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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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나는 숨을 죽이고 눈앞에 펼쳐질 이상하고 낯선 세계를 기다린다.” “까만 화면에 읽을 수 없는 영어 글자들. 띵, 부팅음이 들리고 한참을 기다리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윈도우 98’의 로고가 뜬다. 화살표 모양의 마우스 커서는 모래시계로 변했다가 다시 화살표로 변하기를 여러 번. 칙칙한 회색 바탕이 창을 가득 채운 모니터 속의 세계. 나는 숨을 죽이고 눈앞에 펼쳐질 이상하고 낯선 세계를 기다린다.” 69번째 아무튼 시리즈는 김초엽의『아무튼, SF게임』이다. 동네 아이들 중 처음으로 컴퓨터를 갖게 된 일곱 살의 김초엽에게 컴퓨터는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였다. 낯선 규율과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복잡한 세상에 비해서 모니터 속 세계는 명쾌하고 단순해 보였고 무엇보다 편안하고 안락했다. 그는 그렇게 그 세계로 빠져들고, 이후「바람의 나라」에 접속해 친구와 함께 주술사와 도사라는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의 조합으로 게임을 시작한 이후 온갖 게임 세계를 돌아다녔다. 그때는 몰랐다. 이 여행이 이렇게 오래 가리라곤. 『아무튼, SF게임』은 김초엽 작가가 오랫동안 사랑해왔던 가상세계에 대한 애정 고백이다. 어렸을 때 게임 속 세계가 모니터 안에 있다고 생각했던 그는 이제 자신이 경험했던 그 (게임의) 세계들이 현실 위에 층층이 포개져 있다고 믿는다. 여기가 엄밀한 현실, 저기가 허황된 허구인 것이 아니라, 또는 게임 속이 진짜이고 여기가 얼른 로그아웃해야 할 현실인 것이 아니라 그 여러 세계들은 얼마든지 겹쳐졌다가 또 흩어질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 믿음 속에서 지금까지 플레이해왔던 게임 속 세계들이 자신을 왜 사로잡았는지, 저마다 어떻게 다르게 매력적인지, 자신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차근차근 풀어놓는다. _“이 낯선 세계들은 모두 달랐고, 각각 새롭게 생생했다” 어린 시절 온갖 게임 세계를 돌아다니던 작가는 갑자기 현실로 내팽개쳐졌다. 입시 준비. 이후 바쁜 대학 생활에 돌입하면서 이제 게임은 졸업했다고 생각했지만… 휴학이라는 변수가 생긴다. 원대한 휴학 계획에 비해 당장 할 일은 없는 기묘한 상황에서 작가는 「보더랜드」를 만난다. 이후 그는 다시 게임의 세계로 빠져들고 정신을 차려 보니 한 학기를 통째로 날려버린 한심한 상황. 그해 겨울 작가는 라스베이거스를 찾는다. 명목은 과학관 탐방이지만 「폴아웃 뉴 베가스」 의 게임 속 장면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다. 게임 속 모하비 황무지와 후버댐은 실제와는 많이 달랐다. 하지만 그는 분명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 장소들을 언젠가 목격했을 뿐만 아니라 아주 생생하게 경험했던 것 같았다. 그는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 게임으로 날려버린 휴학 기간이 그다지 아깝지 않았다. 게임에만 빠져 살았던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게임이 삶에 “층을 한 겹 더해주는 것이라면, 그래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장소에 대해서도 직접 겪고 온 것 같은 감각을 선사하는 것이라면”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거리 위에 불쑥 나타나기 시작한 포켓몬들처럼, 그 여러 세계들은 얼마든지 이 위에 겹쳐졌다가 또 흩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_가상세계 속에 심긴 공들인 거짓말, 비현실을 현실로 믿게 만드는 힘에 관하여 『아무튼, SF게임』은 비디오게임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가상세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실제로’ 플레이했지만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의 독특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다. 현실감을 얻기 위해 나름의 질서를 정교하게 구축하면서 내적 정합성을 추구하는 게임의 세계관은 작가를 매혹시킨다. 비현실을 현실로 믿게 만드는 그 힘은 상상력 혹은 창작의 다른 이름이며 그 힘 속에는 지금 여기 현실의 삶을 더 생생하게 느껴지게 하는 힘이 있다. 『아무튼, SF게임』은 그렇게 “가상세계 속에 심긴 공들인 거짓말”, 비현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세계에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상상력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게임 속에서 낯선 공간을 통과하고 횡단하며 내달린다. 때로는 멈추어 서서 여기저기 흩어진 이야기 조각을 수집하고,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자판기에서 쨍그랑 떨어진 캔을 줍고, 부서진 건물 파편 틈을 들여다본다. 문득 내가 무작정 나아가다가 놓친 것이 이 세계에 얼마나 많은지를 깨닫고, 한편으로는 아직 발견할 이야기가 더 남아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다 소설을 쓸 때 한 번씩 그 즐거움을 되새겨본다. 생생함, 정말로 이 공간에 내가 존재한다는 느낌, 그것이 내 이야기를 읽는 독자에게도 조금쯤은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_ SF 작가의 특별한 창작 노트 작가는 이런 이야기와 더불어 게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SF 게임의 역사에서 시작해 「보더랜드」, 「폴아웃」, 「바이오쇼크」, 「엑스컴」, 「매스 이펙트」 같은 걸작 게임들의 제작 배경에 관한 이야기를 비롯해 게임 메커니즘, 스토리텔링의 방식, 현실과 허구, 세계성에 관한 이야기 등등 SF 게임에 문외한이라도 조금만 모험심을 발휘한다면 충분히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준다. 작가는 책에 소개된 게임들이 낯설든 익숙하든, 그 세계들을 구성하는 마법을 새롭게 발견하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에게는, 마침내 약간의 망설임과 함께 그 문을 여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