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다녀갔듯이

김영태 · Poem
1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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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태는 올해로 일흔 살이 된 시인이자 화가, 음악·무용 평론가다. 서양 무용사와 음악사를 꿰뚫는 그의 박학함이 책 곳곳에서 보인다. 문학평론가 김인환이 "미학추구자, 김종삼 이후 문단의 마지막 보헤미안"이라 부른 그는, 스스로도 "아름다움을 훔치는 사람" "사시장철 춤 보러 다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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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시인의 말 제1부 누군가 다녀갔듯이 정적 옛날 현대문학사 나의 뮤즈에게 육갑(六甲) 떨면 어떠리 5인조 밴드 허행초(虛行抄) 시상식 미지 팔 이 시집(詩集) 캐주얼 철근꽃 얼룩 깡 무심(無心) 장구 치는 여자 풍경인(風景人) 세상은 어슬렁거려야 제2부 뒷모습 퇴물들 잡초가 우거진 오솔길을 지나서 염화미소 불타는 마즈르카 야상곡(夜想曲) 물갈이 정처 패러디풍으로 찍새 늦저녁 다 버렸으니 늘그막에 제3부 신작로 처용단장(處容斷章) 표지 헤르만 헤세 박물관 눈썹 연필(鉛筆)로 기다랗게 소금 한줌 장구 소리 태평무(太平舞) 흑우(黑雨) 암스테르담 모차르트 늦추위 조용하다 꿈 진주 요화무(妖花舞) 제4부 작은 것 미뉴에트 초콜릿 에스파냐 다리굿 괜히 왔다 간다 멀리 사라지는 물방울들 화장실 웃긴다 소묘집(素描集) 나무도장 리옹역(驛) 에서 멍청한 레옹 눈 오는 양말 과꽃 길이 만나는 곳 작은 연못 몽(夢) 해설 : 사랑의 그늘 - 김인환

Description

김영태는 올해로 일흔 살이 된 시인이자 화가, 음악·무용 평론가다. 서양 무용사와 음악사를 꿰뚫는 그의 박학함은 그의 저서 곳곳에서 보인다. 피의 불가피한 기질 때문인지 하염없는 예인(藝人)의 길을 걷고 있는 그의 아호는 초개(草芥)로, 자신을 ‘지푸라기’라고 한껏 낮춘다. 문학평론가 김인환이 “미학추구자, 김종삼 이후 문단의 마지막 보헤미안”이라 부른 그는, 스스로도 “아름다움을 훔치는 사람” “사시장철 춤 보러 다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시와 춤과 그림을 동시에 작업하는 과정에서 춤과 그림은 그의 시의 내용이며, 시와 춤은 그의 그림의 내용이다. 그의 시는 대부분 아름다운 대상을 순간의 떨림 속에서 태어난다. 시인은 일흔부터라는 말을 읽은 기억이 난다. 어느새 나는 종점에 와 있다. 여기까지 와서 보니 裝飾이었다. 조그맣게 헐겁게 지나쳤던 線들이 이 끝에 묻어 있다. ―『누군가 다녀갔듯이』, ‘시인의 말’ 전문 김영태의 시는 모두 자기가 자기에게 건네는 자기와의 대화이다. 김영태는 자기 안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아픔과 기쁨, 그리움과 아쉬움을 자기 자신에게 드러내 보여준다. 그의 시들은 하나같이 자기의 눈앞에 전시되는 자기의 이미지들이다. 김영태는 시는 말로 된 그림이라는 오래된 시론을 현대적으로 실천하는 시인이다. 그는 살기 어려운 삶을 견뎌내며 춤과 그림 그리고 무엇보다 시를 통하여 살아갈 용기를 확인한다. 사라진 모든 사랑은 영혼의 시련이 되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 하나로 그는 언제나 새롭게 출발한다. 김영태는 늙을수록 젊어지는 시인이다. 그의 가난과 고독은 내면적 풍요의 자리가 된다. 그의 고독한 꿈은 내밀한 존재의 중핵에서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그의 시는 몽상적이지만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어떤 강인함을 지니고 있다. 이 강인함이 개인적인 이미지를 고독한 영혼들 모두의 이미지로 승화시킨다. 그의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겉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내밀한 삶이 얼마나 경이로운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는가를 알게 된다. 김영태는 내밀한 삶의 자리를 음지라고 부른다. 음지식물은 더 고개 숙여 정적을 배운다 참으로 정적은 수다스럽지 않으니 고개 숙인 만큼 제 값도 있는 법이니 ―「정적」 부분 김영태에게 아우라를 환기하는 것은 동물보다는 식물이고 사건보다는 풍경이다. 김영태가 자주 하는 외국 나들이는 무용제와 음악회에 참가하기 위한 것 이외에 이국의 풍경을 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암스테르담 모차르트」에서 둑길은 음보가 되고 늙은이는 아이가 되는데 이러한 이미지를 한국에서 얻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 경험이 특별해서는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특별한 경험도 익숙한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나그네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시 쓰기의 첫걸음이 된다. 音譜처럼 가도 가도 이어지는 둑길 개도 가고 자전거 바퀴살 눈부시다 극장에 온 정장한 바이킹들 앞에서 디딤무용단이 대북을 때린다 오리 등에 탄 늙은이가 아이처럼 水路 위를 흘러가는데 ―「암스테르담 모차르트」 부분 이미지는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다. 의미에 종속된 언어나 교훈을 목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이미지를 만들지 못한다. 이미지의 가치는 일상 언어의 의무에서 벗어난 곳에서 실현된다. 스페인 빌바오 마을 강둑에 철근으로 만든 지금 막 티타늄 꽃이 활짝 핀 曲線 건물이 서 있다 구겐하임미술관은 밤하늘 별 하나가 떨어지면서 제 몸 수치심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있었는데 ―「철근꽃」 부분 그의 시에서 인간은 풍경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 풍경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고 물건들은 풍경의 주변이 아니라 풍경의 중심에 존재한다. 「철근꽃」이란 위의 시에서 철과 꽃과 별은 서로 통하여 작용한다. 꽃이 사람의 눈길을 피하듯 건물은 부끄러워하며 별의 시선을 피한다. 「눈 오는 양말」에는 김영태가 바라는 세상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하늘이 고요해지면 눈이 내린다 슬픔이 조금 비어 있을 때도 그 언저리에 눈이 내린다 양말에도 눈이 내린다 촛불을 켜고 童話처럼 그들은 살다 간다 말없이 아끼고 그냥 말 없이 이 시에는 마을의 과거나 미래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풍경에는 과거나 미래가 없다. 꿈의 이미지들은 시간을 모른다. 하늘도 고요하고 들끓던 슬픔도 잔잔해진다. 이것은 축복의 순간이다. 과거와 미래를 잊고 오직 이 축복의 순간 속에서 마을 사람들은 그냥 말 없이 서로 염려하고 보살피며 살 뿐이다. 눈은 하늘과 마을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축복의 통로이다. 이 우주적 드라마는 말이 없고 따뜻하고 부드럽다는 점에서 모성적이다. 「누군가 다녀갔듯이」에서 김영태는 삶과 죽음의 무거운 변증법을 가벼운 풍경으로 바꾸어 놓는다. 하염없이 내리는 첫눈 이어지는 이승에 누군가 다녀갔듯이 비스듬히 고개 떨군 여기서 죽음은 따뜻하게 해주고 환하게 해주는 눈처럼 풍경의 일부가 된다. 은밀하게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의 다정함이 죽음의 중력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준다. 삶은 다녀가고 다녀가는 무수한 만남과 헤어짐으로 구성되어 있다. 죽음도 우리 안에서 번갈아가며 쉬다가 다시 태어나는 리듬의 일부이다. “비스듬히 고개 떨군” 무력한 영혼의 내면에는 죽음을 초월하는 우주적 리듬이 흐르고 있다. 절제가 풍요로 전환되는 데 이 시의 매력이 있고 인간의 신비가 있다. 인간은 집요하게 존재한다. 존재하면서 인간은 무엇인가 만들어낸다. 무엇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만들어낸다. 시대와 환경을 탓해보아야 인간은 끝내 자기가 만든 자기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다. 마케팅 사회의 언어에는 자기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종의 하부언어로 말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양지를 비켜서서 음지에 머무르며 유용한 언어와는 다른 언어를 자기 안에서 끌어내야 한다. 삶과 시 사이에서 김영태가 걸어온 역정은 새로운 언어를 말하고 싶어 하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의 전범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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