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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1. 서론: 전 지구적 근대성2. 전 지구화를 역사적으로 사고하기3. 전 지구성의 개념적 장(들)4. 유산들: 전 지구적 및 식민지적 유산들5. 대안들?: 중화인민공화국과 전 지구적 남반부6. 결로니 전 지구화 이후에 미래는 있는가?주제어 설명주옮긴이의 글찾아보기<로컬리티 번역총서>를 펴내며

Description

미래를 서로 다르게 사고할 수 있는 전 지구화 개념이란? 우리는 늘 현실을 살아간다. 그래서 어떤 일을 시행할 때 현실을 반드시 고려한다. 그러면서도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 물론 결과는 알 수 없을지라도. 그래서 이 책은 서두에서 “세상은 통합되어 있고 그것을 지탱하려고 공통의 조직적 구조와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있는가, 아니면 낯설고 다양한 크기로 파편화해 있으며 내부가 여러 갈래 방식으로 분열되어 있는가? 세상은 비록 공공복지와 번영을 폭넓게 실현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것이 더욱 확장된 미래를 추구하는가, 아니면 수십 년 사이에 현재의 정치경제학적 조직을 지탱해준 자원들을 완전히 동내버림으로써 생명력을 잃고 혼란에 빠져 허우적거릴 것인가? 미래에는 평화와 평등과 민주주의를 박탈당한 수십억 명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협치 체계를 선사할 것인가, 아니면 현재 세계 창조에 어느 정도 근본적 토대로 작용한 식민주의·국민국가·초국적 자본 등이 서로 수렴하면서 상승 작용하는 가운데, 이미 개인과 사회를 조직적이고 문화적으로 형성하고 재형성할 기술공학적 능력을 밑천 삼아 유례없이 강력한 권력과 물질적 부의 독재를 자행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가?” 지은이의 서두를 보면 긍정적인 면과 우울한 면이 동시에 표출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더욱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한층 복잡한 양상을 띠어 결국에는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꿈꾸지 않을 수 없다. 즉 1990년대에 시작된 전 지구화가 보편화하는 과정은 근대성―자본주의 근대성―이 전 지구적이 되고, 물질적이며 이념적인 실천이 보편화되는 과정이다. 동시에 근대성의 보편성 주장을 부정하는 것을 포함하며 전개되는 이중과정으로 볼 수 있다. 전 지구적 근대성은 근대성의 과거 자체로부터 해방을 비롯하여 과거로부터 전 지구적 해방을 약속할 것이다. 그러나 그 해방은 경제적·정치적·사회적 및 문화적 식민지의 낙인을 포함하고, 그것들에게 자신의 새로운 근대성을 첨가하는 한편 여전히 과거의 식민지적 불평등을 영속화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전 지구화를 일컬어 그것이 현재를 물질적이며 도덕적으로 개선하는 미래의 지침이라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욱더 많은 자원을 소비하고 있으며, 그것은 비록 현 세대의 끝 무렵은 아닐지라도 다음 세대에는 순식간의 현실로 자원 고갈이라는 악몽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우리는 세상 구석구석까지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가 확산되는 것을 찬양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대개 그러하듯, 이런 식의 전 지구화는 모든 일의 근본 가치와 원리를 제국의 도구(서구적 가치)로 둔갑시켜 손상시키고, 구식 제국주의와 다름없다는, 전 지구적으로 널리 퍼진 인식에 제법 타당성을 제공한다. 이러한 인식 자체는 심지어 세계가 전 지구화하고 있다는 관념 자체를 부정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러므로 전 지구화의 혼란을 극복하려면 세계의 재구조화가 필연적으로 요구된다(그런데 여기에서 비극은 오늘날 전 지구화를 두고 평론하는 이들이 이러한 결론을 널리 공유하지 못 하고 있다는 데 있다. 심지어 과거에 전 지구화를 가장 앞장서서 정당화하던 많은 전직 좌파 급진주의자들조차 바로 그 세계 재구조화 노력의 실패로 말미암아 약속을 저버린 자로 낙인찍혔다). 여기에서 저자가 그 처방의 하나로 전 지구화는 현재 시장과 민주주의 힘을 신자유주의적 해방으로 말미암아 보장받는 무제한의 전 지구적 성장 과정이 아니라, 훨씬 더 냉철하게 말하면 전 지구적 문제 생성의 과정이다. 심지어 전 지구화에 자신들의 신념을 거는 자들에게조차도 현재의 전 지구주의(globalism)가 혼돈으로 일탈하는 것을 방지하려면, 과거에 시행된 많은 규제 양식의 특징을 유지하는 새로운 규제 원리로 나타나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즉 진화론자 혹은 퇴보론자의 사고를 보존하는 것). 결론적으로 지은이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면서 이 책을 끝낸다. “나는 전 지구화(또는 전 지구성)는 어떤 일선적 진화가 아니라, 국면적 현상을 표현하고 그것이 표현하는 모순적 현상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현재의 국면―내가 근대성의 전 지구화 또는 전 지구적 근대성이라고 부르는 것―에 관한 특수한 고찰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시간적 전망에서 전 지구적 근대성은 종말인 동시에 시작이다. 그것이 종말인 이유는 지구상에서 유로-아메리칸 팽창(물질적 팽창이 아니라 문화적 팽창)이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한 역사적 전개 과정의 정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종말이기도 하다. 다름 아닌 오로지 유로-아메리카만을 위해서 지구를 독점적으로 전유한 결과 근대성을, 현재 한 통합체로서 전 지구화의 무대이면서도 부분으로서 지구를 표시하는 차이들의 근대성으로 가져갔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전 지구화 자본주의 근대성 안에서 전 지구적 근대성에 관하여 말한다는 공통성을 가진다. 그럼에도 전 지구적 근대성은 탈근대성 또는 역사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을 표현하는 궤적들 위에서 새로운 사회에 관한 기획의 수립을 개시했다.” 여기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항상 살아가는 당대의 전 지구화 개념의 퇴보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야만 미래를 서로 다르게 사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개념으로서 전 지구적 근대성은 궁극적으로 그와 같은 인식에 이르도록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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