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정영문은 소설집 《검은 이야기 사슬》 을 통해 전통의 우리 소설에서 만나기 힘든 인상적인 환상과 관념의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90년대 말 한국 문단의 가장 개성적인 신인으로 주목받아왔다.
이번에 펴낸 신작 중편소설 《하품》에서 그는, 삶 그 자체에 대한 절망과 회의에서 솟아나는 권태를 앞선 작품들에서 보여준 어둡고 섬뜩한 방식이 아니라, 삶의 일상성을 모욕하는 듯한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마치 농담을 하듯 유희적으로 그려 보여준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나'와 '그'는 타인과 세상에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에도 관심이 없다. 자신이 아무런 필연성이나 연관의 고리 없이 이 세상에
던져졌다고, 자신이 태어난 것을 치욕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모든 것은 무의미할 뿐이다. 삶은 쳇바퀴 돌듯 되풀이되는 따분한 일상일 뿐이다. 그 권태 속에서 존재는 비루해지고 존재의 의미는 희미해지고, 존재는
서서히 소멸해간다.
나와 그는 서로를 무시하고 둘이 함께 있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할 정도로 서로를 하찮게 여기지만, "어떤 때는 우리가 서로 구별이 안 갈 정도로, 한 사람으로 여겨지기까지 했어, 우리의 비루함이,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어주었던 비루함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었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조리에 닿지 않는, 서로를 무시하는, 상대방의 무시에 한술 더 뜨는 모욕으로 기어코 되갚는 대화 같지 않은 대화를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불가피한 운명 같은 삶을 그냥 견뎌내려 할뿐이다
작가 정영문은 1964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1996년 [작가세계]에 장편소설 [겨우 존재하는 인간]을 발표하며 등단했다.작품으로는 장편소설 [겨우 존재하는 인간]
소설집 [검은 이야기 사슬]이 있으며 1999년 12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