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브라더스가리먼시스터스였다면? _10
1장 애덤스미스의 어머니는 누구였을까? _17
2장 애덤스미스의 경제적 인간을 소개합니다 _33
3장 차별을 합리화하는 경제학자들 _49
4장 세상에 유일한 진리는 경제학뿐? _67
5장 경제학이 여성을 가뿐히 무시하는 방법들 _87
6장 사상 최대의 도박장, 월스트리트 _105
7장 『파우스트』 속 황제의 궁정부터 현대의 금융 위기까지 _123
8장 남자는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라는 착각 _143
9장 어떻게 자극할 것이냐, 그것이 문제 _159
10장 돈을 요구하면 이기적인 사람이다? _175
11장 90퍼센트를 위한 세상은 없다 _191
12장 인간이 하나의 기업체가 되는 세상 _209
13장 어머니를 잊은 자들에게 미래는 없다 _223
14장 인간이 섬처럼 홀로 존재할 수 있다는 환상 _237
15장 왜 중요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늘 남성일까? _257
16장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할 용기 _271
우리에게도 경제학이 필요하다 _288
주 _300
참고문헌 _314
찾아보기 _325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카트리네 마르살
328p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그들의 욕구 때문이다." 1776년, 애덤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그러나 당시 애덤스미스가 잊은게 한 가지 있다. 바로 이기심이 아니라 '사랑'으로 저녁을 차려 준 그의 어머니다. 잊힌 것이 그의 어머니뿐이겠는가? 『국부론』에 등장한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대신 아이들을 돌보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이웃과 실랑이를 해야 했던 그들의 부인이나 누이의 모습 또한 찾아볼 수 없었다. 애덤스미스가 구상한 세상은 단 하나의 경제에 기초하고있었다. 남성만이, 그리고 그가 하는 일만이 의미를 갖는 경제. 저자 카트리네 마르살은 애덤스미스의 초기 사상부터 현대 여성들이 직면하는 불평등한 사회 및 경제 구조뿐 아니라 현대 금융 위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짚어 보며, 때로는 풍자적으로, 때로는 날카롭게 여성과 경제학, 그리고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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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누락되었을까?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혹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그들의 욕구 때문이다."
오늘날 주류 경제학의 시작점이 된 애덤스미스의 『국부론』에 등장하는 유명한 구절이다. 당시 애덤스미스는 빵집 주인이 빵을 굽고, 양조장 주인이 술을 빚는 것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윤을 취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라도 있는 것처럼 세상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누락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여성이다. 정치경제학의 아버지 애덤스미스가 『국부론』에서 개인의 이익 추구 본능에 대해 언급했을 때, 이기심이 아니라 사랑으로 그를 돌봐준 어머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국부론』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국부론』에 등장하는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이 이기심을 발휘해 돈을 벌 수 있던 것도 그의 아이를 키우고 식사를 준비하고 텃밭에서 채소를 키운 그들의 아내 혹은 누이 덕분이었다.
애덤스미스가 구상한 세상은 단 하나의 경제에 기초하고 있었다. 남성만이, 그리고 그가 하는 일만이 의미를 갖는 경제. 애덤스미스가 어머니를 망각하면서 그에게서 시작된 사상의 갈래가 불완전한 모습을 띠게 되었고, 경제학이 점점 중요해짐에 따라 이 근본적인 실수는 너무도 널리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애덤스미스의 경제적 인간과
보이지 않는 여성들
애덤스미스의 경제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인간의 모델로 구상한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즉 경제적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경제적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늘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계산적이고 두려움이 없다. 그는 이성, 독립성, 이기심 등 우리가 전통적으로 남성성과 동일시하는 문화적 특성을 모두 지녔다. 따라서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인간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남성'에 한정된 모델이 되었다. 반대로, 이와 상반되는 특성인 감정, 의존성, 자기희생, 연대감 등은 여성의 특성으로 모두 몰아넣었고, 여성은누군가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비경제적인 존재로 규정되었다.
오랫동안 여성의 노동은 비가시적이고 늘 존재하는 인프라로 간주되어왔다. 짐바브웨의 로펠트에 사는 한 젊은 여성이 있다. 그녀는 새벽 4시에 일어나 11킬로미터를 걸어서 양동이 하나에 물을 채운다. 집에 돌아오면 땔감을 모으고, 점심을 차리고, 설거지를 한 다음 채소를 수확하러 나간다. 그리고 다시 물을 길으러 길을 나선다. 돌아와 저녁을 짓고 동생들을 재우면 밤 9시가 된다. 그러나 경제학 모델에 따르면, 그녀의 고된 노동은 경제 수치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즉, 그녀는 하루 종일 노동하지만 비생산적이고 비경제적인 존재로 취급된다(본문 93쪽). 캐나다 국가 통계청의 조사 결과, 무보수 노동이 국가 GDP의 30.6?41.4%를 차지하는 것으로 측정되었다. 30.6%라는 수치는 무보수 노동을 보수 노동으로 대체하면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 것인지를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고, 41.4%는 가사노동자가 집안일 대신 다른 노동을 했을 때 얼마나 벌 수 있을지를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다. 어떤 기준으로 보든 엄청난 수치다(본문 95쪽).
그러나 굳이 수치로 환산해 보지 않아도, 이러한 활동이 경제 성장에 필수적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한 사회에서 적절한 양육 및 돌봄 체계 없이 양적 성장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행복하고 건강한 아이들은 사회의 긍정적 성장의 기반이다. 그리고 이 자원들은 상당 부분 무보수 가사노동의 결과로 양성된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의 유용성과 가치에 대해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상할 정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다?
성불평등을 영속화하는 경제 구조
많은 여성이 보수를 받는 고용시장에 진출하게 된 현재도 상황은 비슷하다. 누군가는 여성의 사회 진출 비율을 들어 사회가 평등해졌다고, 여성도 경제적 여유를 누릴 수 있게 되지 않았느냐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이 경제활동 때문에 포기한 가사노동을 위해 고용되는 것은 또 다른 여성들이다.
세계적으로 많은 여성들이 이주 노동으로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해결한다. 많은 나라에서 여성 이민자들이 고국에 보내는 돈은 해외 원조와 외국인 투자를 합친 것보다 국가 경제에 더 큰 기여를 한다. 필리핀은 이 송금액이 GDP의 10%를 차지한다(본문 92쪽). 그러나 한편으로, 원래 청소를 해야 했을 사람-서구 가정의 여성-의 시급보다 가사 도우미의 시급이 현저히 낮지 않으면 가사 도우미를 쓰는 것이 경제적으로 의미가 없기 때문에, 여성 사이의 불평등이 지속되게 된다.
또한 가사 도우미를 비롯해 돌봄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비율이 높다는 사실은 남녀 간의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한다. 돌봄 산업의 임금이 낮아서 주로 여성들이 그 분야에 종사하는 것일까, 주로 여성들이 일하기 때문에 그 분야의 임금이 낮은 것일까? 확실한 것은 남녀 간 경제적 불평등의 가장 큰 이유가 여성이 남성보다 돌봄 산업에 더 많이 종사하기 때문이고, 이는 애덤스미스 이후 사회에서 벌어지는 행위의 목적을 돈 또는 사랑,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사랑에서 나오기 때문에 경제적 보상이 중요치 않은 행위이고, 물질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은 자기 이익 추구 욕구에 의한 경제적 행위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든 행위의 목적을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을까?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도 돈을 요구했다?
크림전쟁(1853~1856) 당시 맹활약한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의 이미지는 돈에 관심이 없는, 조용하고 수줍은 천사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실제로 나이팅게일은 경제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싸움꾼에 더 가까웠다. 나이팅게일은 간호사들이 정당한 보수를 받게 하려 평생을 싸웠다. 그녀는 선한 일을 수행한다는 사실이 간호사들의 적은 보수를 정당화할 수는 없으며, 이들의 노동에 더 많은 보수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선행을 하는 것과 경제적으로 잘살기를 원하는 것 사이에 아무런 모순이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 땅에서 선한 일을 수행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도 돈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본문 185쪽).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 때 돈이나 선의 중 한 가지 요인만이 동기가 된다는 생각에 얽매여 있다. 게다가 이 개념은 전통적으로 성별에 관해 우리가 가진 이미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남성은 자기 이익 추구라는 본능에 의해 나아가고 여성은 전체적인 그림을 조화롭게 만드는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본능이 성별에 관계없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사실 그것이 진실에 더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인정받기를 원하고, 돈은 그에 대한 보상 중 하나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돈을 필요로 한다. 여성들도 말이다. 그러나 선한 일의 목적이 물질적 보상이라고 했을 때 이를 탐욕적인 것으로 간주한다면, 돌봄 업종에 대부분 종사하는 여성에 대한 경제적 차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숨 돌렸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우울한 여성들
1963년, 기자였던 베티프리댄은스미스 여대 동창생들이 졸업 후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했다. 이 명문대를 졸업한 여성들은 대부분 교외 주택단지에 살면서 아침마다 가족을 위해 식탁을 멋지게 차리고, 주말이면 뜰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며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는 듯했다. 그러나 이들의 웃음 뒤에는 밤마다 눈물로 베개를 적시며 불안감, 성적 불만, 절망감, 우울증에 고통받는 삶이 있었다. 이들은 욕망을 억누르고



Chaos
4.0
당신이 출근을 하고 야근을 하고 회식을 할 수 있는 이유: 누군가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고 학예회를 열면 참석하고 집안 노동을 담당하기 때문 여자는 집에서 '놀지' 않는다. 우리가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정육점 주인이나 제빵사의 선량함이 아닌 이기심이었다고 믿는 남성주의적 경제관에게, 사실 네가 굶지 않는 이유는 여자의 노동이 밑바탕이었다고 통쾌하게 빅엿을 날리는 책
ez
4.5
_애덤 스미스는 평생을 어머니와 살았다. _그가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과 빵집 주인의 욕구를 책상에 앉아 논하는 동안 그의 어머니는 빵을 자르고 청소하고 그릇을 씻고 있었다. 아마 푸줏간 주인의 집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_'보이지 않는 손'은 실제로 존재하는 절반의 손들을 경제에서 지워버렸다.
codu
4.0
여자의 노동은 당연하지 않다
윤채원
5.0
페미니즘 없이는 경제적 인간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고 경제적 인간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서는 중요한 것을 변화시킬 수 없다.
서지현
4.0
페미니스트가 본 경제학 이 책을 읽게 되어서 참 다행이다. 진리인냥 여겨졌던(배웠던) 사실들에는 빈틈이 있었다는 걸 모른채 살았겠지. 보이지 않는 손이 누구껀지 나는 모르겠고 '보지 않으려 했던' 무수히 많은 손이 어머니의 손이라는 건 알겠다.
19thnight
4.0
애덤 스미스가 피도 눈물도 없는 자유주의의 시조라는 오해를 답습하는 것이 아쉽다. 애덤 스미스는 섬처럼 고립되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경제적 인간을 내세우지 않았고, 개인 간의 자유로운 협력과 타인, 약자에 대한 배려, 공정한 분배 또한 중시했다. 애덤 스미스의 사상 중 타인에 대한 배려와 협력은 무시하고 있는 주류 경제학에 대해서는 저자의 비판이 옳다고 생각한다. 동어반복적인 면이 있지만 인간의 다양한 맥락과 요소, 특히 젠더까지 경제학에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을 간결하고 쉬운 문장들로 전달하고 있다. 경제적 인간이라는 허상에 숨어 실제 인간을 고려하지 않는 주류 경제학에 대한 비판은 신랄하고 유쾌하다.
PIN
4.0
노동자 계층의 남성들이 하루 종일 노동해서 독립성을 가질 수 있으려면 가정을 돌보는 여성들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은 역사에 포함되지 않았다. 애덤 스미스가 자기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알라딘 eBook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찹찹
4.0
ㅇ 누구도 자신을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을 견디지 못할 거면서, 이론가들은 인간과 세계를 단순화 하여 단일한 법칙을 찾아내고 싶어한다. 하나의 틀로 세상을 설명하고 그것에 짜맞춰 움직이려한 수세기의 실패를 짚어낸다. ㅇ 그 하나의 틀에서 배제된 여럿 중 여성에 집중하는 이야기일뿐, 여성의 경제력을 우위에 두고 남성을 대체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글이 아니니, 차갑게 보시길 - 경제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세계에 살고 있다. 많은 것들이 숫자로 이야기되고,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것 처럼 느껴진다. 따라서 경제학은 인간을 자신의 경제적 이익이 최대로 보장되는 방향으로 활동하는 합리적인 존재로 상정하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편리하다. 인간의 행위와 시장은 예측 가능해지며, 세계 경제는 생산성이 향상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수치로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리먼 브러더스 사태, 작금의 경제적 공황은 기존 경제학에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는 것을 방증 한다. 우선, 인간은 '경제적'이지 않다. 인간은 합리적인 것만을 선택하지 않으며, 무엇이 합리적인지 알지 못한다. 인간은 무모하고, 희생하며, 배려하고 사랑하기도 하는 복합적인 존재이다. 무엇보다 인간은 고립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그러한 여러 관계 속에 놓여 있는 존재이다. 이는 경제적 인간 외의 인구와 활동을 배제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사회는 유지되지 못한다. 인간은 서로 돌보고 공동체가 함께 나아가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누군가는 시장에 나간 남자들을 대신해 집안 일을 하고, 아이들을 돌본다. 누군가는 경제학의 독주로 발생한 불평등, 환경 오염 등을 해결하기 위해 정치,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학은 이 모든 것을 배제하고, 범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학문이 아닌, 모든 것을 자신의 시각 그 자체로 설명하고 정당화하여 자기 자신의 몸집만을 불리기 위한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이 책에서 특히나 주목하고 있는 지점은, 주로 여성들이 활동하고 있는 가계 내의 경제이다. 전통 경제학은 남성에게는 시장에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역할, 여성은 집 안에서 사랑을 지키는 역할을 부여했다. 출산을 하는 여성은 본능적으로 모성애가 있기 때문에, 남성보다 육아에 더 적합하다. 출산과 육아로 커리어가 분절되는 여성보다 남성이 생산성이 높기 때문에 여성이 집안일을 하고 남성이 바깥에서 일을 하는 것은 효율적인 분업구조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러한가? 여성의 활동은 분명 남성의 생산적 활동을 위한 경제 지원활동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자신의 노동 행위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도 받지 못한 채,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로서 응당히 해야 할 일로서 경제를 받치는 데에 자기를 바쳐왔다. 남은 것은 현모양처라는 허울 뿐인 명예다. 그녀 자신은 어디로 갔는가? 이제 여성은 동등한 경제적 주체로서 인정받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주류 경제학은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기회가 부여되기만 한다면, 여성 역시 동등한 경제적 주체로서 기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가부장적 사회구조, 생산, 출산, 소비에 대한 서로 다른 사회적 구조 안에서 단순히 여성에게 기회가 주어진다고, 남편이 도와준다고 모든 게 간단해 지지 않는다. 여성의 경제 참여, 내지는 가정 내 경제 활동이 제대로 이야기 되어야 하는 건 단순히 여성 인권을 위해서만도 아니다. 인간이 독립적인 인간으로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결혼과 출산, 육아를 하지 않고 시장으로 모여들기만 한다면, 경제는 무엇에 의해 보완되겠는가. 아니 그런 인류에게 미래가 있는가? 무엇이 의존하고 기생하는 가는 정치적인 문제이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의존한 채 살아가며, 이를 잊어선 안된다. 페미니즘적인 관점, 범지구적 관점이 오늘날 우리 경제학에 필요한 이유다. - ㅇ 번역가가 경제학을 전문적으로 번역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지, 번역이 좀 붕 뜨는 느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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