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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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탄 게츠의 아름다운 음악과 비극적 일생을 그린 국내 최초의 평전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사랑한 뮤지션 스탄 게츠 음악도 사람의 일이라, 아무리 좋은 음악을 만들고 연주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실체와 음악이 겹쳐지는 순간 이질감이 느껴진다면 쉽게 극복하기 어렵다. 스탄 게츠는 언제나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준 사람이지만 평생을 마약과 술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 주변에 많은 사람에게 걱정과 심려 그리고 불안감을 심어주었다. 이런 사실을 알았을 때 과연 그의 음악을 온전히 들릴까? 책을 기획하고, 편집을 마치면서 편집진은 이를 걱정했다. 그의 생이 그의 음악을 듣는 데 방해가 된다면 이 책은 어쩌면 불필요할지 모른다. 마지막 책을 덮으며 그래도 책을 내자는 생각을 했다. 음악과 인간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정답은 없다. 이 책에는 그런 질문이 있다. 레스터 영에게 영향받은 재즈 연주자. 스탄 게츠는 모던 재즈 중에서도 첫 시대에 해당하는 밥 시대의 색소폰 연주자였다. 밥 혹은 비밥이라고 부르는 이 장르의 대표하는 세 명의 연주자가 있는데 색소폰 연주자였던 찰리 파커 (Charlie Parker 애칭 버드), 피아노 연주자였던 셀로니어스 뭉크(Thelonious Monk ), 트럼펫 연주자였던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가 그들이다. 특히 찰리 파커의 인기는 대단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후의 색소폰 연주자들 많은 연주자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찰리 파커였지만 스탄 게츠는 찰리 파커보다는 레스터 영(Lester Young)이나 허비 스튜어드(Herbie Steward)에게 영향을 받았다. 이런 성향은 이후 스탄 게츠의 활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그의 음악이 이지 리스닝으로 혹평받기도 했지만 연연하지 않고 자신만의 톤을 지켰던 고집은 그가 보사 노바 등의 다양한 음악 장르와 결합하고 성공하는 데 중대한 바탕으로 자리한다. 약물, 음주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해. 게츠의 마약 중독과 알콜닉은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횟수나 중독성이 깊어진다. 다만 그의 음악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점은 매우 놀랍다. 주변 사람들은 스탄 게츠의 약물 중독을 걱정하고 또 비난하기는 했지만, 그가 그러한 비난이나 걱정을 뛰어넘는 훌륭한 음악을 완성했다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음악과 삶은 게츠에게 개별적으로 존재한다. 1953년 게츠는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구금된다. ‘최고의 재즈 뮤지션, 할리우드의 저택에서 마약 복용 혐의로 체포되다’이 사건을 계기로 게츠에게는 마약 뮤지션이라는 악명이 붙기 시작한다. 54년에는 약국에서 강도 미수 사건을 일으키고 자살을 시도하는 사건도 생긴다. 재판장에서 그의 첫 아내였던 베벌리 번은 일주일에 수천 달러를 버는 남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비롯한 가족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고백했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방랑자. 1962년 찰리 버드와 활동하면서 스탄 게츠는 3년가량 보사노바 음악을 한다. 차트에서 넘버원을 기록하는 등 엄청난 인기를 얻는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는 새로운 음악을 시작한다. 그는 어떤 한 장르에 메여있을 수 없는 아티스트였다. 스탄 게츠을 책을 출간하려는 기획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스탄 게츠에 관한 글을 읽고 나서부터다. 그 글에는 60년대 중반 이후 그러니까 스탄 게츠의 색소폰 톤이 미묘한 변화를 일으킨 그 시점부터의 이야기는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나중에 늙어서 그 소리를 좋아할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라고 쓰고 있다.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스탄 게츠의 톤에도 복잡한 내면에 드러난다. 아마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벅차게 생각하는 부분이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80년대 말 게츠는 간암으로 투병하지만, 음악을 멈추는 일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음악이 더 완전하기를 원했고, 자신의 불완전함이 다른 멤버들에게 피해 주는 것을 지극히 싫어했다. 스탄 게츠는 1991년 6월 6일 말리부에서 세상을 떠났다. 유언은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달라는 말이었다. 배에 올랐을 때 사람들은 말이 없었으며, 허브 앨버트가 가져온 CD 플레이어에서 그의 음악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