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닥터 팽의 위조기억말살기! “당신의 기억은 안전합니까?” 제1회 자음과모음 문학상 수상작 오즈의 닥터 작가는 대단히 정밀한 문장으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면서 ‘나’의 범죄가 현실 층위에서 성립될 수 없는 알리바이를 빚어내고 있다. 현실이 더 이상 객관적 실재일 수 없는 시대에 걸맞은 소설 미학을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다. - 황광수(문학평론가) 제1회 자음과모음 문학상 수상작 『오즈의 닥터』 개정판 출간 지난 2009년 국내 장편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해 제정된 자음과모음 문학상의 첫번째 수상작인 안보윤의 『오즈의 닥터』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오즈의 닥터』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화하는 치밀하게 의도된 문장과 흥미로운 사건 전개, 흥미 있는 캐릭터의 등장을 통해 어떤 것이 사실이며 허구인지, 또 기억은 실재하는 것인지 꾸며낸 것인지 등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현실과 허구, 실재와 환각이 서로를 배반하면서 그 자체로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가는 작가의 세련되고 현란한 구성 능력을 심사위원들로부터 높이 평가받았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고 변형시키면서 그것을 다시 재배열하는 작가의 능력은 이 소설에 생명을 불어넣는 가장 큰 힘이다. “당신의 기억은 안전합니까?” ― 진짜야, 가짜야? 환각의 힘으로 진실 무너뜨리기! 『오즈의 닥터』는 안보윤 작가의 두번째 장편소설로 환상과 실재의 경계를 주제화하면서 현란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나’는 가상의 정신과 의사인 ‘닥터 팽’을 만나 상담과 진술을 한다. ‘닥터 팽’은 ‘나’의 카운슬러이다. 그러나 갈수록 ‘닥터 팽’의 외모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진술은 변형되고 번복된다. 뜻하지 않은 시간과 장소에서 ‘나’의 앞에 불쑥불쑥 나타나는 ‘닥터 팽’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나’의 심리적 분신 또는 허상임이 분명해진다. ‘닥터 팽’에게 상담을 하면서 내뱉는 ‘나’의 진술은 진짜 같은 허구이다. ‘나’가 구체적으로 회상했던 어머니, 누나, 동생은 실제로 존재한 적이 없었고 ‘나’의 기억에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이 허구의 진술은 소설 속에서 끝없이 변형되고 번복됨으로써 주인공은 끝내 몰락하게 된다. 그에 따라 모든 진실 역시 몰락하고 만다. 이런 환상과 환각들은 우리에게 기억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자네가 믿고 싶어 하는 부분까지가 망상이고 나머지는 전부 현실이지. 자네가 버리고 싶어 하는 부분, 그게 바로 진실일세.” 이 구절은 누구나의 무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는 좋은 것만 기억하는 인간의 습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위조된 기억, 날조된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우리의 기억은 과연 안전할까 하는 의문이 들게 만든다. 파렴치한 이야기꾼의 뻔뻔스러운 이야기 『오즈의 닥터』는 현실과 허구, 실재와 환각이 서로를 배반하면서 그 자체로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가는 독특한 구성의 소설이다. 작가는 이상의 ‘거울 속 나’나 황병승의 ‘주치의 h’처럼 자신의 병리성을 진단하면서도 그러한 병리적 구조 속에 스스로를 밀어 넣음으로써 의사―환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분열증적 주인공을 등장시켜, 앞뒤도, 전후도 맞지 않는, 한도 끝도 없는 거짓말을 풀어놓는다. 소설의 초반부에 펼쳐진 이 황당한 거짓말은, 언뜻 소설 후반부의 진짜 이야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작가는 익숙한 인과적서사를 배반하는 과정, 즉 이 거짓말이 저 거짓말로 대체되고, 다시 사실이 양념처럼 더해지는 허구의 직조 과정 그 자체를 하나의 서사로 완성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