정치에 대한 선구적 설명 비트코인의 가격이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2009년 도입된 이래, 비트코인은 폭락과 폭등을 거듭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던 차다. 화폐로 보기 어렵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상거래에 직접 쓰이기도 하고 엘살바도르에서는 법정 화폐로까지 채택했다. 비트코인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혁신할 디지털 통화로 널리 홍보되었다. 그러나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기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놀라울 만큼 극우 정치사상에 의존하는 사이버 자유주의의 한 형태를 지지한다. 《비트코인의 정치학》은 이 암호 화폐의 기반이 되는 경제적·정치적 사상의 상당 부분이 밀턴 프리드먼,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하이에크, 루트비히 폰 미제스에서 연방준비제도 음모론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상에서 비롯한다는 걸 보여준다. 2013년 디지털 문화 전문가들은 비트코인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결제 방식을 점점 더 많이 접하기 시작했다. 이미 적지 않은 디지털 결제 시스템이 등장했지만, 비트코인은 다르다고 얘기했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소프트웨어 암호 기술에 기초했고, 둘째 2013년 내내 비트코인은 미국 달러 같은 공식적인 세계 통화와 비교해 가치가 급상승했다. 그때까지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은 공학자와 그들의 업적을 따르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정치와 경제에 주목하면서 비트코인을 관찰하던 사람들에게는 비트코인의 폭발적 가치 상승보다 더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요컨대 이 같은 신기술이라는 이름으로, 극단주의적 문헌에만 국한되던 극단주의적 사고가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주목을 극단주의적 문헌 밖에서 받고 있었다. 자유연맹·존 버치 협회·민병대 운동·티 파티 같은 극우 집단, 앨릭스 존스나 데이비드 아이크 같은 음모론자, 폭스 미디어 그룹과 일부 우익 정치인처럼 정도가 덜한 우파 대변자들에 의해서만 전파되던 도그마가 이제는 이런 생각들의 기원이나 현대 정치에서 이런 생각들의 기능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은 단순히 이단적이거나 반대 의견이 아니라 우파 이데올로그들이 의도적으로 개발해 공표한 총체적인 세계관의 일부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가 시행하는 것과 같은 중앙은행 업무는 사람들에게서 ‘가치를 훔쳐’ 현재 그 가치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넘겨주는 교묘한 음모다. 세계 금융 체제는 중앙은행의 정책, 특히 지급준비제도로 인해 파산 일보 직전에 있다. 금 같은 ‘경화’는 이런 예고된 붕괴에 무의미한 보호망을 제공할 뿐이다. 비트코인이 이런 극단주의적 생각들을 어떻게 체화했는지를 이해하려면, 비트코인을 두 가지 폭넓은 분석 틀 안에서 살펴봐야 한다. 우선 사이버 자유지상주의라고 일컫는 현상이다. 사이버 자유지상주의를 가장 기본적이고 한정된 형태로 보면, “정부는 인터넷을 규제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사이버 자유지상주의 교리는 진공 상태에서 발전하지 않았다. 사이버 자유지상주의는 현대 정치의 많은 측면에서 확연하게 볼 수 있는 지대한 우편향 풍조에 잘 들어맞는다. 이는 미국에서 보통 자유지상주의라고 부르는 노골적인 정치적·경제적 독트린과 실천, 그리고 분석가들이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좀 덜 노골적인 독트린과의 연결을 검토하면 확실해진다. 이들의 작업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는 인물은 경제사학자이자 경제 이론가인 필립 미로우스키(Philip Mirowski)로,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걸럼비아는 분석 과정에서 미로우스키의 연구에 의존했다. 이 책의 목표 비트코인과 관련해서는 기술·역사 등 언급할 것들이 많지만, 이 책의 관심사는 아니다. 이 책의 목표는 밀턴 프리드먼의 시카고학파부터 연방준비제도 음모론자들의 노골적인 극단주의까지 침투한 이념들에서 비트코인이 기반으로 삼는 정치적·경제적 사상이 얼마나 많이 직접적으로 도출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비트코인을 ‘믿는’ 많은 사람이 자신은 이런 이론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극우에서 도출되는 가정과 개념에 빈번하게 기대고 있다. 현재 비트코인과 그 기반인 블록체인 기술이 제자리를 잡으면서, 그것들은 극우 정치와 관련해서만 의미 있는 요구를 충족시켜준다. 그러므로 이런 정치에 공감하지 않는 이들은 우리 주변의 담론에서 거론되는 정치적 용어와 개념에 의구심을 갖고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을 분명히 직시해야 한다. 자유와 정부 비트코인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와 ‘정부’인데, 둘 다 사이버 자유지상주의자와 정치적 자유지상주자의 수사에서 핵심이다. 이때 ‘자유’는 ‘자유 시장’이라는 표현에서 사용하는 ‘자유’, 즉 정부 규제로부터의 자유와 일치한다. 사이버 자유지상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정부는 본질적으로 소극적 자유를 줄이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자유’롭다는 것은 단지 정부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다. “정부는 인터넷을 규제해서는 안 된다”는 사이버 자유지상주의의 핵심 신념은 정부가 인간의 자유를 장려하는 게 아니라 줄이기 위해 존재한다는 게 사실일 때에만 진정으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우파가 아닌 대부분의 정치 이론에서 정부는 적지 않은 부분에서 인간의 자유를 장려하기 위해 존재한다. 비트코인이란 무엇인가 대부분은 비트코인을 디지털 화폐로 처음 접한다. 비트코인은 전적으로 디지털 ‘객체’다. 다른 어떤 통화로도 거래할 수 있는 것처럼 비트코인을 사고팔고, 거래하고, 다른 통화와 교환할 수 있다. 미국 달러나 유로로 살 수 있는 거래소도 있다. 모든 통화처럼 이 거래가 이뤄지는 환율이 있고, 이 환율은 지속적으로 변한다. 비트코인 ‘가격’을 말할 때, 이는 보통 세계 통화들 가운데 하나와 관련이 있다. 달러를 비롯해 다른 형태의 디지털 화폐처럼 사용자들은 비트코인을 ‘은행’ 같은 계좌에 저장할 수 있다. 비트코인의 경우, 대체로 이는 전형적인 은행이 아니라 이 목적을 위해 특별히 만든 교환소다. 다른 형태의 디지털 화폐와 달리 사용자들은 ‘비트코인 지갑’이라는 소프트웨어 일부를 자기 컴퓨터에서 작동시킬 수 있고, 자신의 비트코인을 온라인 계좌가 아니라 그곳에 저장할 수 있다. 이런 목적으로 설립된 많은 거래소 가운데 하나를 이용해 비트코인을 전송할 수 있고, 다른 사용자의 지갑으로 그 지갑의 소유자가 제공하는 주소를 이용해 바로 보낼 수도 있다. 비트코인 소프트웨어는 단일한 물리적 장소나 하나의 가상 ‘클라우드’ 위치에 존재하지 않는다. 비트코인 소프트웨어는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을 쓴 저자의 2008년 논문 〈비트코인: P2P 전자 화폐 시스템〉을 기점으로 한다. 비트코인을 개발하고 초기에 그걸 채택하는 데 관련된 사람들은 대부분 아주 특수한 기술·정치적 세계관에 오랫동안 엄청난 신뢰를 부여해왔는데, 그 세계관은 명백한 우파 사고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대체로 근시안적인 기술 유토피아니즘과 결합되어 있다. 사토시 나카모토도 비트코인 시스템이 사실상 작동하고 있다는 초기의 선언문에서 인플레이션과 중앙은행에 대한 극단주의적 주장에 기대어 이 시스템의 탄생을 정당화했다. “전통적 통화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것을 작동시키는 데 필요한 믿음이다. 중앙은행이 통화를 평가 절하하지 않는다고 믿어야 하지만, 불환 통화의 역사는 이 믿음의 위반으로 가득 차 있다. 은행이 우리 돈을 보유하고 그 돈을 전자적으로 전환해준다고 믿어야 하지만, 은행은 겨우 일부만 지급준비금으로 보유하고 신용 거품의 물결 속에서 우리 돈을 대출해준다.” 역설적으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이 ‘평가 절하’에 안전할 것이라는 자신의 신념이 오류투성이인 통화주의적 인플레이션 개념에 근거를 두고 있거나, 비트코인 자체가 신용 거품과 부분적인 지급준비금 예치를 부채질할 수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화폐란 무엇이고, 그렇다면 비트코인은? 비트코인 옹호자들은 비트코인을 새로운 형태의 화폐로 홍보한다. 화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