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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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헤르만 헤세, 그가 평생에 걸쳐 쓴 3천여 편의 서평에서 가려 뽑은 가장 빼어난 73편의 글 ‘창조적 작가’가 아닌 ‘문필가’ 헤세를 조명하는 최초의 책 이는 어마어마한 양의 헌신적인 독서를 보여주는 한 예이자, ‘인간 정신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거룩한 증언들’에 친숙함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_토마스 만 20세기에 가장 사랑받는 작가인 헤르만 헤세는 평생에 걸쳐 독서의 안내자 역할을 했다. 스물한 살인 1898년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들》을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00년 스위스 일간지 <알게마이네 스위스 신문>에 처음으로 서평을 쓰기 시작했다.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아” 명문 마울브론 신학교에서 도망친 후, 서점에서 조수로 일하던 시절이었다. 헤세는 서점에서 일하며 신문 문화면에 서평을 기고하던 처음 몇 해 동안이 “가장 최신의 문헌 속에서 헤엄치기, 거기 파묻히는 일이 술에 취한 것과 비슷한 쾌감”이 되었다고 말한다. 어려서부터 독서체험은 물론 자신의 모든 체험을 글로 표현하고 탐색하던 헤세에게 신문 지면은 그런 글을 위한 중요한 통로였다. 오히려 이런 작업이 그의 책들보다 더 알려져 사회생활을 하는 데 상당한 뒷받침이 되어주었다. 당시 그는 서점 직원으로 얼마 되지 않는 임금을 받는 것 말고는 이런 문필작업의 고료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스물세 살인 1900년부터 죽음에 이른 1962년까지 평생에 걸친 헤세의 서평작업이 시작되었다. 이 책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은 그가 쓴 3천여 편의 서평과 에세이 가운데 가장 빼어난 글 73편을 가려 뽑은 것이다. 헤세는 실로 엄청난 분량의 책을 읽었다. 당시 여러 신문·잡지와 출판사, 동료작가들이 헤세의 서평을 받기 위해 책을 보냈고, 그는 늘 “읽지 않은 책들의 더미”에 싸여 있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독일포로 후원센터’를 공동으로 조직하고 포로들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일을 했다. 고도근시로 독일군에 입대를 거부당한 다음의 일이었다. 전쟁 도중에, 그리고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방향감각을 잃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꾸준히 책을 소개했다. 이는 그가 이 세상과 젊은이들에게 바친 순수한 봉사이며 숭배였다. 이 책은 ‘창조적 작가’로서의 헤세가 아닌 이런 ‘문필가’로서의 헤세를 조명하는 최초의 책이다. 2.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카프카에서 도스토옙스키까지, 노자에서 붓다까지 동서양을 아우르는 세계문학·인문고전 독서의 길라잡이 좋은 책을 찾아내려면 누구라도 처음에는 안내를 받아야 한다. 안내를 받아 좋은 책을 읽다보면 스스로 좋은 책을 선별하는 안목이 생긴다. 헤세는 좋은 안내자다. _옮긴이 안인희 “헤세는 근본적으로 오로지 추천할 만한 작품들, 자신에게 무언가 모범이 되고 타당성을 가진 책들, 즉 ‘어쩌면 내일 또는 모레까지도 살아남을’ 것이라 생각되는 책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헤세의 절친한 친구이자 헤세 전집 편집자인 폴커 미헬스의 말이다. 당시 헤세가 추천한 책들은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까지도 살아남아 세계문학의 고전으로 불리고 있다. 헤세의 책 읽기는 J. D. 샐린저, 카프카, 토마스 만, 크누트 함순, 도스토옙스키, 조너선 스위프트 등 친숙한 문학의 영역에서 점점 더 다양한 분야로 넓어진다. 키르케고르 선집 《선민의 개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입문》등 철학과 심리학 분야의 책들은 물론, 켈트 전설 《마비노기의 나뭇가지 네 편》, 어린이를 위한 《안데르센 동화집》, 대표적인 독일 민요집 《소년의 요술 뿔피리》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고 서평을 남겼다. 《싯다르타》의 작가 헤세는 서양 세계에 동양 정신을 매개한 중요한 안내자의 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당시 유럽에서 막 시작된 중국, 인도, 고대 이집트의 문학과 철학, 종교 서적들을 누구보다도 먼저 읽고 독자들에게 권했다. 세계문학의 거장 헤세가 공자와 노자, 《우파니샤드》와 《바가바드기타》 같은 책들을 읽고 동양을 향하는 눈길을 따라가다보면, 동양의 사상과 이념이 유럽에 수용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경계를 뛰어넘어 서로 다른 분야에서 연관성을 살피는 통합의 능력, 모든 새로운 것을 선입견 없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헤세의 열린 독서법은 오늘날 특히 주목할 만하다. 헤세는 1900년에 쓴 초기의 서평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만나는 모든 것에 대한 경외심. 낯선 것도 주목과 사랑으로 존중하기, 모든 것을 향해 그 자체의 고유한 방식과 언어로 질문하기.” 열다섯 살에 학교를 완전히 떠난 헤세가 온전히 독학으로 지식을 습득했던 그 자유분방함이 이 서평작업에 그대로 나타난다. 3. 서양 세계는 어떻게 동양 정신을 받아들이는가 헤르만 헤세의 동양을 향하는 눈길 순수하게 정치적인 이유에서라도 동양을 이해할 필요성이 커질수록, 동아시아 민족들을 그들 자신의 사유와 본질에서 아는 일이 더욱 중요해지는데, 그런 것은 그들의 예술과 시문학을 통한 것 말고는 달리 길이 없다. _p.357 이 책을 엮고 옮긴 인문학자 안인희는 풍부한 주석과 해설을 통해, 헤세가 소개한 동양 고전들이 당대의 대표적인 학자들에 의해 번역되었음을 상세히 밝혀놓는다. 헤세는 동양 정신이 유럽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작품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번역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인지했고, 서평 곳곳에서 이에 대한 의미 있는 평가와 인정의 말을 남긴다. 이것은 칭다오에서 일하는 리하르트 빌헬름의 작업으로, 그릴과 마찬가지로 직접 중국어 원본에서 번역했다. 이 책에는 두 편의 소중한 해설이 책 앞에 붙어 있다. 두 번역본의 문헌학적 정확성에 대해 나는 판단을 내릴 처지가 못 된다. 둘 다 근본적이고 아름다운 작업이다. 그릴 판본이 풍부한 주석을 갖추고 있어서 학술적으로 더욱 쓸모가 있다면, 빌헬름 판본은 더욱 힘차고 확고하고 개인적인 언어, 그로써 더욱 쉬운 접근성이 두드러진다. -인류의 목적에 어울리는 사유 _노자의 《최고 본질과 최고선의 책, 도덕경》2 p.315 헤세의 서평들을 통해 중국 고전의 원전번역이 1910년대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독일어권에서 《도덕경》은 새로운 번역판이 거듭 출판되며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헤세도 《도덕경》을 읽고 여러 편의 서평을 남겼다. 《도덕경》을 읽기 위해 우리는 중국어를 배우지 않아도 되지만, 중국 문자는 알아야 한다. 문자를 아는 사람이라면 번역이 없어도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밖의 사람들은 중국의 모든 책들 중에서 가장 깊고도 신비로운 이 책의 새로운 번역판이 나올 때마다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낱말을 넘어 본질로 _노자의 《최고 본질과 최고선의 책, 도덕경》3 p.319 무엇보다 우리나라 독자들의 눈길을 끄는 부분은 독일어로 번역된 중국 책의 제목들이다. 헤세가 남긴 모든 서평들 가운데 그가 처음 소개하는 중국 고전이 공자의 《대화》이다. 우리는 조선시대부터 중국 고전을 우리의 것으로 삼아 공부해왔기에 《논어》 같은 제목이 친숙해 따로 번역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지만, 독일에서는 분명한 뜻을 가진 제목을 문맥에 맞게 번역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공자의 《논어論語》가 《대화Gesprache》로 번역된다. 또 지은이 이름을 그대로 제목으로 삼은 《열자列子》는 《근원에서 흘러나오는 참된 책Das wahre Buch vom quellenden Urgrund》으로, 지은이 포송령의 호를 살린 《요재지이聊齋志異》는 《중국의 유령 이야기, 사랑 이야기Chinesishce Geister- und Liebesgeschichten》로 번역된다. 이로써 작품이 담고 있는 뜻이 더욱 분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