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기억은 시간상으로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그것을 지금 이 시점으로 불러들여 회상해야 한다는 점에서 현재와 과거의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기억은 일단 몸에 기록됨으로써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몸은 과거의 흔적들을 저장하고 있는데, 음식의 맛을 몸이 기억하는 것이 그 예이다. 어렸을 때 어떤 음식을 먹고 불쾌하거나 고통스러운 경험을 했던 사람은 다음부터 그 음식을 거부하기 쉬운데, 몸에 기록된 기억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기억은 사후에 구성된다고 말해야 옳은지 모른다. 기억은 언제나 회상의 형태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기억은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부대끼면서 껴안고 살아야 하는 삶의 자세이며 실존적 태도이자 존재론적 질문이다.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들듯이, 혹은 수학의 방정식을 풀듯이 간단히 기억을 잠재우거나 해결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과거의 기억이 우리의 몸에 깊숙이 각인되어 있으며, 기억이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