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슈킨에서 솔제니친까지
위대한 거장들이 초대하는 문학과 음식의 향연
석영중 교수는 대중적인 눈높이로 내용의 심도까지 담아낸 저서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와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를 통해 독자들이 러시아 고전과 더욱 친숙해지는 계기를 마련하고, 문학과 신경과학을 접목한 저서 『뇌를 훔친 소설가』를 통해 문학 연구의 새로운 길을 제시해 왔다. 이번에는 문학작품 속에서 다루어지는 음식에 주목하여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를 집필했다.
먹으면 살고 먹지 않으면 죽는 사람에게, 먹거리가 귀한 시대든 흔한 시대든 음식은 언제나 생명과 삶의 건강한 토대가 되어주는 제1조건이다. 다른 동물이 먹는 ‘먹이’가 아니라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생명을 유지시켜 생존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여 문화를 형성하고 삶을 누리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식은 역사 이래로 지금까지 사람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관심사로 미각은 물론 흥미를 끈질기게 자극해 왔다. 작가들도 그 같은 음식의 유혹 앞에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은 푸슈킨부터 솔제니친까지 러시아 문학의 거장들이 음식을 어떤 코드와 상징으로 끌어들여 자신의 문학 세계를 풍성하게 일궈냈는지, 그를 통해 궁극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는지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음식으로 연결되는 문학작품, 작가의 삶, 작가가 살았던 시대를 다각도로 조명하여 음식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역사와 문화를 형성하고 문학 속에 상징적으로 형상화되어 불멸의 기호로 독자를 사로잡아왔는지도 함께 목격할 수 있다.
러시아 문학을 넘나들며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인간의 혀와 위장
음식, 러시아 대문호들을 매혹한 또 다른 언어
러시아 작가들이 음식을 또 다른 언어로 선택한 것은 음식과 그것을 먹는 행위의 놀랍고도 흥미로운 속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음식과 먹는 행위는 두 극단의 상징적인 의미를 동시에 끌어안으며 그 스펙트럼을 거의 무한대로 넓혀간다. 일단 음식은 물질인 동시에 물질을 초월하여 먹는 사람의 심리와 인격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하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교감을 가능케 하는 언어이기도 하며, 특정 공동체의 가치를 대변해 주기도 한다.
먹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가장 기본적인 의미의 먹기가 배설과 연결되면 누구도 예외 없이 인간 전체를 ‘먹고 싸는’ 순환의 생물학적인 고리로 족쇄처럼 옭아매지만, 살아 있다는 것이 위대한 일이듯이 먹는다는 것도 가장 위대한 행위로 거듭날 수 있다. 인간에게 부여된 오감으로 음식을 향유하는 것은 단순한 쾌락의 충족에 그치지 않고 신의 축복이자 살아 있는 동안에만 누릴 수 있는 생명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이 궁극에 이르면 불교의 발우 공양, 이슬람의 할랄, 그리스도 최후의 만찬 등 종교 의식으로 연장되어 가장 낮은 지상의 행위가 가장 높은 천상의 행위로 이어진다.
이처럼 음식은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극적인 반전을 예비하면서 위대한 작가들에게 문학적인 영감을 제공했다. 가령 푸슈킨은 표트르 대제의 서구화 정책 이후 ‘남의 것’으로 들어온 프랑스 요리를 포용하여 유럽의 문학을 넘어서고 가장 러시아적인 문학을 창조했다(『예브게니 오네긴』). 이에 비해 톨스토이는 프랑스 요리에 대한 반감을 숨기지 않고 러시아 상류층의 도덕적인 타락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이용했다(『안나 카레니나』). 곤차로프는 러시아 음식 백과사전을 방불케 하는 『오블로모프』를 통해 죽음에 이르는 요리를 선보이며 모든 인간은 죽음 앞에 무력하다는 철학을 비관적으로 전달했으며, 고골은 ‘뱃속의 악마’를 어찌하지 못하는 자신을 『검찰관』의 식충이 흘레스타코프에게 투영하여 식욕과 죄의식 사이에서 스스로 죽어갔다.
체호프는 러시아 사람이라면 누구나 먹는 음식(사워크림 등)으로 끊임없이 범속한 일상을 가슴 시리게 환기한 반면(「국어 선생」,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도스토예프스키는 그 음식(빵)을 생명의 양식이자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초월시켰다(『카라마조프가의 형제』). 불가코프는 불타지 않는 원고와 불타는 레스토랑을 대비시켜 소비에트 시대를 살았던 문학의 순교자들을 기렸고(『거장과 마르가리타』), 파스테르나크는 혁명이나 조국이나 역사 같은 거창한 대의가 아니라 평범한 가정식 백반과 마가목 열매로 닥터 지바고의 시혼을 지폈다(『닥터 지바고』). 무엇보다 솔제니친은 어떤 것도 인간을 완전한 짐승으로 전락시킬 수 없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이 승리하여 신으로 승화할 수 있는 고결한 정신을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의 위대한 식사를 통해 증명했다(『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맛있게, 기쁘게, 감사하게 나누어 먹는다면
세상 모든 음식이 삶을 아름다운 잔치로 만들어주는 미식이다!
이 책은 유럽을 향한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 표트르 대제 이후부터 러시아 혁명과 내전을 거쳐 소비에트 국가가 자리 잡고 신경제정책이 일부 도입되기까지 역사의 흐름에 따라 ‘남의 음식’ vs. ‘나의 음식’, ‘육체의 양식’ vs. ‘영혼의 양식’, ‘옛 음식’ vs. ‘새 음식’ 등으로 변화한 식문화와 음식, 그리고 그 음식의 문화적인 기호를 상징적인 코드로 형상화한 작가와 작품에 대해 꼼꼼하게 짚어본다. 그리고 우리 일상의 식생활과 음식으로 되돌아온다. 러시아 대문호들에게 음식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자기 작품 속에서 그토록 음식과 그것을 먹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고자 했을까?
저자는 ‘미식’이라고 결론짓는다. 이때 미식은 꼭 맛있고 희귀하고 값비싼 음식을 탐닉하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이든 맛없는 음식이든, 흔해빠진 음식이든 희귀한 음식이든, 건강식품이든 불량식품이든, 육식이든 채식이든 음식 자체와는 상관없이 그 음식을 먹는 태도가 ‘미식’을 결정한다. 미각을 충족하는 데 집착하거나 이념을 부여하지 않고 무엇이든 정성껏 요리하여 맛있게 먹고, 감사하게 먹고, 나누어 먹는다면 세상 모든 음식이 미식이다. 음식 본유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미식만이 삶을 아름다운 잔치로 만들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