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길 수 없는, ‘취향’에 대해 묻고 답하다
<뉴요커>의 저자 박상미가 ‘미술, 패션, 인테리어 취향에 대한 내밀한 탐구’를 가지고 돌아왔다. ‘이 세상에 태어나 소비를 하고 사는 이상 취향의 문제는 비껴갈 수’ 없는 것이며, ‘삶의 미세한 결들 속에 숨어 있는, 이 매력적이고도 거추장스러운 문제를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란다. 1) 취향은 어디에서 오는가, 2) 어떻게 취향은 드러나는가, 3) 왜 취향은 변하는가, 그렇다면 4) ‘좋은 취향’과 ‘나쁜 취향’이란 무엇인가. 이렇듯 취향에 대한 총체적인 고민에 바탕을 두고, 저자는 ‘취향’에 관한 질문들을 생산해냈다. 이 책은 총 3부 30꼭지(각부 서문 3꼭지 포함)에, 22개의 취향 관련 인용문과 주를 곁들인 답으로 풍성하게 채워졌다.
내 취향은 귀족적이고, 내 행동은 대중적이다.
―빅토르 위고
(「뉴욕의 새 취향, 뉴 뮤지엄」, 49쪽)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취향趣向, 즉 taste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 취향趣向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이라고 짧게 등장한다. 한편, 영한사전에 taste는 [1. 미각, 맛, 미감味感, 풍미. 2. 시식, 맛보기. 3. (시식하는 음식 등의) 소량, 한 입, 한 모금. 4. 취미, 기호, 애호. 5. 심미안, 감식력, 풍류. 6. (한 시대·개인의) 미적 관념. 7. (첫)경험, 맛; 기미, 기색.] 정도로 풀이되어 있다. 알려진 대로 미술계나 철학계에서도 taste는 ‘취미, 안목’으로 번역이 되어왔다. 한데 저자는 이 taste가 ‘취미’나 안목’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사물을 차별적으로 보는 능력’이 바로 저자가 지향하는 ‘취향’이다.
‘취향’에 대한 섬세한 탐구, 생생한 기록
‘취향’에는 자기 노출적인 측면이 있고, 더구나 스스럼없이 드러내면 젠체한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이를 사람들이 의식해서인지 ‘취향이라는 주제는 영국 작가 스티븐 베일리의 말대로 돈이나 섹스 같은 주제보다 더 터부시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 탓에 사람들은 “난 **를 좋아하지만 잘 알지는 못해요.”라는 식으로 얼버무리게 된다. 그러나 취향이란 숨길 수가 없다. “사람은 그가 읽는 책, 곁에 두는 친구, 입에 담는 칭찬, 입고 다니는 옷, 그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하는 이야기, 걸음걸이, 눈빛, 사는 집, 그의 방으로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은 서로 무한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랄프 왈도 에머슨)
저자는 취향이라는 큰 주제 아래 한 도시(윌리엄스버그)를 이루는 취향에서 시작하여 뉴욕의 픽스드기어fixed gear 자전거, 히피·힙스터와 같은 카운터컬처의 산물, 생생한 미술 현장(휘트니 미술관의 전시, 뉴 뮤지엄의 두 번째 전시, 2008년 아모리 쇼, 뤽 타이만과 크리스토퍼 윌리엄스의 전시, 2007년 쇠라의 소묘전 등), 예술가들(미카엘 하네케, 조르주 상드, 코코 샤넬, 오스카 와일드, 트루먼 카포티 등)과 영화(<토니 타키타니>, <로열 테넨바움>) 속 인물들의 패션 취향, 미감味感, 집(브루스, 빌 벨튼 등의)·등대하우스·가게(을지면옥, 코린의 맥앤코Mc & Co)·미술관(뉴 뮤지엄)과 같은 공간, 길거리 패션 사진가(스콧 슈만)·작가(빌 벤튼)·패션 디자이너(슬론)·미술가들(브루스, 티네, 코린)과의 취향에 대한 인터뷰, 예술가들(앨런 긴스버그, 피에르 베르제, 리처드 마이어, 발튀스 등)이 거주한 공간, 예술작품들(제이슨 밀러의 작품, 드레이퍼리가 묘사된 미술 작품, 쇠라의 소묘)에 대한 미학 에세이, 패션 디자이너(마크 제이콥스, 폴 푸아레)와 예술가(타카시 무라카미, 리처드 프린스, 라울 뒤피)의 협업, 예술가들(피카소, 자코메티 등)의 취향 차이, 취향의 형성과 관련된 저자의 기억, 저자 자신의 컬렉션(스테파나 매클루어의 작품들)까지 두루 다루고 있다. 앞서 던진 네 가지 질문 위에서 ‘취향’에 대한 섬세한 탐구와 생생한 기록이 다방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타인의 취향에 더불어, 저자 자신의 취향이 드러나는 건 물론이다.
보여주는 예술서가 아닌 말을 거는 예술서
이 책은 부제 ‘미술, 패션, 인테리어 취향에 대한 내밀한 탐구’를 넘어, 책을 읽는 이에게 묻는다. 당신은 취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참고로 인터뷰이의 답을 빌리자면 이렇다.
취향taste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또 취향은 얼마나 중요한가요?
한때 ‘난 취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유행인 적이 있었어요. 그 말에는 자아가 만들어내는 사소한 위계들을 넘어 세상에서 마주치는 의미들을 차별 없이, 진정하게 받아들이자는 의도가 담겨 있었죠. 하지만 내 생각엔 그 반대가 맞다고 생각해요. 사물을 깊이 있게 차별해서 지각하고 보는 경험은 일생 동안 축적이 되고 결국 독특한 어떤 것을 만들어내게 되지요. 그게 취향이에요. 그리고 취향이란 그 사람의 감성의 풍향계라 할 수 있어요. 한 사람의 미적 방향성을 나타내주는 지표 같은 거라는 얘기죠.
(「안티 패션주의자와의 대화」, 132~133쪽)
그리고 저자의 답은 이렇다.
(…) 취향이라는 건 사회적 위계나 자기 정체성의 문제보단, 결국 아름다움의 문제로 귀착한다.
(3부 서문 「취향은 어디서 오는가」, 2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