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이 그린 지식인들의 슬픈 초상화!
지식인이라면, 대체로 개념들을 체계적으로 적용하고 자신의 생각에 대한 검증에도 더 철저할 것으로 짐작된다. 사고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아예 지식인이라 불리기 어려울 테니까.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이건 선입견일 뿐이다. 자신의 전문 분야 이외의 분야로, 예를 들어 사회적 이슈로 나서면, 지식인들의 사고도 영 형편없다.
이 책에서 말하는 지식인은 의미를 좁혀서 사상을 최종 산물로 내놓는 사람들로 국한된다. 캠퍼스나 연구소 등의 지식인과 그들의 지식을 전달하거나 신봉하는 사람들 등이 결합해 지식인 계급을 이룬다.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지식인들의 비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인생의 좌절과 병, 모순 중에서 많은 것을, 다시 말해 인간의 조건에 따르는 ‘비극’을 인간이 사는 물리적인 세계의 고유한 제약 때문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단순히 문명 자체를 지켜나가는 데만도 엄청난 노력이 지속적으로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노력도 새로운 이론이 아니라 실제 경험을 근거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비전을 이 책에선 ‘비극적 비전’이라 부른다.
한편엔 압제와 빈곤, 불공정, 전쟁은 모두 기존 제도의 산물이며, 이 문제의 해결에는 기존 제도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고 이 제도를 바꾸려면 제도를 떠받치고 있는 사상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당연히 이 사상을 바꾸는 일은 양심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지식인의 임무이다. 이런 비전을 이 책에선 ‘신성한 비전’이라 부른다.
게다가, 이런 비전들을 현실로 옮기려 노력하는 전략을 보면 안목이 장기적이지 않고 대부분 지나치게 단기적이다.
두 부류가 사회를 보거나 자신을 보는 시각부터 이렇게 다르다 보니 당연히 대립하게 되어 있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사회 각 부분이 점점 전문화됨에 따라 아무리 많이 아는 지식인도 전체 사회에서 통용되는 지식의 1%를 알기도 불가능하다. 이는 곧 지식인도 자기 분야를 벗어나면 그야말로 아마추어란 뜻이다. 그런데도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99%의 지식을 두루 나눠 갖고 있는 대중을 이끌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어느 시대나 장소를 막론하고 지식인의 이런 견해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자신의 주장에 대해 경험적 근거를 제시하거나 과거 역사를 돌아보려는 노력을 조금도 하지 않는다. 지식인 개인을 두고 보면 예외가 많겠지만 지식인 계급 전체를 놓고 보면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지닌다.
오늘날에 워낙 과학이나 기술, 의학 분야의 발달이 눈부시다보니 모든 분야가 두루 다 발달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지식인들이 활동하는 분야만을 놓고 보면 지식인들의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매우 유식한 사람도 사회과학 분야의 학자들이나 해체주의자 등이 제시한 사상의 결과로 삶이 더 나아진 예를 3가지만 제시하라는 주문 앞에서 쩔쩔 맬 것이다.”
경제, 사회, 전쟁, 법률 등의 분야를 두루 살피면서 과거 지식인들이 한 역할과 지식인들이 역사에 남긴 오점 등을 둘러본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 등을 거치면서 지식인들이 한 행태와 인류에 미친 영향을 보면 과연 지식인의 역할이 있기는 하는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 지식인들의 행태는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오늘날의 지식인들이 자신을 살필 수 있는 거울인 셈이다.