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 뒤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공포
공포나 호러, 미스터리류의 소설은 국내에서 그리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장르는 아니지만, 부침이 심한 여타 장르와는 달리 작지만 확고한 독자층을 갖고 꾸준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한때는 문학성이나 주제의식 같은 것은 좀 떨어지지만 한여름 무더위를 잊기에는 딱 좋은 으스스한 재미를 추구하는 계절성 2류 소설 같은 장르로 취급 받던 때도 있었지만, 최근 들어 판타지와 미스터리 문학이 확고한 정체성을 확립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해외 문단의 걸작들이 속속 소개되고 있음은 물론 국내 작가들을 통해서도 상당한 수준의 장르 문학 작품들이 특유의 긴박감과 재미를 앞세워 새로운 독자층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스튜디오 본프리에서 금번 출간한 (이하 <콜링>)은 장르문학의 이런 새로운 조류의 최선단에 위치하고 있는 작품이다. 책장을 처음 넘기면 나오는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독백, 그리고 곧이어 오감을 강렬하게 자극하는 끔찍한 시체 처리의 현장 묘사… 그러나 이런 도입부와는 달리, 이 작품은 독자들의 혐오감을 자극하는 것만으로 재미를 노리는 말초적인 소설과는 그 궤를 달리 하고 있다. 이 작품의 진정한 재미와 가치는 이런 의외성에서 시작된다.
특수청소업―이름만 들으면 뭔가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끔찍한 자살이나 토막살인 현장, 오랫동안 방치되어 부패된 사체 등을 깨끗이 청소하는 직업. <콜링>은 누구라도 기피할 법한 그런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 주인공 준야와 레이의 삶 속에 어느 날 갑자기 틈입해 들어온 기괴한 사건을 다루고 있는 본격 호러 미스터리 소설이다.
다니던 회사가 도산하는 바람에 실업자가 된 준야와 정화조 청소 일을 하다 유독성 물질 때문에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레이는 아무도 돌아봐주지 않는 인생의 끝자락에서 특수청소라는 새로운 사업을 개발하여 나름 괜찮은 실적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조각나고 문드러진 시신을 치우고 핏자국과 악취를 제거하는 일만으로도 멀쩡한 정신으로 해나가기가 쉽지 않은데, 준야는 어려서부터 죽은 사람의 혼령을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까지 갖고 있어서 이 일이 보통 고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준야는 워낙 소극적인 성격이라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보다는 이 일을 더 편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난이도 초A급 청소―즉 엄청나게 끔찍하고 더러운 상태의 자살 시신과 그 흔적의 청소 의뢰를 받아 처리한 날부터 준야는 그 여자, ‘쓰시마 에미’의 원혼에 시달린다. 죽은 후 두 달이나 되는 시간 동안 그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채 욕조 안에서 천천히 녹아 내려간 그녀의 비참한 죽음에, 그리고 자신의 악몽 속에 나타난 얼굴 없는 그녀의 원혼이 전해 온 ‘벌레’라는 단어에 뭔가 비밀스런 사연이 얽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준야는 우선 완전히 썩어 문드러져 알아볼 수조차 없었던 그녀의 얼굴과 신원을 확인하기 시작한다.
자살한 집에서 확보한 여권에 붙어 있는 굉장한 미인으로서의 쓰시마 에미, 생전의 그녀가 활동했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버 포레스트’의 사람들이 증언하는 지독히도 소심하고 말수가 적었던 평범한 외모의 쓰시마 에미, 조사가 계속되어 가면서 드러나는 충격적인 진실과 결말…. 고어한 장면 묘사와 끊임없이 공포심을 자극해 오는 장치들 사이로 지독히도 외롭고 처절했던 쓰시마 에미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죽음으로부터 그녀의 삶을 추적해 가는 준야를 통해 작가는 독자들에게 어떤 목소리를 들려주려 하고 있는 것일까?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에 따라 개개인의 사회적 활동 영역이 물리적 한계를 넘어 한없이 넓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실존하지 않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활동 증대는 개인 간 커뮤니케이션의 방법 자체를 바꿔놓기에 이르렀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본색을 숨긴 채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을 보여줄 수 있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해지고, 그 정도가 심한 사람들은 소위 ‘인터넷 폐인’, ‘방구석 폐인’이 되어 누군가의 실재감이 이처럼 희박해졌을 때,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의 닉네임만을 알고 있고 실체는 모르고 있을 때―그 사람은 과연 이 세상에 실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인터넷 상의 이름이나 행적은 관리자가 삭제하거나 서버가 고장 나지 않는 한은 그 사람이 죽은 뒤에도 계속 남아 인터넷을 떠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친해졌다고 생각하던 사람들 역시 그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고, 실제로는 관심조차 없다. 갑자기 연락이 끊어졌다 해도 궁금한 것은 그때 뿐, 어차피 그렇게 만났다 그렇게 잊히는 관계일 뿐이다. 이것이 현대인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공포―‘고독감’의 새로운 근원이다.
<콜링>의 도입부에서 끔찍하게 부패된 시체와 허옇고 흐물흐물한 원혼의 등장으로 독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작가는 이내 진정한 공포는 이런 게 아니라며 독자의 기대를 배반한다. 인구 1천만이 넘는 대도시 도쿄의 중심가에서조차 철저하게 타인으로부터 잊히고 소외된 여성. 그 이름조차 기억해 주는 이가 없어 존재했었다는 사실의 근거까지 완전히 말살당한 여인. 이 소설의 진정한 공포는 바로 이런 사회적 말살과 소외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쓰시마 에미는 왜 그렇게 외롭게 죽어가야 했는가? 누가 그녀를 현실 사회에서 격리하여 외로운 죽음으로 몰아넣었는가? 왜? 어떤 방법으로?
저자는 이 처참한 고독사(孤獨死)를 통해 겉모습만을 중시하고 인간적인 유대감은 점점 엷어져 가는 현대사회의 사회적 병리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적극적이지 못하고 콤플렉스를 안고 살아가는 다수 사회구성원이 겪는 무의식적 차별과 거기에서 벗어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 이 작품의 기저에 ‘공포’라는 이름으로 흐르고 있다. 그것은 가해자, 또는 피해자의 입장에 분명히 한 번쯤은 서봤을 대다수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체험 기억을 되살리게 하면서 보다 리얼하고 진솔한 공포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데뷔작이자 제2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 수상작인 <퍼펙트 플랜>을 통해 ‘대신 낳아준 아이에게 모정(母情)을 느끼게 된 대리모가 아이를 납치한다.’는 소재를 다루며 민감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을 유감없이 보여준 바 있는 저자 야나기하라 케이는 이번 <콜링>에서도 한 여인의 죽음을 통해 한―일 양국 모두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정신병리적 상처와 소외감과 고독, 무분별한 성형중독의 실태 등을 특유의 예리한 시각으로 파헤치고 있다.
“사람들의 작은 배려나 자상함이 세상을 바꿔 나가는 거라고 난 믿어. 그런 걸로 사람은 구원을 받기도 하고, 그런 걸 얻지 못해서 죽을 정도로 추락하기도 하는 거야.”
우리는, 현대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전해져 오는 고독한 동료들이 맞이한 비참한 결착에 대한 소식을 접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어쩌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스스로의 고독을 앞세워 남을 돌아볼 여유 같은 것은 없다며 애써 그런 목소리들을 외면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내 말을 들어줘. 나를 돌아봐줘. 날 잊지 마. 그런 처절한 영혼의 ‘부름’을. 그것이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